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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수상작] ‘현 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역사에서 마멸된 존재들 중히 다루는 것이 학자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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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수상작] ‘현 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역사에서 마멸된 존재들 중히 다루는 것이 학자 사명”

입력
2015.12.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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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교수는 "워낙 권위 있는 상이라 올해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정병준 교수는 "워낙 권위 있는 상이라 올해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현 앨리스(1903~1956)는 비극의 경계인이다.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맏딸로 노동운동 등에 헌신했지만, 분단 조국 양쪽에서 첩자 혐의를 받아 1956년 평양에서 처형됐다. 그저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로 잘못 기억될 뻔한 그 비극적 생의 전말을 복원한 것은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의 끈질긴 호기심과 지적 여정이다.

1985년 처음 현 앨리스, 한국명 현미옥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정 교수는 한국전쟁, 미군정기 자료를 분석하는 가운데 파편적으로 확보한 자료들을 보며 “이 인물에 대해 언젠가는 책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가 미국, 체코, 한국 등에 흩어진 숱한 문서와 증언을 꿰어 완성한 현 앨리스의 인생 역경은 이번 수상작‘현 앨리스와 그의 시대’에 오롯이 담겼다.

집필을 결심한 운명적 계기는 수업 자료로 늘 봐온 박헌영의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재학시절 사진에 현 앨리스, 동생 현 피터,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 등이 나란히 나온다는 것을 근래에야 문득 깨달은 것이었다. 정 교수는 “오랫동안 자료들을 보며 실낱 같은 가능성만 봐 왔는데 그 파편, 모자이크, 사금파리들이 모여 연구가 완성됐다”며 “2010년쯤 미 육군방첩대(CIC) 인물 파일에서 현 앨리스와 관련된 미국 공산주의자 파일들을 발견하며 미군정기 삶을 알게 된 점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그가 찾은 현 앨리스는 3ㆍ1운동의 에너지로 들끓는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의 연락 임무를 띠고 조선, 일본,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오간 역동적 인물이다. 결혼했으나 남편이 조선총독부 관리가 된 후 네 살 난 딸을 두고 이혼해 하와이로 거처를 옮겼고, 노동운동 등을 이끌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민간통신검열단 소속으로 고국에 돌아왔으나 박헌영과의 면담을 빌미로 간첩 혐의를 받고 하와이로 추방된다. 자신이 꿈꿨던 모국이 북한에 존재할까 기대했던 그는 북한으로 발길을 향했으나 결국 ‘박헌영의 애인’이자 첩자로 몰려 처형됐다.

정 교수는 “너무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데다 기억도 무척 왜곡됐기 때문에 이 인물의 개인사이자 시대사를 있는 그대로, 덧붙이거나 미화하지 말고 써서 평가 받게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체코 출신 블라디미르 흘라스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와의 협업도 결정적 도움이 됐다. 정 교수에게 현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블라디미르 교수는 그의 아들이 말년을 보낸 체코에서 자료조사에 나섰고, 체코 비밀경찰국 문서에서 현 앨리스와 아들 정 웰링턴의 자료가 1,000여장 가까이 발견됐다. 정 교수는 “책의 프롤로그(사진과 관련된 젊은 시절)와 에필로그(체코에서의 삶)를 다 운명적인 계기를 통해 쓰게 된 것”이라며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다음 연구와 저술 주제로 김규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그는 “흔들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연구”를 뚜벅뚜벅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한국 현대사는 꽤 불행했고 극단적이었잖아요. 역동적으로 살았던 많은 인물들이 체제가 부딪히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마멸됐고요. 우리는 지금 역사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결과만 바라보고 있지만 역사적 경로의 중첩성, 복잡성 등을 탐구해 그려내고 싶어요. 그 비극의 경로를 진중하게 돌아보는 것이 마땅한 임무 아닐까요.”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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