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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처럼 텅 빈 2학년 교실… 그리움ㆍ미안함만이 켜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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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처럼 텅 빈 2학년 교실… 그리움ㆍ미안함만이 켜켜이

입력
2015.04.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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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졸업 때까지" 유족 뜻 존중, 1년 전의 모습 그대로 남겨둬

재학생들 외부인에 경계 눈빛

생존 학생들 여전히 치료받기도

4ㆍ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10여일 앞둔 지난 3일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아들의 교실을 찾아 방명록에 글을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4ㆍ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10여일 앞둔 지난 3일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아들의 교실을 찾아 방명록에 글을 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정오 무렵 교정에 들어서니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남학생들이 보였다. 곧이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1층 식당으로 향했다. 복도에선 여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와 “뛰어다니지 말라”는 교사들의 지청구가 뒤섞여 부산했다. 6일 경기 안산시 고잔동 단원고의 풍경은 점심시간을 맞은 여느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년 전 261명의 동료와 선생님을 하늘로 떠나 보낸 학교라고는 믿을 수 없게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3,4층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이곳에는 외딴 섬처럼 남아 있는 2학년 10개 교실이 자리하고 있다. 바꿔 달지 않은 교실 명패 그대로인 2학년 교실은 “졸업이라도 할 수 있게 희생 학생들이 3학년이 되는 올해까지는 그대로 둬달라”는 유족 뜻을 존중해 남겨뒀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건만 웃음소리 없는 텅 빈 교실은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바삐 움직이던 아이들도 굳이 다른 길로 돌아 이동했다.

2학년 교실은 지난 사계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교실 칠판은 “부디 조심히 돌아오라”는 당부부터 “사랑한다”는 글귀까지 선후배 학생이 남긴 응원문구로 빼곡히 도배됐다. 친구들이 공부하던 책상 위에는 지난 겨울 선풍적 인기를 끈 허니버터칩이, 사물함 위에는 소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었다. 지난 달 갖다 놓은 듯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도 눈에 띄었다. 친구들을 향한 학생들의 애틋한 마음은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방문객들의 애절한 마음도 켜켜이 쌓였다. “넋이라도 훨훨 날아 편히 잠드소서.” 서울 마포구 주민들은 노란색 종이학에 숨진 학생들의 영생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2학년 6반 교탁 위에 놓인 방명록에는 가족들의 그리움과 죄책감이 가득 담겨 있다. “엄마는 오늘 병원에서 퇴원하고 학교에 왔어. 친구들, 선생님과 잘 지내고 있지? 이제는 봄이 왔구나. 이제 우리 아들이 3학년이 되었구나.” “생일 축하한다. 천국에서 친구들과 생일 즐겁게 보내려무나. 미안하고 사랑한다.”

환한 얼굴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낯선 외부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만난 2학년 여학생은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면 사람들의 수근대는 목소리가 들린다”며 “학교에 나올 때 ‘단원고 교복을 입고 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라고 말을 꺼냈다. 어렵게 시작한 인터뷰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와 중단됐다. “학교의 허가를 받았느냐”고 따져 물은 학생들은 이내 여학생의 손을 이끌고 교실로 들어가버렸다.

이들의 경계심은 생존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올해 고3 수험생이 된 생존자들은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김수연(가명)양은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불안감이 훨씬 커졌다. 월 1회 방문하던 정신과를 지금은 2주일에 한 번씩 찾고 있다. 수연양은 사고 이후 등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진 탓에 1년 가까이 피부과 진료도 받고 있다. 병원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데도 수연양은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위 통증을 호소한다. 어머니 유영란(45)씨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 먹은 딸이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석훈(가명)군의 상황도 비슷하다. 어머니 이혜선(50)씨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사고 후 염증이 생긴 것처럼 두피가 빨개져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의 병이다. 생존학생들은 이유 없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는 길거리에서 희생자 가족을 마주칠까 두려워 통학 외에는 외출을 삼가기도 한다. 한 학부모는 “‘그래도 너희 애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을까 봐 하소연도 못한 채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으로 살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을 보듬으려는 학교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5층에는 정신과 전문의인 스쿨닥터가, 지하 1층에는 6명의 상담사가 상주한다. 이날도 스쿨닥터 김은지씨는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한 생존학생과 오랫동안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제 단원고에서 ‘수학여행’은 금기어가 돼버렸지만, 그렇다고 현장활동을 아예 안 할 수도 없어 학교 측은 소규모 체험학습을 계획했다. 추교영 교장은 “이번에는 학생들이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를 모으고 장소, 시기도 직접 선택하게 할 생각”이라며 “어떻게든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1년 전 무사귀환을 염원하던 팻말을 붙여 놓았던 4층 강당 벽면에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팻말도 걸려 있지 않다. 대신 반으로 접힌 채 서 있는 7개의 탁구대가 정확히 강당을 반으로 가르고 있다. 원래 탁구부의 연습 공간이었던 이곳은 현재 절반은 심리치료 장소로, 나머지 절반은 다시 탁구부원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강당에는 1년간 단원고가 겪었던 아픔과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안간힘이 모두 묻어 있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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