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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惡" 남용되는 사회… '부정'과 구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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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惡" 남용되는 사회… '부정'과 구분하라

입력
2015.07.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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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악한 성격' 주장하는 결정론

유전병 책임 물을 수 없는 것처럼 죄에 대한 처벌 더 어렵게 만들어

"악행에 흥분하지 않아도 방지 가능, 인류 안정은 악 · 부정 구별에 달려"

테리 이글턴 교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테러리스트들을 악의 세력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그들이 비뚤어진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머리 없는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테리 이글턴 교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테러리스트들을 악의 세력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그들이 비뚤어진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머리 없는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악! 소리 나는 세상이다. 피부색이 검은 이들이, 병든 아버지가, 이별을 통보한 여성이, 심지어 TV 볼륨을 높인 이웃주민이 사방에서 죽어나간다. 연일 ‘연쇄 테러에 최소 수백 명 사망’등으로 간단히 요약되고 마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숱한 가족의 역사가 뒤틀린다. 그런데도 이를 자행한 살인자나 근본주의자들은 섬찟할 정도로 태연하다. 여론이 그들의 표정에서 악마를 읽어내는 일이 무리는 아니다.

테리 이글턴(73) 랭카스터대 교수의 ‘악’은 이런 악(evil)의 남용, 즉 폭력과 불의에 화가 난 나머지 그들을 악마로 부르는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영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악의 속성과 여론이 악을 규정하는 태도의 득실을 집요하게 분석, 해체, 복원한다.

'악'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이매진 발행ㆍ222쪽ㆍ1만2,000원
'악'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이매진 발행ㆍ222쪽ㆍ1만2,000원

그는 악을 남발하는 일에 실익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걸음마를 겨우 뗀 아이를 고문하다 죽인 소년범을 두고 경찰이 ‘사악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잔혹범죄에 동정론이 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지사. 누구도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나 학대 등을 운운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글턴은 환경결정론을 원천 봉쇄하려다 채택한 성격결정론, 즉 ‘원래 악한 성격’이라는 논리가 단죄를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면 이들은 자기의 조건에 책임이 없다.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게 병에 걸린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모순은 급진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집단을 괴물, 정신병자, 악마로 여기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글턴은 “이들이 정말 정신병자라면 모로코의 비밀 감옥에서 생식기를 잘라 처벌하기는커녕 정신 병원에서 따뜻한 치료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 우리가 ‘순전히 재미로 인간을 가루로 만드는 자들’이라고 흥분하지 않아도 이들을 비난, 처벌,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의 1,2장에서 문학 신학 철학 작품을 종횡무진하며 악의 속성을 ▦원인과 합리성 부재 ▦무의미함 ▦파괴에 대한 도착적 집착 ▦공허함 등으로 추린다. 3장에서는 테러나 횡포를 악으로 묘사하는 주장의 비합리성을 꼬집는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데도 명료하고 경쾌한 문체 덕에 지루하지 않다.

그의 범주에 따르면 학살을 위한 학살,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즘이나 1960년대 영국을 뒤흔든 이른바 무어의 살인마들 정도가 악으로 분리된다. 목적하는 바에 비해 살해행위나 심술이 지나쳐 살인 자체에 도착적 쾌락, 환희를 느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다. 동기가 명확했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학살, 북한의 도발 등은 더 큰 비난을 받아도 마땅할지언정 악(evil)이라기보다는 부정(wickedness)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가 악과 부정의 경계에 이토록 집착하는 까닭은 우리가 살인자나 테러리스트를 어떤 합리적 행동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몰지각한 괴물이나 갱생 불가능한 인간으로 취급한다면, 이를 벗어날 해결책은 거의 없거나, 사형과 보복전쟁 등의 극한 폭력 상태로 나아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또 이글턴은 “이슬람 원리주의는 가장 치명적인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하고, 이들의 굴욕, 학대를 해결하면 테러가 사라진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면서도 “그 굴욕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테러도 없었으리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일갈한다. 이 책은 악에 대한 분석서이자 유물론자인 저자가 도덕주의, 즉 네가 얼마나 굶주리고 수치스럽든 도덕적인 삶을 살아낼 책임은 오롯이 네게 있다는 주장을 향해 든 반기인 셈이다.

그의 단언은 사뭇 비장하다. “악의 개념을 남용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비관론자다. 싸워야 할 상대가 해로운 사회 조건이 아니라 악마라면 그런 천하무적을 어떻게 당해낸다는 말인가. 인류의 안정과 생존은 악과 부정을 구별하는 능력에 달렸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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