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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진보다 우리를 더 서글프게 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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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진보다 우리를 더 서글프게 하는 일들

입력
2017.11.19 16: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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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온까지 떨어져 포항 지진 이재민과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의 피난 생활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1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민간ㆍ공공시설은 2,600곳이 넘는다. 부상자 80여명 중 15명이 입원 치료 중이고, 실내체육관 등에 머무는 이재민 숫자는 1,100여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피해를 걱정하고 위로하기는커녕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거나 맹목적 신앙의 방패로 여기는 정치인, 종교인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은 포항 지진을 두고 “하늘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주는 준엄한 경고, 천심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재난 이후 대응을 꼬집는 것도 아니고 천재지변 자체가 어떻게 정치와 연관되는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를 비판하는 여론을 향해 “가짜 뉴스” 운운했다니 제1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질마저 의심된다. “종교계에 과세한다니 포항서 지진 났다”는 목사나, 성소수자 보호에 앞장서 온 목회자를 강사로 초빙했다고 “한동대 지진은 나라에 대한 경고”라는 글을 퍼 나르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서글픈 것은 지진 직후 수능 연기를 두고 포항 학생들과 그런 결정을 한 당국을 비난하는 여론이다. 수능 전날 지진으로 포항 지역은 시험 실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재시험이 어려운 현 수능 체제로는 이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체 수능 일정 연기가 불가피했다. 수능 일자에 맞춰 전력투구해 온 학생들의 허탈한 심정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포항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1주일 뒤 재해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는데 (수능 연기는) 현장만 혼란스럽게 한 잘못된 결정”이라는 어느 고교 교장의 말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는 지진 피해자가 겪는 고통보다 수능 연기로 인한 혼란을 더 부각시키는, 소수자ㆍ약자에 무감각한 언론의 책임도 없지 않다.

어느 문학평론가가 수능 연기 발표 직후 쓴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통상 민주공화국의 원리로서 자유, 평등, 연대를 말한다.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많이들 말하지만, 우애 혹은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연대는 무엇보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몫과 목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수능 연기로 어쩌면 다수의 수험생들이 불편을 겪었을지 모르지만, 이 조치로 포항 시민과 수험생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연대의 정신을 우리 사회가 확인했다면 과장일까. 나는 그런 연대의 정신이 살아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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