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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어린 아이처럼 구는 이승만, 정치적 판단할 땐 빈틈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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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어린 아이처럼 구는 이승만, 정치적 판단할 땐 빈틈없어"

입력
2015.01.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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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립문서보관소 기록 뒤져

한국전 초기 진행 시간표

김일성 직통번호 적힌 메모지

4ㆍ19 참가 대학생 증언 등

한국 현대사 관련 문서 59건 소개

대통령의 욕조 이흥환 지음 삼인 발행ㆍ384쪽ㆍ1만8,000원. 삼인 제공
대통령의 욕조 이흥환 지음 삼인 발행ㆍ384쪽ㆍ1만8,000원. 삼인 제공

미국 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당선된 지 두 달이 되던 1909년 1월 파나마 운하 건설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군함을 탄다. 그 군함에는 150㎏이 넘는 거구 태프트를 위해 특별 주문 제작한 욕조가 실렸다. 이 욕조는 100년 후인 2009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주문 문건 한 장과 함께 공개된다. 하찮을 수 있는 욕조 제작 주문서 한 장까지 버리지 않고 대통령의 기록을 간직한 좋은 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남긴 문서와 기념품은 모두 835톤이나 됐는데 이를 운반하기 위해 미 공군 수송기 C-5가 워싱턴과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를 여덟 번이나 왕복해야 했다.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관한 이야기다. 철저한 미국의 기록 시스템 운영과 역사를 둘러보며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의미 있는 사건을 담은 기록물을 보여준다. 책의 상당 부분은 기록, 보관, 공개 절차 그리고 자료 찾는 법에 할애한다.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민은 기록을 바탕으로 어떻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무겁게 던지는 듯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록 내용이 유출돼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세계적인 망신을 자처한 우리에게 이 책 ‘대통령의 욕조’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1999년부터 미국 국가기록물을 뒤지고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해 서비스한 코리아정보서비스넷(KISON)의 운영자였던 이흥환씨다. 그는 작성된 지 6년 밖에 안된 대통령 기록물이 녹취록 형태로 수정한 파일 형태로 공개되고 비밀등급 표시도 되지 않은 ‘증권가 찌라시’만도 못한 대접을 받은 것을 책 머리말에서 개탄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록물을 종이에 끄적거려 인터넷에 올려놓는 나라라는 오명만큼은 후대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미국 비밀 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장면’ 등의 책을 엮어 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이승만, 조봉암 등 유명 인사 관련 문서뿐 아니라 28세 농사꾼 아낙의 조선인민군 입대 청원서 등 한국 관련 문서 59건을 소개한다.

김일성 등 북한 주요인사들의 직통번호가 적혀 있는 북조선 인민위원회 외무국의 연락처 메모지. 삼인 제공
김일성 등 북한 주요인사들의 직통번호가 적혀 있는 북조선 인민위원회 외무국의 연락처 메모지. 삼인 제공

책에 실린 노획 북한문서에는 김일성의 직통번호를 적은 메모도 있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 사무용지에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직책과 전화번호가 손글씨로 써 있는 이 메모지에는 김일성의 직통번호가 ‘2268’이라고 선명히 적혀 있다. 북한 헌법상 국가 최고기관인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록도 있는데, 의장 등의 선출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북한 정치의 상징적 기관인 입법부에 ‘만장일치’의 문화가 이식되는 역사적 순간의 기록”이라고 평했다.

그런가 하면 미 극동군 사령부가 작성한 한국전 초기 진행 시간표도 눈에 띈다. 전쟁 개전을 1950년 6월 25일 01시로 표기했는데 “북한군 6사단 14연대가 해주를 출발, 취아리 남쪽 38도선으로 이동”이라고 적혀 있다. 전쟁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를 무대에서 끌어내린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의 명령서는 “대통령으로서 귀관을 연합군최고사령관, 유엔 사령관, 극동군 사령관, 미 극동 육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함”이라는 단 세 문장뿐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1948년 9월 이승만에 대해 분석한 보고서는 정치인 이승만의 양면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의 재능이라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며, 행동은 종종 비합리적이고,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군다. 그러나 최종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때는 빈틈없는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이 한국의 모세인 동시에 예수라고 자임하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인 정치적 입지가 어렵다는 점을 망각하진 않는다” 등이다. 이 밖에 주한 미 영사가 기록한 4ㆍ19 참가 대학생의 증언, 미 군사정보국이 한국인의 군사적 유용성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한 한국인의 기본 특성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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