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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 분열… 전쟁 가능성에 당국·시민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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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 분열… 전쟁 가능성에 당국·시민 초긴장

입력
2015.09.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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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조직 징계 계기로 동시 이탈

세력 확장 vs 응징 일촉즉발 치달아

설립 100년 동안 수차례 내분… 총·수류탄 사용하며 격렬 충돌

관방장관 "야쿠자 소탕 절호 기회"… 사무실 압수수색 등 사태 예의 주시

장기간 경기 침체로 수입 줄고, 정부는 법 만들어 대대적 단속

조직원 2만3000명으로 반토막

100년간 유지돼 온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山口組)가 내부갈등으로 분열하면서,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일본 야쿠자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야마구치파 산하 13개 조직이 이탈해 새로운 이름의 거대 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야쿠자 세력을 진압할 절호의 기회”라고 밝히고 경찰당국이 경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으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총두목에 반란, 도쿄 롯폰기ㆍ긴자서 충돌 예고

일본 경찰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오사카(大阪府) 경찰당국은 지난 18일 야마구치파 ‘넘버3’가 회장을 맡고 있는 교쿠신(極心)연합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지인을 폭행하고 100만엔을 갈취한 혐의로 한 간부를 체포했다. 지난 9일에는 야마구치 산하 야마켄(山健)파 사무실에 경찰 무장병력이 들이닥쳐 ‘깍두기 아저씨들’과 충돌을 빚었다. 경찰의 수사는 긴박하게 변하고 있는 야마구치파 내부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야마켄파는 야마구치파 산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직으로 최근 이탈한 13개 세력의 중심이다. 13명의 두목들은 야마켄파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井上邦雄)를 새 조직의 리더로 추대했다. 이름도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야마구치파의 발상지인 고베를 넣어 ‘고베 야마구치파(神戶山口組)’로 명명했다. 준 구성원들까지 합치면 약 7,000명으로 야마구치파 전체의 30%에 해당한다. 지난 5일 열린 이들 모임에는 도쿄에 근거지를 둔 일본 3대 야쿠자인 스미요시파(住吉會) 간부도 등장했다. 다른 조직과 연계하고 있다는 ‘세 과시용’모임으로 경찰은 해석하고 있다.

야마구치파의 분열은 제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ㆍ72)가 나고야(名古屋)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신의 파벌을 지나치게 비호하면서 비롯됐다. 다른 파벌 간부들을 중용하지 않고 상납금을 계속 늘리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지난달 긴급집행부회의에서 이노우에를 비롯한 5명을 절연 또는 파문 처분한 게 결정적이었다.

경찰은 내분 양상이 심각해지면서 양측의 충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전국에 경계강화를 지시한 상태다. 1985년부터 1987년 사이 벌어진 야마구치파의 분열 때는 제4대 두목인 다케나카 마사히사(竹中正久) 등 야쿠자 25명이 숨지고 시민ㆍ경찰관도 70명이 다쳤다. 1997년 내분 당시엔 ‘넘버2’가 고베시 호텔에서 사살됐고 근처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을 맞아 희생됐다.

일본에서 일반인이 허가 없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야쿠자는 권총 같은 총기를 갖고 있다. 조직간 싸움을 뜻하는 ‘항쟁(抗爭)’이 벌어지면 무기를 사용해 애꿎은 민간인 피해가 벌어진다. 가장 최근인 2010년 11월에도 항쟁이 벌어졌는데, 한 두목의 집에 수류탄이 날아들어 이웃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이 때문에 고베시 초ㆍ중학교는 통학로 변경까지 추진 중이다. 도쿄의 야마구치파도 두 세력으로 양분되고 있다. 롯폰기(六本木)나 긴자(銀座)를 장악하고 있는 고쿠스이파(國粹會)가 야마구치 소속이다. 이번에 이탈한 야마켄파와 상생관계에 있었지만 이탈세력을 응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언제든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세계 최대 범죄기업, 1989년 총수입 1조3,000억엔

전 일본사회를 긴장하게 만든 야마구치파는 1915년 야마구치 하루요시(山口春吉)가 고베항 노동자 30여명과 함께 결성한 동네 폭력단이 시초다. 마약 밀매와 도박, 매춘을 비롯해 부동산 투자 등 돈이 되는 각종 이권에 손을 댔다. 특히 야마구치 3대 보스였던 다오카 가즈오(田岡一雄)는 100만엔을 투자해 ‘고베 예능사’를 키우면서 당대 연예계의 전설적 거물로 활동했다. 1981년 사망한 후 그의 자서전은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을 정도다. 1960년대에는 좌파 학생운동을 탄압하는데 앞장서 우익정치세력의 특혜를 받으며 조직을 키웠다.

애꿎게도 올해가 야마구치파 설립 100주년이다. 100년만에 세계 최대의 ‘범죄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쿠자의 총수입은 1989년 당시 경찰 추정액만 1조3,000억엔이다. 현재 환율로 보면 100억달러가 넘는 수준이 된다. 합법적 기업집단으로 가장해 활동영역을 키워온 결과다.

폭력조직연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야쿠자들은 엄격한 규율체계를 갖고 있다. 일본에선 폭력조직을 ‘구미(組)’라 하고 그 멤버들을 조원(組員), 두목은 조장(組長)이라 부른다. 독자적 상징문장(代紋)도 만들어 사용한다. 마크를 명함에 인쇄하고 배지를 만들어 양복에 붙이고 다니면서 조직의 의리와 세를 과시한다.

야마구치파는 부하 조직원을 제재하는 징계가 단계별로 정해져 있다. ‘파문(破門)’은 반역행위나 두목의 얼굴에 먹칠을 해 조직의 위신을 떨어뜨릴 경우 내려진다. 이는 다른 조직에도 공식 통지돼 파문 당한 사람은 야쿠자사회에서 모두가 상대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파문했다가 수사망에서 벗어나면 복귀시키는 위장 파문도 횡행한다.

반면 ‘절연(絶緣)’이나 ‘제명(除名)’은 어떤 경우에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중징계다. 무서운 보복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며, 일반 사회에 적응할 수 없게 방해해 부랑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이번 야마구치파 분열 과정에 절연 처분이 동원됐고, 전국의 다른 야쿠자조직도 야마구치 반란파를 인정할지 고민에 빠진 상태다.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려면 ‘제적(除籍)’이란 형식을 거쳐야 한다. 스스로 요구하지만 두목의 허락을 받느냐가 관건이다. 이 단계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두목에 바치는 단지(斷指)의식이 뒤따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본경제 침체, 폭력단대책법, 야쿠자는 쇠락의 길

기세 등등하던 야쿠자들은 그러나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면서 경제적 영향력이 크게 쇠퇴했다. 이번 야마구치 분열도 총수입이 줄어든 데 따른 불만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 정경유착 타파나 폭력조직 추방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 했다. 특히 1992년 일본정부가 ‘폭력단대책법’을 만들어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2008년엔 두목에게 배상 책임을 물리는 법을 만드는가 하면 2012년 폭력단대책법을 더 강화해 5명 이상의 야쿠자가 모여 경쟁조직 사무실 근처에 서있기만 해도 체포할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도쿄와 오키나와(沖繩)를 시작으로 47개 지자체가 야쿠자 조직에 이익공여를 금지하는 폭력단배제조례를 만들어 목을 조여왔다. 금융권과 자영업자, 대기업에서부터 구멍가게까지 야쿠자와 친분을 맺거나 그들이 돈을 버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모두 금지됐다. 이런 지속적 단속이 효과를 발휘해 6, 7년전 만해도 최대 4만명까지 세를 과시하던 야마구치파가 최근엔 2만3,000여명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야마구치파의 내분으로 ‘전쟁’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케이(産經)신문이 시노다 겐이치 두목의 2011년 인터뷰 기사를 최근 다시 실었다. 인터뷰에서 시노다는 “이상한 시대가 왔다는 느낌이 든다, 호텔에서 음모를 꾸미지 않았는데도 3명 이상이 함께 걷지 않는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 제재를 가하는 것은 신분차별”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야쿠자 자녀들은 모두 왕따를 당하고 차별대상이 된다”며 “우리에게 인권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가족은 다른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이어 “3만, 4만명 규모의 야마구치파가 해산되면 일본 치안은 더 나빠진다, 야쿠자와 그 예비군이 존속하는 데는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면서 “일본 내 폭력단을 없애기 위해 우리 조직을 지키겠다, 야마구치는 궁지에 몰릴수록 진화해왔다”고 주장했다.

시노다는 1980년대 미술작품 투자로 이익을 창출하고 1990년대 이후엔 부실채권 정리업에 뛰어들어 야마구치파의 현재를 일군 인물이다. 작년부터는 마약추방 계몽활동을 펼치며 이미지 변신에 나서고 있다. 그러자 “살아남기 위한 위장술”이란 비판이 나왔다. 그런 그가 지금은 조직 내 강력한 반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국은 시노다가 배신자들에 어떻게 대응할지 경찰력을 총동원해 주시하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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