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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동성결혼 찬반 대립 최전선 '웨딩케이크 전쟁'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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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동성결혼 찬반 대립 최전선 '웨딩케이크 전쟁'을 아시나요

입력
2015.07.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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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오리건주 케이크 가게 동성커플에게 주문·판매 거부

꽃장식·사진촬영·주례 사절도 빈번, 벌금형 받으면 모금운동까지 벌여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가게, 자신 신념을 차별에 사용해선 안돼

동성결혼 합법화 됐지만 심리적 저항 여전해 곳곳서 충돌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부부 결혼식 파티용 케이크는 만들 수 없다며 주문을 거절한 미 콜로라도주 레이크우드의 빵집 주인 잭 필립스씨가 지난해 3월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그는 성적소수자를 차별했다는 이유로 피소돼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레이크우드=AP 연합뉴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부부 결혼식 파티용 케이크는 만들 수 없다며 주문을 거절한 미 콜로라도주 레이크우드의 빵집 주인 잭 필립스씨가 지난해 3월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그는 성적소수자를 차별했다는 이유로 피소돼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레이크우드=AP 연합뉴스

결혼식 파티를 준비하는 동성커플이 있다. 부부는 파티에 내놓을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데 케이크 주문을 받은 제과점 주인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들에게 웨딩케이크를 만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제과점 주인을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미국 제과점들이 동성결혼 찬반 대립의 최전선에 서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은 최근 미국 사회에 ‘종교의 자유’와 ‘차별’의 가치 충돌을 표면화한 두 건의 케이크 전쟁을 소개했다.

동성결혼과 웨딩케이크

잭 필립스 사건은 201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미 동부 매사추세츠주 에서 결혼식을 올린 동성커플 찰리 크레이그와 데이비드 멀린스는 결혼 축하파티에 쓸 케이크를 사려고 콜로라도주 레이크우드에 위치한 ‘마스터피스 케이크샵’에 들렀다.

제과점 주인인 필립스는 이들의 케이크 용도를 듣고 복음주의교회 신도인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내 “다른 종류는 가능하지만 웨딩케이크는 팔 수 없다”는 말로 주문을 거부했다.

이들 부부는 필립스가 동성애를 이유로 자신들을 차별했다며 즉각 주정부에 항의했고, 이 사건은 단번에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동성결혼 찬반 양 측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유사한 사건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멜리사의 달콤한 케이크’ 가게에서도 벌어졌다. 가게 주인 아론과 멜리사 클라인도 2년 전 종교적 이유로 동성커플 로렐-레이첼 바우만 크라이어에게 웨딩케이크 팔기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지난주 오리건주 노동산업국은 케이크 가게 주인이 이 행동으로 동성커플에게 감정적인 상처를 입혔다며 벌금 13만5,000달러(약 1억5,500만원)를 선고했다. 노동산업국은 결정문에서 ‘가게 주인의 행동은 고용 거주 공공편의시설에서 성 소수자(LGBT)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오리건주 법을 위반했으며 종교단체는 이 법에 대해 예외가 적용되지만 자영업 같은 사기업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종교와 표현의 자유 VS 차별

케이크 전쟁은 법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게 주인과 손님 양 측은 각각 종교와 표현의 자유, 차별금지법 위반을 내세워 팽팽히 맞섰다. 지난해 콜로라도주 시민권리위원회는 최근 오리건주의 결정과 마찬가지로 필립스의 행동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주정부의 차별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리고 벌금을 부과했지만 필립스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필립스의 변호인인 기독교단체 자유수호연맹(ADF) 소속 제레미 테데스코는 콜로라도주 항소법원에서 7일 열린 구두변론에서 “필립스가 동성커플에게 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것은 손님이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남부연합기 장식 케이크를 주문했을 때 이를 만들지 않겠다고 거부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특정 신념에 따라 행동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라는 의미다.

반면 동성커플의 변호인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속 리아 마는 “필립스의 행동은 버스가 여성 승객만을 태우지 않고 지나치거나 병원이 동성커플 아이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과 더 유사하다”고 반박했다. 마는 “이는 단지 케이크의 문제가 아니다”며 “공공편의시설은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개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크 판매 거부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지도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가게 주인 측 변호인 테데스코는 법정에 출석한 필립스를 가리키며 “그는 그 동안 할로윈 케이크나 또는 반미,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케이크 주문도 거절했다”며 “이 사건은 동성애자 차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예술적 표현력을 동원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어떤 것을 만들거나 축하하도록 강요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테데스코는 “필립스는 신념에 반하는 메시지나 상징이 포함된 케이크를 만들고 이를 축하하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동성커플 측 변호인 마는 “필립스는 그의 신념을 옹호하고 가르칠 자유가 있지만, 불특정 다수인 공공을 상대로 가게 문을 열었을 때는 자신의 신념을 차별에 사용할 자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콜로라도주 항소법원 판사들은 필립스의 사례를 다방면에서 검토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행위인가 ▦제과점 상품이 반드시 모든 고객에게 동등하게 제공돼야 하는가 ▦동성커플이 초콜릿 칩 쿠키처럼 예술적 표현이 배제된 상품을 요구하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제과점 주인 뿐만 아니라 사진사, 음악가가 모두 동성커플의 결혼식에는 서비스를 거절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동성커플이 신혼여행을 갔는데 호텔 측에서 이들에게는 방을 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등이다.

오리건주 케이크 가게를 둘러싸고도 비슷한 양상의 논쟁이 오갔다. 오리건주 노동산업국은 가게 주인에게 벌금을 선고하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은 웨딩케이크 또는 결혼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자영업자가 성적 지향 때문에 누군가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한 것에 관한 문제”라고 차별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성적 지향과 관계 없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자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가게 주인 멜리사 클라인은 벌금 부과 통보를 받고 페이스북에 공개한 성명에서 “우리의 수정헌법 제1조는 강탈당했다”며 “오리건주는 우리에게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모두 금지시켰다”고 비판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그 후

미국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지만, 찬반 양 측의 깊은 갈등은 이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성커플의 결혼식 케이크만이 아니다. 대법원 판결 이전 일부 주정부만 동성결혼을 허용했을 때부터 꽃 장식, 사진 촬영, 심지어 주례까지 동성커플의 결혼식에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일들은 빈번했다. 관련 소송으로 인해 가게 주인들이 벌금형을 선고 받기라도 하면 이들을 위한 모금운동까지 활발히 일어난다.

미 워싱턴주 리치랜드 꽃집 ‘알린즈 플라워즈’의 주인 배러넬 스투츠만도 이런 예다. 스투츠만은 2013년 단골 고객인 동성커플이 결혼식에 사용할 꽃을 주문하자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꽃집으로 가보라고 권했고, 차별금지법과 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피소됐다. 이후 합의를 거부한 스투츠만이 3월 1,000달러의 벌금을 선고 받자 그를 돕기 위한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선 한 달도 안 돼 10만달러의 후원금이 모였다.

동성애자 차별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켜 물의를 빚은 인디애나주에서는 한 피자 가게 주인이 “동성커플의 결혼식에는 주문을 받아도 피자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해 해당 발언을 지지하는 후원자들이 84만달러를 모금하는 일도 있었다.

대법원 판결 영향으로 동성커플의 결혼식이 급증하면서 이 같은 충돌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웨딩 통계업체인 웨딩 리포트의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영향으로 미국 내 매년 동성결혼식이 7만5,000~9만건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는 미국 50개주에서 37개주만이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절차도 주 별로 차이가 있다. 제이 닉슨(민주당) 미주리주 주지사는 7일 동성결혼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부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닉슨 주지사는 성명에서 “대법원의 결정은 이제 법이 됐고 우리는 이를 실행하겠다”며 주정부가 대법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주리주 LGBT 시민단체인 프로모(Promo)에 따르면 미주리주 특정 카운티는 동성부부에 대한 결혼허가증 발급을 미루며 여전히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고 있다.

또 이웃한 캔자스주 주지사인 샘 브라운백(공화당)은 같은 날 성직자와 종교집단이 동성커플의 결혼 또는 시민결합 허용을 반대하는 행위를 보호하는 행정명령을 발행했다.브라운백은 성명에서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로 구현되는 헌법에 입각해 통치할 의무가 있지만 또한 캔자스주 시민, 미국 국민으로서 품고 있는 종교적 자유도 인정받고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결혼은 합법이 됐지만 이 같은 거센 심리적 저항에 맞서 미국사회의 ‘현실’로 정착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AP와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가 올해 초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미국 국민은 44%로 반대(39%)보다 많았지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커플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57%가 ‘그럴 수 있다’며 반대(39%)를 크게 앞섰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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