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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광주, “환장할 대통령 땜시 환장허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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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광주, “환장할 대통령 땜시 환장허겄소”

입력
2016.11.1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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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일어선 5ㆍ18민주광장

시민 5만여명 촛불 속 횃불도 등장

박근혜 퇴진 광주 10만 시국촛불 대회가 열린 19일 오후 광주 동구 5ㆍ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 광주 10만 시국촛불 대회가 열린 19일 오후 광주 동구 5ㆍ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0%의 땅, 그곳에서 다시 타오른 5만여 개의 촛불은 끓어오르는 분노 그 자체였다. “제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당장 하야하라.” 귀를 막고 돌아선 대통령을 돌려세우려는 외침엔 간절함마저 배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0%. 광주에서 3주째 계속되고 있는, 이 믿기지 않는 ‘영(0)의 행진’은 쉽사리 깨지지 않을 듯 했다.

19일 오후 6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과 금남로에서 열린 광주 10만 시국 촛불대회가 이를 입증했다. 광장과 도로를 가득 메운 5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은 촛불을 치켜들며 “이젠 우리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어도, 다 들리고 다 보인다”고 했다. ‘샤먼 대통령’이라는 조롱을 받는 박 대통령을 풍자한 것이었다. 이는 최순실(60)씨의 국정 농단 파문의 몸통이 박 대통령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말이었다. 박모(53ㆍ광주 서구)씨는 “그만큼 (최순실씨와 국정을) 말아먹었으면 된 것 아니냐.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더 이상 구차하게 자리에 연연해 하지 말고 빨리 내려오라”고 일갈했다.

그랬다. 이날 어둠을 뚫고 광장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은 모두 투사라도 된 듯 저마다 울분을 토해냈다. “환장할 대통령 때문에 정말 환장하겄소.” 집회가 시작되자마자 광장 바닥에 주저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최진철(44)씨는 “나라를 망친 그녀는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며 “그런데 그녀는 왜 그 자리에서 안 내려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옆에 앉아 구호에 맞춰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던 안모(50)씨가 거들었다. “뭐, 대통령 자리가 비면 나라가 위험하다고요?. 허허,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는 걸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잖아요. 쯧쯧.”

19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주관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시민단체가 광장 분수대에서 횃불을 들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오후 8시기준 주최측 추산 10만명, 경찰추산 1만9000명이 참석했다. 뉴시스
19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에서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주관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시민단체가 광장 분수대에서 횃불을 들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오후 8시기준 주최측 추산 10만명, 경찰추산 1만9000명이 참석했다. 뉴시스

이날 촛불 집회가 열린 5ㆍ18민주광장은 다시 일어선 ‘광장(廣場)’이었다. 1980년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분수대를 에워싸고 열렸던 ‘민주화대성회’를 연상케 했다. 실제 이날 분수대 주변엔 ‘80년 5월 광주’를 재연하듯 수십여 개의 횃불을 밝히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다만 그 때와 다른 게 있었다면, ‘나라를 걱정하는’ 중ㆍ고교생들의 쓴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는 것이다. 이날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에 나선 이석빈(15)군은 “그녀는 우리를 대표하는 대표자일 뿐 우리보다 높은 사람도 아닌데, 자신이 여왕인줄 착각하고 있다”며 “심심한대 나도 대통령 한 번 해볼까요? ‘닭’도 하는데, ‘개ㆍ돼지’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힐난했다. 김소원(18)양도 “국영수보다 중요한 건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시국집회에 지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화대성회'를 재현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횃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시국집회에 지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주화대성회'를 재현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횃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하옥시켜라” 이날 3시간 넘게 계속된 ‘촛불 함성’은 광주시민들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날 광주시민들(박근혜퇴진광주시민운동본부)은 시국선언문을 내고 “우리 주권자들은 국정과 헌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을 환수하기 위해 나섰다”며 “정권을 퇴진시키는데 머물지 않고 반드시 ‘국민권력’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시국선언문은 또 한번 ‘촛불 민심’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대부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되뇌었다. 오전부터 빗물을 머금고 있던 하늘을 쳐다보며 광장을 빠져나가던 김영국(57ㆍ자영업)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이렇게 되뇌었다. “차라리 이 모든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의 좋은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이렇게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세상을 만든 어른들이 부끄럽습니다. 하늘을 한 번 보세요.” 그래서일까. 이날 함성이 가득했던 5ㆍ18민주광장의 밤하늘도 글썽거리는 듯했다.

글ㆍ사진=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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