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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한민국의 노동자

입력
2014.11.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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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은 모순의 현장을 지나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권력과 재벌기업의 건물이 있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약자들의 하소연이 있다. 내로라하는 신문사가 있고 그들 신문의 보도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에서 11일 아침에 본 풍경은 여느 때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고 만장이 줄지어 있었다. 입주민의 비인격적 대우를 견디지 못해 분신한 아파트 경비원 이만수씨의 영결식이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 작은 공간을 메운 사람들이 그를 영영 떠나 보내며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영정 속 이만수씨는 말이 없었다. 그의 분신은 참을 수 없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약자를 짓밟고 괴롭히는 추악한 권력욕이다. 경제지상주의와 경쟁만능주의가 굳어진 한국 사회는 돈과 권력의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계기로 경비원에 대한 관심이 잠시 커질 수는 있어도 이 사회에서 비슷한 일이 근절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버스 차창 너머로 보았던 영정 속 이만수씨의 담담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12일 출근길 버스 창문으로 건너다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은 보통 때보다 더 떠들썩했다. 뉴스 전광판 위로 현수막이 나부꼈고 그 꼭대기에 누군가가 올라가 있었다. 위험하고 불안한 25m 높이의 구조물 위로 사람이 올라갔다는 것은 그들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상에 발을 붙일 수 없어 고공 농성에 들어간 두 사람은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앰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해고자 109명의 원직 복귀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주장했다. 이들은 120일 이상 거리에서 노숙 농성을 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알렸지만 이 사회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았다. 이들을 저 위험한 전광판 위로 올린 것은 사회의 무관심이다.

이만수씨 영결식이 열린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언제부턴가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서명대가 설치돼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숨진 조합원과 가족의 명복을 비는 작은 분향소도 한 켠에 있다. 법원은 13일 쌍용차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이므로 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이날의 판결로 생명을 바쳐가며 염원했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회사 복귀가 사실상 무산됐다. 해고노동자들이 법원 앞에서 해고 유효 소식을 듣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훔친 것은 그래서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의 신음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14일 대한문 앞 쌍용차 서명대는 여전히 한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심하다. 이제 쌍용차 문제는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법원의 판결을 뛰어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것을 당장에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쌍용차 사태는 고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제조업 기업을 서둘러 매각하려 한 정부와 채권단의 정책과 판단에 대한 평가이고 노사 갈등에서 일방적으로 사측을 편든 정부의 불공평에 대한 문제 제기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쌍용차 노조원들이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맞서 파업할 때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의젓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가 경찰에 두들겨 맞고 끌려나가는 모습이 노조원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됐는데 3년 전 만났던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이를 두고 “노조원들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 당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그토록 복직을 원했던 것은 훼손된 존엄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비인간적 모욕에 맞서 분신한 이만수씨나, 세상의 무관심에 맞선 케이블방송 조합원 모두 존엄을 지키려 한 것이다.

며칠 동안 수도 서울 도심의 출퇴근 길에서 경험한 2014년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은 이렇게 어두웠다.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지 44년(13일)이 됐지만 대한민국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노동자들의 눈물이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박광희ㆍ부국장 겸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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