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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잃은 사회, 냉소적이거나 무기력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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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잃은 사회, 냉소적이거나 무기력해져

입력
2016.07.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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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묻는다. 학교는 뭘 가르쳤나. 질타다. 정작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나. 저자는 답을 안다. 불순해서다. 책을 쓴 건 불신을 심고 불온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학교가 바뀌고 세상도 달라진다는 신념에서다. “균열은 질문에서 비롯된다.”

경북 한 읍 중ㆍ고교 국어 교사인 그는 스스로 여기기에 “교육 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되지만,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학교란 우리 사회의 정확한 축약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질문이 없다는 특성을 매개로 제유(提喩)는 성립한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복종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만들되 민주사회 시민을 길러내는 학교는 아니다. 교사의 노릇은 국가 지배권력의 대리자다.

“학생의 요구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의하기보다 학생이 공손하냐 아니냐에 민감한” 교사들을 그는 비난한다. 신랄하다.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사가 학교장에게는 마조히즘적 성향으로 복종하고 아이들에겐 사디즘적 성향으로 복종을 강요한다.”

질문을 잃은 사회는 긍정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무기력하다. 신의에 의해 정의가 구축된다. 그 반동을 작동시키는 정서는 공포와 비겁이다. 공동체의식을 떠받치는 연민과 다르다. 권위 위에 창조가 포개지지는 않는다. 그런 시도는 무능 아니면 기만적인 시늉에 불과하다.

학교는 이데올로기(선전) 도구다. “지배권력은 그들 지배를 지속하기 위해 그들의 사상과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규정하고 교육을 통해 대중에게 스며들게 한다. (중략) 지배계급의 의식이 대중에게 교육되고 주입될수록 그것은 상식이 되고 대중은 동의하게 된다.”

‘불온해져라.’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지배사상을 의심하고 체제에 맞서라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각성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래서 질문이다.” ‘멸균된 지식’은 국가 정신위생이 만든 환상이다. 마취에서 깨어나 환멸을 느껴야 한다.

“거짓세상에서는 불온한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불온서는 ‘전태일 평전’과 ‘지식인을 위한 변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큐정전’ 등이다. 학교가 숨기는 것을 드러내는 고전들이다. 묻는 이가 생각하는 이다. 생각하자. 비밀은 없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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