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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혈우환자 고통 주는 혈우재단

입력
2015.04.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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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혈우인의 날’(17일)을 즐겁게 맞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혈우병은 혈액 속 응고인자 부족으로 출혈시 지혈에 어려움을 겪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현재 최선의 치료는 출혈시 또는 평상시에 응고인자제제를 정맥투여해 응고인자 수치를 적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잘 정제되지 않은 혈장유래제제를 통한 바이러스 감염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떠올랐었으나 개발을 거듭해 현재는 유전자재조합방식의 치료제가 보편화했다. 따라서 평생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제가 필수인데 바로 이 치료제 때문에 혈우병 사회의 왜곡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2,000여 국내 혈우환자의 70% 가량은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 부설의원(서울 광주 부산)에서 치료제를 처방 받고 있다. 혈우병치료제를 처방하는 병의원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재단의원의 편의성과 혈우재단에서 시행하는 각종 환자지원사업의 혜택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1991년 당시 보건사회부는 국내 혈우병 환자의 등록 및 관리업무를 혈우재단으로 이관했고, 일선 병원에서 처음 혈우병 의심환자가 나오면 혈우재단의원에 등록 후 치료하도록 권하는 것이 매뉴얼화해 있을 만큼 국가적 혈우병관리의 책임이 재단에 전적으로 위탁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혈우재단이 1990년 설립부터 지금까지 혈우병치료제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 A제약사로부터 100%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아 운영돼오고 있고 A사의 퇴직임원들이 재단 사무국의 요직으로 ‘낙하산 투하’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재단의원에서는 A사가 아닌 다른 제약사의 혈우병치료제 일부를 입고조차 하지 않고 있고 더 개량된 치료제 처방을 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결국 재단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힌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재단의원 이용의 혜택을 포기하고 멀리까지 병원을 옮기는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다. 이를 ‘선택과 집중’과 같은 경제논리만으로 합리화하기에는 한국혈우재단이 가진 사회적 책임과 공익성, 지금까지의 업적과 앞으로의 역할에 비추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재단의원에 입고되지 못했던 약품 중 하나는 지난 해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그 약품을 사용하던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치료제(일부 A사 제품)로 바꿔야 했으며 재단의 이러한 편향된 운영은 환자의 치료선택권을 계속 좁히는 결과로 이어져 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서 언급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환자들이 A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10년째 공방)에 ‘혈우병관리의 글로벌리더’를 자처하는 재단이 침묵으로 일관해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까지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문제는 현 상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개발될 약효연장 치료제, 먹는 치료제, 그리고 최근 들어 정부가 공들이는 유전자치료기술 등의 혜택이 혈우병과 같은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얼마나 빠르게 잘 적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도 닿아있다. 아무리 진보된 치료법이 개발되더라도 특정한 힘에 의해, 기득권에 의해 높고 높은 장벽에 막혀버린다면 얼마나 많은 희귀질환자들이 더 고통 받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 혈우인의 날’을 맞아 세계혈우연맹(WFH)의 기조인 ‘모두를 위한 치료’의 의미를 되새겨 한국혈우재단을 비롯한 한국 혈우사회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몫을 다해주길 바란다. 더 나은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에 대한 혈우재단의 ‘기다리라’는 응답이 ‘가만히 있으라’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혈우재단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의 폭넓은 관심도 절실하다.

김태일 혈우병환자단체(코헴회) 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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