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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재벌 후계 문제는 오너 집안일이 아니다

입력
2015.01.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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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 오너들, 특히 재벌 창업 오너들에겐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둘째, 하지만 대체로 자식들을 못 미더워한다. 셋째, 그러다 보니 고령이 되어서도 심지어 기력과 판단력이 쇠한 뒤까지도 본인이 직접 회사를 챙기려고 한다.

오너들의 이런 심리에는 다분히 한국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거의 모든 우리나라 대기업 창업자들은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진 척박한 산업 토양 위에서 남보다 덜 자고 더 일하면서, 때론 악마와도 손 잡고 더러운 일과 참기 힘든 수모까지 감내하면서 기업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피땀으로 일군 회사에 대해 사유의식이 매우 강하고, 사회화된 기업이기 이전에 누구랑도 공유할 수 없는 가업(家業)으로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손들에게 꼭 넘겨주려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들에겐 수익구조가 탄탄한 기업, 존경 받는 기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문에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기업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오너들의 눈에 기업을 물려받을 자식은 늘 불만족스럽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최고 교육까지 시켰지만 패기나 끈기, 결단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과연 내 아들이 이 거대기업을 이끌 수 있을까, 행여 3대도 못 가 남에게 뺏기는 건 아닐까, 늘 걱정이다. 장자승계가 순리라고 믿지만 장남이 미덥지 못하면 차남 3남을 놓고 저울질하기도 한다.

가업계승에 대한 불안과 미래계승자에 대한 불만은 결국 오너 본인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진다. 자녀의 경영수업이 완벽하게 끝났다고 판단될 때까지 모든 걸 직접 챙기려고 한다. 아들의 나이가 50이든 60이든, 본인 나이가 80이든 90이든, 개의치 않는다. 고령에도 매일 출근해 지시하고 호통치고 결재도장까지 찍는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회장님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노욕이 심하다’고 수군대는데도, 본인 혼자만 ‘아직 끄떡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쓰러질 때까지 회장직을 놓지 않는 창업주들도 적지 않다.

모든 오너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열 중 여덟 아홉은 이처럼 ▦가업상속에 대한 강박감과 ▦상속자녀에 대한 불안 ▦친정체제의 장기화로 이어지는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실제 경영권 승계는 물론 후계자 확정마저 계속 늦어지고, 이로 인한 혼란과 후유증이 종종 발생한다.

최근 장남의 전격 해임으로 돌연 후계논란에 휩싸였던 롯데그룹도 비슷한 경우다.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올해 93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장남)이 61세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차남)은 60세다. 한일 양국에서 큰 사업적 성공을 거둔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흔이 넘어서도 건재하다는 건 축하할 일이고, 그룹을 어느 아들에게 어떤 식으로 물려줄 지는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사안이다. 아울러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배경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로 인해 승계구도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아들들의 나이가 환갑이 되었는데도, 이 거대그룹에서 여전히 후계 구도 변화 운운하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고 어이없을 뿐이다.

가족중심의 우리나라 재벌구조에서 승계는 가장 큰 경영변수이자 리스크 요인이다. 하지만 LG그룹처럼 잡음 없이 승계는 물론 동업청산까지 마무리 지은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후계문제를 제때 확정하지 못해 낭패를 본 사례가 더 많았다. 옛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가장 적나라한 분란이었고, 부자간에 또 형제간에 거센 다툼이 있었던 동아제약이나 여전히 분쟁중인 효성그룹도 여기에 해당한다. 차기 총수를 일찌감치 정하고 실제 경영권이 승계된 뒤에도 ‘형제의 난’이 벌어진 그룹(금호아시아나 두산 한진)이 적지 않은데, 하물며 후계 확정을 계속 미룬다면 그건 큰 불씨를 떠안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룹 대권이 장남에게 가든, 차남에게 가든, 혹은 딸이나 사위에게 가든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후계구도는 명확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일찍 정해야 한다. 오너에겐 그게 ‘집안일’일지 모르지만, 이익은 사유화되는 반면 손실은 사회화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하에서 거대기업의 후계 리스크는 결국 일가뿐 아니라 시장이 함께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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