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르포] "김해공항 확장? 비행기 더 많이 뜨면 못 살아"

알림

[르포] "김해공항 확장? 비행기 더 많이 뜨면 못 살아"

입력
2016.06.22 20:00
0 0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어방동 활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소음피해 구역을 설명하고 있다. 김해=전혜원기자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어방동 활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소음피해 구역을 설명하고 있다. 김해=전혜원기자

“출산 직전에는 돌이라도 던지고 싶었습니다.”

14년째 김해공항 인근에 사는 윤모(50ㆍ여ㆍ경남 김해시 불암동)씨는 항공기 소음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민감해했다.

윤씨는 “항공기 소음이 천둥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다”며 “밤낮으로 소리가 날 때면 말 그대로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10시 50분부터 약 10분만에 윤씨 집 상공을 지나친 항공기는 4대나 됐다.

정부가 21일 신공항 용역결과에 따라 김해공항 확장을 선택하자 인근 주민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음대책지역 주민들의 실망감이 크다. 신공항이 생기면 김해공항의 수요를 분산해 항공기 소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정반대의 결과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반발이 거세질 경우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 입지선정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오후 항공기 착륙안내등이 설치돼 있는 경남 김해시 어방동 활천마을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김해=전혜원기자
오후 항공기 착륙안내등이 설치돼 있는 경남 김해시 어방동 활천마을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김해=전혜원기자

소음에 지친 주민들

이날 오전 김해공항 인근 김해시 어방동 수영마을 수영경로당에는 박정남(56) 통장과 주민 4명이 모여 전날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성토하고 있었다. 51년째 마을에 살고 있다는 최모(73ㆍ여)씨가 “못 산다. 국제공항이 되면 비행기가 24시간 뜰지도 모른다. 지금도 비행기가 뜨면 전화도 못 받는다”고 했다. 강모(75ㆍ여)씨는 “귓구멍이 빙빙 도는 것 같다. 집에서 담근 과일주를 마시지 않으면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맞장구를 쳤다. 김모(71)씨는 “3년째 수면제를 먹고 있다. 매일 먹는 건 아니지만 빈도수가 잦은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 통장은 “아무리 국가정책이지만 주민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며 “조만간 주민대책위를 소집하고 인근 마을끼리 연대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불암동 분도마을에서 한국공항공사 관계자가 항공기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은 오토바이가 지나갈때 소음수치. 김해=전혜원기자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불암동 분도마을에서 한국공항공사 관계자가 항공기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은 오토바이가 지나갈때 소음수치. 김해=전혜원기자

주민들이 토로하는 소음이 얼마나 심할까. 21일 오후 1시 35분 김해시 불암동 분도회관 앞에서 한국공항공사 건축설비팀의 도움을 받아 항공기 소음을 측정해봤다.

약 30분 간 4대의 항공기(여객기 3대, 군용기 1대)가 상공을 지났는데 69.7~77.4 dB의 분포를 보였다. 측정 중 시속 30㎞가량 지나는 1,10CC급 오토바이의 엔진소리를 측정했더니 67.6 dB로 나왔다. 항공기 소음을 재는 단위는 웨클(WECPNL)로, 소리의 크기인 데시벨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심각한 소음에 시달리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한 주민은 “오토바이 엔진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 이상의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더욱이 우리는 이런 소음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했다.

부산시 등에 따르면 비행기가 이ㆍ착륙하는 인근에는 25개 마을 702가구(강서 649가구, 김해 53가구)가 살며, 전체 소음 피해 지역은 16.47㎢다. 국토부와 부산시가 과거 실시했던 여섯 차례의 김해공항 확장 용역에서 소음 문제가 큰 걸림돌로 작용, 이미 확장 불가 판정을 받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확장 불가한 김해공항의 문제로 시작된 신공항 건설이 다시 문제로 돌아온 게 이번 정부 방침의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새 활주로가 들어설 부지의 투기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해시 삼방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56)씨는 “이 일대 땅을 미리 구입, 개발지로 수용될 경우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벌써부터 김해공항 새 활주로를 건설하는 부지나 인근의 부동산 투기열풍을 유심히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의 김해국제공항과 주변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의 김해국제공항과 주변의 모습. 연합뉴스

“생계와 이주 모두 걱정”

서낙동강을 건너 부산 강서구로 10여분 간 달리자 김해공항 북측의 신평마을이 나타났다. 부산 강서구 대저2동 신평마을은 김해공항 확장에 따라 일부가 편입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정부의 계획안에는 김해공항 서쪽에 V자 모양으로 활주로 1본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활주로 신설 소식에도 불구 지역 발전이나 부동산 개발을 기대하는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지주들은 거의 없고 대다수가 소작농들이기 때문이다.

주민 엄계봉(60)씨는 “이곳은 일본 귀향동포 2~3세대들이 주로 살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 노역을 하다가 돌아온 뒤 땅을 분할 받았다”며 “사실 땅은 국방부 소유라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지만 갈대밭을 옥토로 만들고 농사를 지어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냥 나갈 수는 없다”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신평마을에는 항공기 운영 2시간 추가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지난 3월 부산시가 항공기운항제한시간(커퓨타임)을 기존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에서 앞뒤로 1시간씩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난 터였다. 시는 오는 10월까지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김기을 김해공항소음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소음피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다”며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봐야겠지만 인근 주민들을 위한 후속대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성진 신평마을 통장은 “자기 땅이 아닌 주민이 90%가 넘다 보니 소음도 소음이지만 이주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라며 “보상에 대한 기대심리는커녕 쫓겨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