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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들녘의 대합창... 늘 평화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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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들녘의 대합창... 늘 평화이게 하소서

입력
2015.09.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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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의 소이산 정상에 오르면 드넓은 철원평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며 마냥 평화롭게만 보이지만 저 들판 위엔 서늘한 분단의 긴장이 맴돌고 있다. 철원=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강원 철원의 소이산 정상에 오르면 드넓은 철원평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며 마냥 평화롭게만 보이지만 저 들판 위엔 서늘한 분단의 긴장이 맴돌고 있다. 철원=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소이산의 높이는 362m에 불과했지만, 그 높이가 품은 전경은 장쾌했다.

발 아래 드넓게 펼쳐진 철원평야에는 이제 막 노랑이 번지기 시작했다. 풍요로움을 전하는 빛으로 황금빛 들판 만한 게 또 있을까. 노랗게 익어가는 평화로운 벌판에서 분단의 긴장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얼마 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촉발됐던 남북 위기상황의 긴장감을 지금의 이 풍경과 비교해본다. 양측이 포문을 열고 대치했던 급박했던 순간이 언제 있기나 했었냐는 듯 고고리 팬 벼는 너른 들을 캔버스 삼아 바람의 그림을 그려댔고, 사냥 나온 매는 남과 북의 창공을 자유로이 휘저으며 맘껏 가을볕을 희롱했다.

소이산 정상 전망대서 본 철원평야. 왼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김일성고지이고 오른쪽 산자락 아래 낮고 작은 언덕이 아이스크림고지다. 이성원기자
소이산 정상 전망대서 본 철원평야. 왼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김일성고지이고 오른쪽 산자락 아래 낮고 작은 언덕이 아이스크림고지다. 이성원기자

하지만 저 평화로워 보이는 노란 들판의 기저엔 참혹한 전쟁의 핏빛이 짙게 배어있다. 들판을 멀리서 두르고 있는 산자락엔 유난히 ‘OO고지’란 이름이 많다. 왼편의 산자락 가운데 하나가 피아 2만의 목숨을 앗아갔고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이고, 유난히 암봉을 많이 드러내며 우뚝 솟은 고암산은 ‘김일성고지’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중앙의 저 멀리 짙게 펼쳐진 평원이 평강고원이고, 오른쪽 들판 한가운데 살짝 솟은 작은 언덕 같은 봉우리가 ‘아이스크림고지’다. 219m 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그 입지의 중요성 때문에 아군과 적군이 쏟아 부은 포탄에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렸다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고지와 봉우리 말고도 저 철원들판은 끔찍한 전흔을 감추고 있다. 민간인 출입 통제소가 있는 들판의 한복판은 옛 철원 시가지가 있던 곳. 일제 강점기 철원은 배부른 평야를 품은 데다 경원선과 금강산전기철도가 지나는 교통요충지로, 인구 2만명이 북적대며 당시 대전 수원 춘천에 버금갔던 큰 도시였다. 광복과 함께 찾아온 분단으로 부의 동맥인 경원선이 끊겼고, 6ㆍ25가 발발한 뒤엔 전쟁의 중심에 서는 부침의 역사를 맞게 된다. 2년 여 걸쳐 중부지역에서 접전이 펼쳐졌고, 특히 철의 삼각지대 일대서 벌어진 혈전으로 철원의 시가지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폐허는 문명 이전 원시의 형상처럼 지금의 자연이 보듬은 풍경으로 바뀌었다.

소이산 정상 전망대. 이성원기자
소이산 정상 전망대. 이성원기자

군부대가 지켜왔던 소이산 정상에 전망대가 마련된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소이산 자락을 휘감으며 정상까지 오르는 생태숲길이 조성돼 안보관광을 하는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 소이산은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됐던 곳이다. 함경도의 소식이 한양까지 전해지는 핫라인의 중요 거점이었다.

소이산 9부능선에 조성된 전망대. 이성원기자
소이산 9부능선에 조성된 전망대. 이성원기자
소이산전망대 난간엔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적힌 리본이 잔뜩 매달려 있다. 이성원기자
소이산전망대 난간엔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적힌 리본이 잔뜩 매달려 있다. 이성원기자

산의 9부 능선에 정자 모양을 갖춘 전망대가 있지만 여기는 그냥 지나쳐도 된다. 산 정상의 전망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가릴 것 없는 툭 트인 시야에 환호가 절로 나온다. 철원평야의 풍요로운 들판과,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북녘 땅이 어우러진 오묘한 분단의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노동당사 전경.
노동당사 전경.

소이산 들머리에 노동당사가 있다. 총탄에 파괴되고 건물의 골격만 남아있는 6ㆍ25 격전의 상징으로 남은 건물이다. 전쟁의 참상을 이렇게 온전히 제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물도 드물다.

골격만 남은 노동당사.
골격만 남은 노동당사.

노동당사의 뻥 뚫린 공간을 응시한다. 멸(滅)의 순간을 포착한 스크린을 감상하는 듯하다. 포탄에 바스라진 벽돌의 잔해를 양분 삼아 건물의 창틀에선 생명의 초록이 움을 틔우고 있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주위에서 신도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주위에서 신도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노동당사와 멀지 않은 곳에 도피안사가 있다. 개인적으로 20대 후반,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할 때면 찾아갔던 절집이기도 하다.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른다는 이름을 가진 사찰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찾았던 곳이다. 노거수에 기대 작은 절마당을 바라보며 마음을 삭이다 돌아오곤 했다.

도피안사의 철불.
도피안사의 철불.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엔 신라말에 만들어진 국보 63호인 철불(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쇠빛 자체만으로 곱디 고운 불상이다. 한때 사찰에서 그 민낯의 불상에 금도금 불사를 벌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07년 문화재청이 나서 다시 금칠을 벗겨내면서 철불은 다시 쇠빛을 찾았고 아름다운 미소도 살아났다. 철불의 뒷면엔 언제 어떤 연유로 불상이 만들어졌는지가 자세히 새겨져 있다. 이를 요약하면 ‘석가불이 돌아가신 지 1,806년이나 지난 혼탁한 말세에 다시 한 번 부처님 가르침을 깨우치고 실현하고자 철원향도 1,500명이 모여 굳센 의지로 불사를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들의 염원과 달리 그 ‘혼탁한 말세’는 그 이후로도 지겹도록 반복돼 왔고, 철원의 들은 시뻘건 피로 흥건히 적셔져야 했다.

철원평야의 누런 벼들이 일렁인다.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손짓처럼.

철원=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사냥 나온 매 한마리가 철원평야의 창공을 날고 있다.
사냥 나온 매 한마리가 철원평야의 창공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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