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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마냥 자연이라고? 때론 자연을 거슬러야 하는 게 농사"

입력
2014.08.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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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비닐 불용 원칙에 발등?

잠깐 다니러 오는 지인들은 개불알풀꽃·개망초에 감탄

"태풍, 이 망할 것이 자연"

"아저씨 태풍이 또 올라온대요"

밤나무밭 풀베기 단상

줄행랑치는 개구리·방아깨비들 '아바타' 나비족 연상돼 씁쓸

아직 실감할 순 없지만 쌀 수입 개방 소식에 논에 올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관세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죽지야 않겠지만 죽지 못해 사는 데까지 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아직 실감할 순 없지만 쌀 수입 개방 소식에 논에 올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관세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죽지야 않겠지만 죽지 못해 사는 데까지 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개불알풀꽃. 요즘은 ‘봄까치꽃’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발음하기는 지금이 나아 보인다. 제 아무리 귀하고 예뻐도 밭에 자라는 야생화는 농부에게 ‘웬수’같은 잡초일 뿐이다.
개불알풀꽃. 요즘은 ‘봄까치꽃’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는데 발음하기는 지금이 나아 보인다. 제 아무리 귀하고 예뻐도 밭에 자라는 야생화는 농부에게 ‘웬수’같은 잡초일 뿐이다.
100년 만에 한번 핀다는 '고구마 꽃' 이 우리 농장에도 피었다. 길조로 여기면 좋겠지만 극심한 기후변화에 시달렸을 때 개화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
100년 만에 한번 핀다는 '고구마 꽃' 이 우리 농장에도 피었다. 길조로 여기면 좋겠지만 극심한 기후변화에 시달렸을 때 개화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타당성 있어 보인다.
재작년 태풍 볼라벤에 쓰러진 밤나무. 이번 주말 태풍 나크리가 북상한다는 소식에 온 몸이 굳는 느낌이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수 밖에 없다.
재작년 태풍 볼라벤에 쓰러진 밤나무. 이번 주말 태풍 나크리가 북상한다는 소식에 온 몸이 굳는 느낌이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수 밖에 없다.

농막에 들어서서 예초기를 내려 놓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경쾌하다. 어라? 팝송인데 뭔 말인지 알겠다. 오! 원유헌이. 살아 있네.

대강 들어보니, 순간 순간에 의미를 두고 쉽고 가볍게 살자 뭐 그런 얘기다. 30대 나이에 그냥 맘 편한 것이 최고라고 하는 걸 보니 유명한 가수인데도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가사로 노래 만들었다간 내 처지랑 비슷해졌을 게 뻔하다. 모름지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정도는 가르쳐줘야 좀 나가는 거지.

또 커피 타령하는 DJ의 촉촉한 목소리를 뉴스로 돌려버렸다. 아나운서는 맨날 우울한가 보다. 최대한 슬픈 목소리로 시종일관이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슬프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가끔은 아까 그 DJ처럼 이유 없이 낭랑하게 읽어 내려 가면 안 될까. 내용까지 우중충하니 다시 채널을 돌리고 싶어진다.

그 때 휴대폰에서 경쾌한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친환경 시험장에서 발효식품 효능 및 제조기술에 대해서 교육이 있사오니…’ 2년 전 교육이 생각났다.

농사도 아직 별거 없었고, 시간은 많고, 식충이로 앉아 주머니만 비우느니 뭐 하나라도 주워들으려고 수 개월 동안 매주 한번씩 열심히 등교했다. 마침내 졸업장 옆에 차고 사각모에 가운 입고 사진도 찍혔다. 명색이 대학(친환경농업대학)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실 수업 시간 동안에는 대부분 멍청이처럼 앉아 있었다. 강의 내내 교수님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말씀에도 귓바퀴가 찢어지도록 기울여봤지만 도무지 해석이 안 됐다. 외국 유학하는 심정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다비재배하면 도장지가 다량 발생해 유인을 해주더라도 동계 전지할 때 수형을 잡기 힘들어요.” “과습하면 열과가 발생할 수 있으니 추비시에 에누피케이의 비율을 적절히 해야합니다.” 이걸 통역하면 이런 얘기다. “거름을 지나치게 주면 웃자라는 가지가 많이 생겨 휘어주더라도 겨울 가지치기 할 때 나무의 모양을 잡아주기 힘들다.” “물기가 많으면 열매가 터질 수 있으니 웃거름 줄 때 질소-인산-칼륨을 알맞게 줘야 한다.” 물론 지금이야 동시통역도 가능하지만 그 때는 받아쓰기 한 다음 집에 와서 인터넷 찾으며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수도작, 출수, 휴립, 분얼, 중경제초, 이런 말을 알아 듣는 도시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분명 우리말 같은데 알아 듣지도 못하고 뭘 모르는지조차 몰랐으니 ‘아 농사 인생 쉽지만은 않겠구나’ 실감했던 때였다.

머릿수건 벗어 두고 기름 떨어진 예초기에 휘발유를 부었다. 풀이 억세졌는지 두 시간도 안 돼 1리터가 동이 난다. 슬픈 아나운서는 또 안 좋은 얘기만 한다. “12호 태풍 나크리가 서해 쪽으로 북상해 주말에…” 너구리가 겁주고 지나 간 게 언제라고 또 나크리 인지 뭔지, 이것들도 ‘으리’ 형제들인가. 공자님 말씀이 생각났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태풍이 그치지를 않고, 잡초는 뽑으려 하나 손길 기다리지 않고 무성해지는구나.’ 망할 것들.

사실은 이 망할 것들이 바로 ‘자연’이다. 그런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자고 하면서, 자연을 원망하다니 그 자체가 모순이다. 가끔 TV를 보면 귀농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나와 멀쩡한 밀짚모자 아래 하얀 얼굴로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어서 농사를 결심했습니다”고 한다. 농사가 자연이라고? 뿌리랑 이파리만 있으면 그게 자연인가? 비닐하우스도 자연인가? 사람들에게 이로운 초목만 자연인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조금은 오만하다는 느낌도 든다.

원래 농사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하나하나 사람 손이 가야하고, 어울려 자라는 것들을 가르고 구분해 놓는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곡식이나 채소라고 부르고, 도움이 안 되는 건 죄다 앞에 잡(雜)자를 붙인다. 잡초, 잡목, 잡새, 잡놈. 그 중에서도 더 맘에 안 들면 해충이니 위해조수니 하고 분류를 한다.

지난 봄 농장을 방문했던 친한 누님이 감자 심을 밭에 천지로 핀 개불알풀꽃을 보면서 감탄해 마지않으며 물었다. “어머, 색깔두 예뻐라. 이게 무슨 꽃이야?” 대답했다. “잡초!” 또 얼마 전에도 지나다가 그냥 들렀다는 선배의 부인이 들깨밭을 점령한 개망초 등을 보며 말했다. “어쩜, 야생화 따로 구경갈게 없겠네요. 저 하얀 꽃들은 이름이 뭐예요?” 답했다. “잡초요. 맘에 드시면 다 뽑아가셔도 돼요.” 야생화 찾아 강원도 산골을 후비고 천연기념물 한 번 보겠다고 밤 낮 안 가리던 내가, 내 농사 번거롭게 한다고 해서 모조리 잡초라 부르는 신경질쟁이가 됐을까.

그때 나만의 멘토 장씨 아저씨가 농막으로 오셨다. “뭐 하시는가.”

“풀 깎았어요.”

“깎아도 자라는 거 뭐하러 자꾸 깎는가” 애쓴다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아저씨 태풍이 또 올라온대요.”

“태풍이 올라오지 내려가겄는가.”

“또 감 다 떨어지겠어요. 올핸 좀 큼지막하겠는데.”

“감나무 가지 두어 개 씩은 꺾어져야 가을 오지 공짜로 되겄는가.”

“아저씨 호박 하우스 또 무너지면 어쩌게요.” 장씨 아저씨는 재작년 태풍 볼라벤에 큰 피해를 입었던 경험이 있다.

“어쩔 것이여. 다시 하믄 되지”

이렇듯 인생 달관한 듯한 아저씨하고 말씀 나누다 보면 언제나 걱정도 시나브로 덜어진다.

“근데 자네 약은 안 한다 치고 비닐도 안 하는 건 뭔 고집이댜?”

이번에 물으신 것이 열번째쯤 되나 보다. 재작년 딴에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면서 나름 원칙을 세웠다. 이른바 ‘삼불용(三不用) 원칙’.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는 것, 사람을 사는 것, 비닐을 덮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아저씨도 농약이나 품을 사는 건 싫으면 그만이라고 치시지만 굳이 비닐까지 안 쓰겠다는 고집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사실 대부분의 농가가 작물 두둑에 보온과 제초를 위해 검은색 혹은 투명 비닐을 덮는다.

“아 유기농으로도 인정 받는데 문제 없고 잡초도 안 나고. 뭐가 싫은겨. 풀도 못 이기믄서” 답답한 마음도 있고, 안쓰러운 생각도 드시나 보다.

사실 비닐을 안 쓰는 건 그냥 싫어서다. 솔직히 아집이기도 하다. 비닐 아래의 작물 뿌리는 여름 내내 습하고 후끈거리는 땅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열대 작물처럼 자라게 되는데, 그것도 싫었고 겨울에 비닐이 아무데나 나뒹구는 모습도 싫었다. 대신 볏짚으로 두둑을 덮어 주거나 뽑은 풀을 다시 덮어줬는데 그걸 뚫고 나오는 놈들을 어찌할 수 없을 때는 풀한테 진 거다. 마지막 수단으로 통기성이 있는 제초매트를 깔아 주기도 한다.

괜한 원칙은 세워서 제 발등 찍은 거 아닌가 후회한 적도 있지만, 뭔가 좀 달라야 내 농사를 짓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고 예상은 얼추 맞았다. 자연 그대로 키울 순 없지만 그에 가깝게 키우려는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아저씨가 인사 대신 격려조로 “참 나. 용기가 가상타. 난 못 헌다”고 하시며 농막을 나서셨다. “아저씨두 참, 풀하고 싸우는데 뭔 용기까지.”

라디오속 슬픈 아나운서는 여전히 슬픈 얘기만 전한다. “쌀 관세화 결정에 따라 정부는…” 나도 슬퍼졌다. 이러다 나중에 이 나라에 휴대폰이랑 자동차 공장만 남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 적게 먹고 작게 차지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살게나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저 아래로 내려다보니 논에선 이삭거름 뿌려주느라 여기 저기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보인다. 누구는 논 갈아엎고 누구는 거름 주나 싶겠지만 대부분은 쌀 수입 개방을 실감하지 못한다.

다시 예초기 짊어 지려는데 자연농업 공부를 같이 했던 후배가 약초 달인 물을 좀 주겠다고 찾아왔다. “동생, 쌀 관세화 되면 어떻게 될까.” 사뭇 무거운 표정을 연기하며 물었다. 후배는 주저 없이 “행님, 관세를 메겨야 좋은 거 아니다요?” “이봐 동생, 관세 두는 대신 수입을 개방하겠다는 건데?” “아! 허긴 그거이 그 말이제. 행님, 농사꾼한테 뭐 나아지는 게 있었당가요. 다 그리 가는 거지라. 죽기야 허겄소.”

죽기야 하겠냐만 죽지 못해 사는 데까지 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행님, 미리 걱정하지 마쇼. 농사짓기 점점 힘들어질 거 뻔하고 살기야 빡빡허겄지만 우리는 우리꺼 곡식 만들 수 있잖애라. 난 걱정 안허요. 행님.” 동생아, 넌 노자 핏줄이냐 장자 친척이냐. 난 그래도 심히 걱정이 된단다.

여전히 뜨거웠지만 예초기돌리며 명상이나 해야겠다고 다시 나섰다. 팔 토시 끼고, 장갑 끼고, 머리에 손수건 두르고, 안전 마스크 쓰고, 목에 수건 걸쳤다. 구름 한 점 없는 검푸른 하늘을 째려보며 밤나무 아래로 향했다. 밤나무 밭은 올해 한 번도 베지 않았던 곳이라 정글 숲이다. 엔진을 시동하고 날을 들이대니 특유의 풀 냄새가 올라온다.

안전한 곳이라고 여겼던지 여기 저기서 꽤 많은 개구리들이 튀어 나오고 방아깨비들도 난리치며 날아다닌다. 기분이 이상하다. 어디서 본 장면 같다. 맞다. 영화 ‘아바타’다. 나는 먹고 살려고 남의 것 뺏으러 간 인류의 대표처럼 회전날을 휘저었고, 개구리와 곤충들은 나비족처럼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그깟 풀 안 깎으면 어때서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사정없이 부수고 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비족 편이었는데.

그 때 산까치 두 마리가 머리 옆으로 스치더니 지척에 내려 앉았다. 왜 그러지? 예초기를 계속 돌리는데 한 1분 간격으로 내 옆으로 스치며 지나간다. 이건 위협이다. 앉아 있는 놈을 노려보니 약간 시선을 비끼면서도 계속 이쪽을 향하는 게 영 거슬린다. 풀 깎기도 힘들게 스치는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마도 근처에 집을 짓고 새끼라도 깐 것 같다. 그러려니 하고 계속 일 하려니까 공격도 계속됐다. 왜 내 땅에 밀고 들어오냐는 투였다.

‘야이 잡새들아! 여기 내 땅이라구 임마! 3년 전에 사서 세금도 냈고, 계속 밤도 주웠고, 맨날 왔다 갔다 했거든!’ 등기부등본을 떼다가 보여줄 수도 없고,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여기는 니 땅 내 땅 없이 더불어 살자”고 혼자 타협하고 고추 고랑으로 내려왔는데도 공격은 계속됐다.

그냥 쉬어버릴까 하다가 저온저장고 앞에 자리공 무더기라도 정리해야지 싶었다. 산까치에 당한 굴욕이 치밀어 굵지만 약한 가지들을 쳐나가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퍽! 뭔가 정수리 부근을 쑤시고 도망갔다. 말벌이었다. 예초기 벗어버리고 마스크 뒤로 날리면서 농막으로 뛰어 들어왔다. 찬물로 쏘인 부위를 씻어봤는데 통증이 커지고 가슴도 벌렁거렸다. 병원가서 주사라도 맞아야겠다고 급하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병원 도착하기도 전에 혼절하면 어떡하지’ 별 상상을 다하면서 달렸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아이고 하느님~ 자연이고 나발이고 오늘은 저부터 살려주세요.’ 가슴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렸다. 식은땀 날리며 달리는 중에도 벌에 대한 적개심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런 잡해충 같은 말벌 놈들, 내 싸그리 없애 줄거다아~!”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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