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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0만 쿠르드족 독립국가의 꿈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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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0만 쿠르드족 독립국가의 꿈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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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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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동에서는 이슬람국가(IS)라는 테러조직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대항 전력을 갖춘 쿠르드족 문제가 뜨거운 이슈다. 특히 시리아 쿠르드 인민방위군(YGP)이 IS가 2014년 9월부터 4개월간이나 점령하고 있던 시리아 북부 쿠르드 거주지역 코바니를 재탈환하면서 IS가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하자 국제적인 관심이 새삼 쿠르드족에게 쏠리고 있다.

쿠르드족들이 쿠르드족 국기를 휘두르며 노루즈축제를 즐기고 있다. 매년 3월 21일 부터 개최되며 우리로 치면 '설'과 같은 날이다. 이희수교수 제공
쿠르드족들이 쿠르드족 국기를 휘두르며 노루즈축제를 즐기고 있다. 매년 3월 21일 부터 개최되며 우리로 치면 '설'과 같은 날이다. 이희수교수 제공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인구 3,200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유랑민족이다. 그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이해관계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며 이들로부터 협력과 배신을 경험했고, 고향이 터키나 이란, 시리아 등으로 나뉜 뒤 강제동화와 차별 정책에 맞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해오고 있다.

지금 중동에서 쿠르드 문제는 팔레스타인 분쟁, 물 문제와 더불어 가장 첨예한 갈등의 핵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에는 그래도 평화를 위해 합의된 로드맵이라도 존재하지만, 쿠르드족의 거주지를 나눠 가진 5개국과 미국, 유럽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쿠르드 문제는 기본 합의틀 조차 없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중동 분쟁의 또 다른 뇌관이다.

그런데 쿠르드는 지금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에 적극 협력하며 미국의 신뢰를 얻었고, 터키 정부의 태도도 조금은 유화적으로 변한데다, IS 격퇴라는 현실적 필요성까지 겹치면서 나라를 잃은 후 2,000년의 역사상 가장 좋은 독립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와 터키 동남부 티그리스 강 상류를 포괄하는 ‘쿠르디스탄’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인종과 언어 측면에서는 이란에 근접한 인도ㆍ유럽어족에 속한다. 역사시대 이후 수많은 왕조의 지배를 경험하면서도 언어, 문자, 종교, 민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으며 종교적으로는 대부분이 이슬람교 수니파에 속한다.

오늘날 쿠르드인들의 비극적 운명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찾아왔다. 수백년간 오스만 제국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1919년 위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크게 고무되어 자치와 독립의 꿈을 품었다. 특히 1920년 8월 10일, 연합국과 터키 정부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 제64조는 ‘쿠르드족이 원한다면 조약 발효 1년 이내에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는 인위적 영토구획에 의해 쿠르디스탄이 5개국으로 분할되면서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의 영토로 강제 귀속되었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쪼개져 버린 것이다. 유전을 보유한 강력한 쿠르디스탄이란 국가를 원치 않았던 서구와 자국 영토의 4분의 1이 잘려나가야 하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로 쿠르드 독립안이 무산된 것이다. 중동에서도 가장 큰 인구집단을 가졌던 쿠르드인들은 5개국에서 각각 소수민족으로 전락했고, 민족 정체성이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신생국의 독립과 주권 부여라는 화려한 잔치의 그늘에서 인류 세계가 쿠르드족에 가한 가해와 강요된 침묵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함께 서구 제국주의가 남긴 20세기의 가장 무거운 책임에 속한다.

현재 쿠르드 인구 3,200만명 중에 터키에 1,500만명, 이라크에 500만명, 이란에 800만명, 시리아에 200만명 정도로 분산되어 있고 인근 아랍과 유럽 등지에 약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가장 많은 쿠르드인이 사는 터키는 동화와 민족 통합 정책을 채택했다. 1923년 설립된 터키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쿠르드어의 사용과 교육 자체를 엄격히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터키헌법 89항에서는 터키 영토 내에서 어떤 소수민족도 존재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쿠르드인들은 ‘산악 터키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터키정부의 강제 동화정책은 결국 1978년 쿠르드 노동당(PPK)이라는 무장 테러조직의 등장을 자극했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 군경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개시하여 지금까지 무려 5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강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터키 정부는 쿠르드인들에게 자국말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쿠르드어 신문과 잡지발행을 허용했다. 올 6월 7일의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쿠르드 정당 HDP(인민민주당)가 11.5%를 득표하여 58명의 국회의원이 의회에 진출하는 정치적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한편 이란의 쿠르드족은 터키인이나 아랍인보다는 언어 및 문화적인 유사성 때문에 종족적 갈등이 비교적 덜한 편이며 분리?독립보다는 자치권을 유지하면서 이란에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들은 내전 상황과 쿠르드 지역을 위협하는 IS에 대한 공포, 터키의 집요한 견제라는 삼중고 속에서도 IS에 가장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그나마 쿠르드족들의 자치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이라크이다.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쿠르드인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헌법에 의하여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첨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76년에는 20만명의 쿠르드족이 쿠르디스탄에서 쫓겨나 이라크 남부의 사막 지역으로 강제 분산되는 고통을 겪었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반정부 투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수백개 쿠르드 마을에 군인을 투입해 18만명을 체포하고 수천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87, 88년에는 사담 후세인의 명령에 의해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24개 쿠르드 마을에 투하하는 반인륜적 공격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특히 신경가스 공격을 받은 할랍자 마을에서만 5,000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재앙이 일어났다. 현재 이라크 쿠르드인들은 대학을 설립해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자국말과 방송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또 페쉬메르게라는 독자적인 군대조직을 조직해 쿠르드 독립에 가장 근접해 있다. 2004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미국과 함께 사담 후세인 정권 타도에 큰 공을 세움으로서 현재 이라크 정부에서도 대통령직을 보장 받을 정도로 지위가 향상되었다.

현재 쿠르디스탄의 자치와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주도적인 정치조직은 이라크의 쿠르드 민주당(KDP), 쿠르디스탄 애국동맹(PUK), 터키의 쿠르드 노동당(PKK) 등이다. 쿠르드 민주당은 쿠르드 자치투쟁의 신화적 영웅인 ‘무스타파 바르자니’의 아들인 ‘마수드 바르자니’에 의해 영도되는 쿠르드 최대 정치조직이다. 현재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을 맡고 있다. 전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가 이끄는 쿠르디스탄 애국동맹은 강력한 조직력으로 이라크의 쿠르드 민족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국제테러단체로 지목된 PKK는 터키정부와 휴전과 투쟁을 병행하면서 아직도 힘겨운 무장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쿠르디스탄 해방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서로 찢어져 경쟁하고 있는 다양한 쿠르드 정치 조직간의 단합과 협력이다.

필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쿠르드 지식인 베키르 탕크의 말이 이슬람권의 쿠르드 해결인식을 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국제사회가 기독교 집단인 동티무르나 남수단을 이슬람 국가의 지배로부터 독립시켜주었을 때, 우리는 큰 배신을 느꼈다. 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필리핀의 모로나, 체첸,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공동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점과 너무나 대비됐다. 쿠르드 독립은 이처럼 같은 이슬람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투쟁이기 때문에 몇 배로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서구 어떤 나라도 우리의 운명과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분명한 것은 민족적 자치와 문화적 동질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를 요구하는 쿠르드인의 열망이 계속되는 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자치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그 열망은 언젠가는 독립으로 실현될 것이다. 공존과 화해를 부르짖는 21세기의 길목에서 인류사회가 자기 말과 글, 원초적인 민족문화를 거부당한 3,200만의 인류 집단을 방치한다는 것은 인류문명에 대한 명백한 오점이다.

이제 서방과 쿠르드인을 소수민족으로 소유하고 있는 주변국가 모두가 정치적 해결을 통해 ‘쿠르드족의 문화적 동질성 보장 → 민족적 자치 → 무장투쟁 종식과 상호 불가침 협약 → 독립과 상호협력’이라는 단계적인 목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희 수(한양대 교수/ 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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