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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담배

입력
2015.0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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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거문도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민요들이 많다. 거문도 뱃노래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제 1호일 정도로 노래는 이곳 주민들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시다시피 민요는 민중들 삶의 사연과 호흡이 즉석에서 노래로 만들어지고 그중 호응을 얻은 것들이 후손들에게 이어진다. 그 중 화자(話者)가 여자인 노래에 이런 대목이 있다. ‘술 담배도 내 속을 알아주는데 왜 당신만 내 속을 몰라주나.’

거친 섬 생활과 배려심 없는 남편에 치여 사는 한 여인네가 그저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에 위안을 삼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이 노랫말을 듣고 술 담배 끊으라고 한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말 그대로 내 속을 알아주는 유일한 것이니까. 힘든 일 마치거나 무료할 때 담배 한 개비 피워 무는 모습은 그 사람의 피곤이나 쓸쓸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형상이다. (물론 다리 떠는 고등학생이나 가래침 뽑아 올리는 어른들의 꼴사나운 흡연도 넘쳐나지만) 연기를 뿜어 올리는 행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늘에 하소연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조왕신을 모셨다. 이때 모셨다는 말은 소박하고 친근한 경배로 이해해야 한다. 조왕신은 부엌 신이다. 부뚜막에서 타오른 불이 연기가 되어 굴뚝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기도란 결국 하늘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엌은 정화수를 떠놓는 자리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집구석 신들, 이를테면 달걀귀신이나 몽달귀신, 두꺼비나 뱀 형상의 업신 따위에 비해 조왕신은 훨씬 품위 있는 신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각을 잃은 사람은 저절로 담배를 끊더라는 어느 의사의 글을 오래전에 읽은 적 있다. 그는 그 글에서 시각적인 중독이 더 크다고 주장을 했는데 깜깜한 곳에서 피우는 담배는 별 느낌 없는 것으로 봐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흡연은 단순한 중독 이전에 연기 자체에 대해 외경과 기대의 심리가 깔려있는, 정서적인 행위로 보인다.

서경석 선생의 책 디아스포라의 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담배는 제3세계인의 유일한 오락거리이죠.” 나는 담배를 피운다. 담뱃값 올라서 당연히 곤란을 겪는다. 나에게 흡연을 유도한 존재는 국가였다. 폭력만능의 환경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배를 전매해 독점판매 하는 것도 국가였다. 심지어는 훈련소 입소를 하자 이틀에 한 갑 씩 담배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한라산과 은하수.

담배 경고문에는 “발암성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있다”고 적혀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좀 갸웃거려진다. 담배는 자연 상태의 풀이었다. 그 씨를 받아다가 재배하고 말려서 피우는 게 담배다. 예전에 종종 담배농사 짓는 후배 집에 가서 건조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독하긴 하다. 특히 건조 하우스 안에서 오래 있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지상의 어떤 풀 하나에 이렇게 사람 몸에 극히 안 좋은 것만 똘똘 뭉쳐 들어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담배회사에서 담배에 넣는 화학첨가물이 중독성을 높일 거라고 의심을 하는 쪽이다.

그 동안 우리의 담배인심은 세계 최고라고들 했다. 사실 그랬다. 담배 한 개비 정도는 미운 놈이 달라고 해도 그냥 주었다. 그 말은 쓸쓸함이나 불안함 같은 마음을 언제라도 남과 함께 나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제 그런 인심도 없어질 것이다. 고즈넉하게 앉아 한 대 피우는데도 이제 돈이 많이 든다.

물론 이 돈이 아이들 무료급식이나 장애우 복지 또는 최소한 대학생들 등록금 지원으로 간다면 기꺼이 동의하겠는데 4대강 보수 유지나 재벌들 규제완화, 부동산 부자들 세금 줄여주는 데 가는 것 아닌가. 말하다 보니 속상해서 손이 또 담배로 간다. 그러고 보면 가난한 이들 벗겨서 부자들 뒤 대주고 또 홍수처럼 새는 세금 메우고자 하는 이들의 계획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긴 한 것 같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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