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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첨단산업 ‘간접 연관성’ 인정한 산재 판정 의미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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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첨단산업 ‘간접 연관성’ 인정한 산재 판정 의미 크다

입력
2018.03.02 19:3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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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선 배전설비 보수 일을 26년 동안 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15년 급성백혈병이 발병해 4개월 만에 숨진 장모씨의 유족이 낸 산업재해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1일 밝혔다. 전자파가 암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정한 첫 판정이라는 의미도 적지 않지만 질병과 업무간의 연관성을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향후 산재 적용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일하다가 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했다. 이번 경우도 역학조사에 나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전기노동자 37명에 대한 조사에서 전자파 노출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건강에 미치는 확증적 증거는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내외 연구결과 분석에서도 전자파와 백혈병의 연관성은 아직 일관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단은 “의학적 인과성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개연성과 유발성, 유병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간접적 연관성이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공단의 결정에는 지난해 8월 대법원의 판결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을 얻은 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하면서 “(역학조사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으면 노동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참작하는 게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대법원은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직업병에 대한 경험ㆍ이론적 연구 결과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연구 결과가 충분치 않아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작업환경이 수시로 바뀌고 사용 물질에 대한 정보 제공이 제한되는 최근의 산업 현장에서 피해자와 가족이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상당수 노동자들이 이름도 모르는 유해물질에 노출돼 작업하고 발병 후에는 사측 방해로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피해자에게만 입증 책임을 과도하게 요구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 당국은 산재 인정에 인색하고 기업들은 산재를 줄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법원의 판례와 공단의 이번 결정은 업무상 질병 판정기준과 방법의 변화를 예고했다. 작업환경의 획기적 개선과 산재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하려는 기업들의 적극적 자세가 요구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관계당국과 기업의 자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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