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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부 옥죄는 세금 폭탄은 잘못" 못박은 대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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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부 옥죄는 세금 폭탄은 잘못" 못박은 대법 판결

입력
2017.04.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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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한 경우 증여세를 물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학재단에 180억원을 기부했다가 증여세 140억원이 부과된 ‘수원교차로’창업자 황필상씨 사건에서 사실상 세금을 취소하도록 판결했다. 기업들의 순수한 고액 기부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 온 현행법 개정 움직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선의의 주식 기부에 세금 폭탄’을 부과한 사례로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황씨는 2002년 회사 주식 90%(200억원 상당)와 현금 15억원을 아주대에 기증했다. 아주대는 황씨가 기증한 주식과 현금으로 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고 6년간 733명의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세무당국은 2008년 “황씨의 주식 기부는 현행법상 무상증여에 해당한다”며 재단에 증여세로 140억원을 부과했다. 현행 상속 및 증여세법은 기부 주식이 발행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할 경우 경영권을 넘기는 목적의 변칙 증여로 간주해 최고 60%의 증여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재단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1심은 재단측 손을 들어 줬으나 2심은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등 판결이 엇갈렸다.

소송 제기 7년여 만에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재판에서는 황씨가 재단 설립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황씨는 공익재단 설립 시 재산을 냈을 뿐 정관 작성과 기명 날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공익재단에 기부된 주식에 증여세를 부과하려면 기부자가 재단 설립 과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기부자가 설립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황씨가 아닌 아주대가 실질적으로 재단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고액 자산가의 기부 의지를 꺾는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됐다. 기부를 가장한 편법 증여는 막되 순수한 고액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 조항 개정안이 여러 건 계류돼 있다. 공익법인 출연재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공익 활동에 쓰도록 의무화하는 등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공익법인에 대한 비과세 증여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살려 법안 심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편법 세습 규제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선의의 기부를 막고 기부문화를 축소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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