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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노래하다, 투사가 된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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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노래하다, 투사가 된 이승환

입력
2016.11.0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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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소속사인 드림팩토리 건물에 걸었다. 양승준 기자
가수 이승환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소속사인 드림팩토리 건물에 걸었다. 양승준 기자

‘박근혜 하야’ 성지 된 드림팩토리

“신기해서요.” 지난 5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가수 이승환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인근에 산다는 한호수(25)씨는 건물에 걸린 현수막 사진을 찍고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 책임을 묻는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다. 드림팩토리의 설립자이자 소속 가수인 이승환이 만들었다. 대중 가수의 노골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한씨는 “사태 자체가 노골적으로 막장이잖나”라고 되받았다. 박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 규모도 어마어마한데다 민주주의 가치 훼손도 걸쳐 있는 심각한 문제인 만큼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올 수 있고 연예인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보탰다.

드림팩토리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하는 이들에게 뜨거운 ‘성지’가 됐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서 차창을 내리고 현수막을 쳐다보며 동승자와 얘기를 주고 받다 ‘현장’을 떠나곤 했다. 이승환 측에 따르면 자신을 구의원이라 밝힌 남성이 찾아와 “만약 현수막 게시로 문제가 생기면 연락 달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박근혜 하야’ 현수막의 나비효과는 한반도 남단 시골에까지 이어졌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에 사는 김현두(35)씨는 이승환이 건 현수막을 인터넷에서 보고 비슷한 현수막을 직접 만들어 카페에 내걸었다. 김씨는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저렇게 알려진 사람(이승환)이 위험을 무릅쓰고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걸 보고 놀랐다”며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면서 개탄하고 있던 터라 솔직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자는 취지에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승환은 정치·사회적 소신 발언 및 행동을 하는 이유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드림팩토리 제공
이승환은 정치·사회적 소신 발언 및 행동을 하는 이유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드림팩토리 제공

항의 전화 빗발쳐도…. ‘불의 앞에 중립 없다’는 이승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하야’ 현수막을 건 뒤 드림팩토리엔 항의가 빗발친다. “레이저를 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도 걸려 왔다. 이승환이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건물에 공연 장비로 레이저를 쏴 ‘박근혜 하야’를 요구할까 싶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승환 측은 “‘이승환씨 사생활을 현수막에 적어 밖에 걸면 기분 좋겠냐’는 황당한 항의 전화도 받는다”고 했다. 드림팩토리 앞을 지나가던 김모(79)씨는 “연예인이 중도를 지켜야지, 저렇게 편향적이면 쓰나”라고 혀를 찼다.

이번뿐이 아니다. 정치·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연예인을 색안경을 끼고 삐딱하게 보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승환도 “동료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제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했다. 일부는 ‘불똥’이 튈까 그를 멀리하기도 했다.

이승환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소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권(2008~2013)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시작으로, 이듬해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유가족 돕기 공연 등에 참여하며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 왔다. ‘발라드 왕자’의 공격적인 행보에 놀라는 이들도 많았다. 이승환은 2015년 한 방송에서 그런 변화의 계기와 관련해 “예전엔 그런 생각들을 안 하고 살다가 누군가의 대선 출마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승환이 지목한 이는 이 전 대통령이었다. 4대강 문제 등을 지켜보며 “불의 앞에선 중립을 지킬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이승환의 말이다. 그는 ‘박근혜 하야’ 현수막을 단 뒤 “영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싶다”고도 했다.

절망에 빠진 국민 위로 노래 ‘길가에 버려지다’ 작업

이승환은 현 정권 들어서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에 목소리를 내며 굵직한 사회 현안들로 대중의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후배들과 부지런히 교류하며 사회적 고민을 나눈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됐을 때도 문화계 서명운동을 후배들에게 소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고 밴드 피아 멤버 옥요한은 전했다. 지난해 11월엔 홍익대 인근 클럽에서 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공연을 직접 기획했는데, 밴드 와이낫 멤버 전상규에 따르면 “너희 이 공연 참여하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기도 했단다. 그의 머리, 그리고 가슴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래퍼 MC 메타)이 이런 적극적인 행보를 이끄는 동력일 터이다.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어린 왕자’란 말을 제일 싫어하고,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 붙이는 ‘뚝심남’ 캐릭터라는 게 후배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현수막이 끝이 아니다. 이승환은 동료 음악인 이규호와 함께 최씨의 국정농단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곡 ‘길가에 버려지다’ 작업(12월 공개 예정)에 한창이다. 총 1억원 상당의 공연용 레이저 장비들을 활용한 프로젝트도 고심하고 있다. 이승환의 지인은 “더 많은 사람들과 ‘최순실 게이트’ 관련 고민을 나누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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