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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냐 ‘묻지마’ 살인범이냐…흔들리는 테러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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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냐 ‘묻지마’ 살인범이냐…흔들리는 테러 정의

입력
2016.07.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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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트럭테러가 벌어진 프랑스 니스 해변가에서 17일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4일 밤 트럭테러가 벌어진 프랑스 니스 해변가에서 17일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니스 트럭‘테러’, 미국 올랜도 게이클럽 ‘테러’ 등 연이은 테러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대형 참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범행 동기가 드러나고 있지 않아 이런 사건들을 테러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묻지마’ 살육 행위가 성급하게 테러로 둔갑하면서 테러리즘의 정의(定義)가 크게 흔들린다는 지적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출현 이후 테러리즘의 범주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테러의 정의가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폭력 행위’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정치적 신념과 무관한 대량 살상 행위도 IS의 주장에 따라 테러로 쉽게 규정되는 양상이다. 14일 밤 발생한 니스 트럭테러는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프랑스 정부는 용의자 모하메드 라후에유 부렐(31)과 이슬람 극단주의 간 연계성이 불확실함에도 사건 직후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벌인 테러”라고 규정했고, 이어 16일 IS가 선전 매체를 통해 범행을 자인하면서 부렐은 극단주의 테러범으로 확실시됐다.

실제 프랑스 대테러 당국이 발표한 정보에 있어 부렐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증거는 매우 희박한 상태다. 부렐은 과거 협박과 폭력, 절도 등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바 있지만 테러 관련 인물로 감시받은 기록은 없다. 이웃 증언에 따르면 부렐은 이슬람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에 단식하지 않았고 모스크에도 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부렐의 반사회적 성향, 정신적 불안정성에 대한 증언만 속출하고 있음에도 그는 프랑스 정부와 IS의 발표에 따라 황급히 테러범으로 돌변했다.

대량 살상 범죄가 눈 깜짝할 새 ‘테러’가 된 데는 프랑스 정부의 전략적 선택도 한몫을 했다. 참사를 빠르게 수습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신속한 해법을 내놓는 듯하면서도 사건 책임을 외부로 돌릴 수 있어 ‘테러 피해자’가 되는 선택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파하드 코스로카바르 연구원은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면 IS는 국제사회 내 존재감을 얻을 수 있어서, 정부는 외부의 적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며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다 보니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테러리즘의 느슨한 정의가 일으킬 부작용이다. 테러 전문가들은 테러의 개념이 넓어지는 것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에게 ‘테러’라는 명분으로 범죄를 저지를 여지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맥캔츠 연구원은 “많은 이들이 IS의 이름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며 “사회 부적응자들이 종교와 무관한 범행을 일으키면서도 명분을 찾을 수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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