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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미디어 전쟁-종편 선정 그 후] (2) 콘텐츠 빈곤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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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미디어 전쟁-종편 선정 그 후] (2) 콘텐츠 빈곤의 악순환

입력
2011.01.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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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재탕 삼탕 다반사…"막장 수입 프로" 범람도 불 보듯

정부가 내세운 종합편성(종편)채널 도입의 명분은 ‘시청자의 선택권 확대’다. 미디어 시장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 공급 구조를 깨뜨려 양질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보도, 교양, 오락 프로그램을 모두 편성할 수 있는 종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미디어 시장, 특히 방송 콘텐츠 시장의 현실에 비춰 보면 종편 출범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정책이다.

디지털 케이블, 위성TV, IPTV 등 다양한 뉴미디어 플랫폼의 출현으로 리모컨 재핑(채널을 바꾸는 행위)이 무척 피곤한 일이 됐을 만큼 채널은 이미 많다. 정작 문제는 그것을 채울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것. TV를 켜면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의 재방송이나 자막 처리된 수입 프로그램이 늘 적잖은 채널을 잠식 중이다. 따라서 시청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플랫폼(종편)이 아니라 독립제작사 지원책 등 프로그램 제작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격화하는 경쟁, 말라붙는 제작비

방송통신위원회의 ‘2010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콘텐츠를 위한 방송 시장의 투자는 급격히 줄었다. 경기가 불확실해지자 방송사들이 앞다퉈 비경직성 예산인 제작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유료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2009년 자체 제작비(공동제작 포함)는 전년에 비해 15.4% 감소한 2,115억여원, 외주 제작비는 22.7% 준 545억여원이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2009년 연간 총제작비도 7,551억여원으로 전년에 비해 15.8% 감소했다.

제작비 감소 추세는 3, 4년 전부터 감지돼 왔다. 방송 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비가 감소하면 콘텐츠의 품질 저하, 수입물의 방송 비중 확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매체별 채널별 경쟁은 오히려 격화하고 있다. 채널이 많아졌다고 광고 시장이 비례해서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비용으로 손쉽게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선택, 곧 선정적 방송 제작 압박에 방송사들이 내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종편의 등장으로 이런 흐름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송종현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시청률 경쟁은 방송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종편이 초창기에는 대주주인 신문사의 이미지 등을 고려해 선정적 방송을 자제하겠지만 제한된 자본으로 시청률을 뽑아내기 위해 결국 자극적 방송 제작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원래 학계에는 채널의 숫자와 방송의 다양성 사이의 상관성에 회의적 시각이 많다”며 “종편 사업자로 참여한 주주들이 방송 산업 발전을 위해 기꺼이 출혈을 감내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시각이 갈수록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헐렁한 규제, 종편이 쏟아낼 방송은

편성 영역에서 종편은 지상파와 사실상 차이가 없다. 그러나 방송법에 의한 편성 규제는 따로 받는다. 법적으로 종편은 PP에 속하기 때문이다. 국내제작물 편성 규제의 경우 지상파 방송은 60~80%를 의무 편성해야 하지만 종편은 일반 PP와 마찬가지로 20~50%의 규제를 받는다. 외주 제작물 편성도 지상파의 경우 40% 이내로 제한을 받지만 종편은 관련 규정이 없다. 따라서 제작 인력과 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종편은 외주 제작, 그리고 수입물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문행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케이블TV가 해외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현 단계까지 오는 데만 10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CJ 등 대기업들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다”며 “각 종편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그럴 돈과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종편이 한정된 콘텐츠 시장 인력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인력도 유입될 수 있다”며 이들에 의한 콘텐츠 열화 가능성도 제기했다.

종편이 비정상적인 국내 방송 콘텐츠 유통 구조를 고착화하거나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외주 제작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2008년에는 80%에 육박했다. 그러나 제작 현장의 열악한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 방통위에 따르면 독립제작사의 48.9%가 자본금 1억원 미만의 기업이다. 콘텐츠의 저작권을 놓고 방송사와 제작사 간 갈등도 반복된다. 여기에 제작비 감소와 제작 원가 상승으로 제작 시스템은 안팎으로 붕괴 위험에 처했다. 최근 간접광고(PPL)의 범람 등은 이런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송 교수는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방송 제작에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종편과 같은 플랫폼이 아니라 외주 전문 채널 같은 독립제작사들이 판권을 갖는 플랫폼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장밋빛 출범 후 적자 쌓이고 미래 불투명하고…뉴미디어 정책 길을 잃다

뉴미디어 정책에서 정부의 선택은 종종 실패로 귀결됐다. 산업의 흐름을 정교하게 읽지 못한 까닭도 있고, 정치 논리에 정책이 휘둘린 탓도 있다. 스마트TV로 등장할 방송통신 융합을 앞두고 무리하게 추진된 종편도 실패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학계에서는 “종편은 무선호출기 시대와 휴대폰 시대 사이에 잠깐 나왔다 사라진 시티폰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미디어 정책은 위성DMB 사업이다. 2004년 세계 최초의 DMB용 위성을 쏘아 올릴 때만 해도 위성DMB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사업 도입 당시 가입자와 연 매출이 각각 600만명, 1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유일한 위성DMB 업체 TU미디어의 가입자 수는 200만명, 2009년 당기순손실은 60억원을 기록했다. 누적적자는 3,000억원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TU미디어를 인수한 SK텔링크가 방통위의 재허가(2013년) 이전에 사업권을 반납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위성방송 사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유일한 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는 2001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6년 흑자로 돌아선 뒤 이듬해부터 3년 연속 200억원대의 흑자를 냈으나 2009년 말 현재 여전히 부채(3,441억원)가 자본(1,039억원)의 세 배를 넘는다. 2002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정보통신산업진흥원으로 통합)은 2006년이면 스카이라이프의 매출이 연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해 매출은 3,974억원에 그쳤다.

IPTV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인다. 방통위는 2008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IPTV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향후 5년간 8조9,000억원의 생산유발, 3만6,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9년 IPTV 산업 종사자는 3개 사업자 합계 406명에 불과하다. 매출액은 790억원으로 전체 방송 사업 수익에서의 점유율 0.9%였다.

유상호기자

■ 보수 논객도 종편선정 비판

보수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가 예상대로 4개 신문사가 종편 사업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태생부터 ‘정권과의 유착’이란 주홍글씨를 찍고 나온 종편은 다음 정권 때 역풍을 맞지 않겠나”라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종편 전성시대?’란 글에서 “(종편에) 불나방처럼 뛰어든 신문사들의 용기가 가상하다”며 “저녁뉴스를 보는 계층은 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연령층인데 이들을 상대로 기존 공중파 4개, 신규 종편 4개, 보도전문 2개 채널이 저녁뉴스를 내보내 봤자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구나 정권에 불리한 사실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땡X뉴스’를 되풀이하기 마련인 방송이 무슨 재주로 시청률을 높인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썼다. 또 향후 뉴스의 광고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광고규제를 풀면 미국처럼 비아그라와 관절염약 광고가 저녁뉴스에 많이 나오게 돼 그나마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혀 방송통신위원회의 의약품 광고허용 방침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이 교수는 종편 사업자가 보수 일색이라고 비난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보수는 언론사가 갖고 있는 일종의 성향이지 중요한 사실을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하는 언론이 보수일 수는 없다”며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사실 보도를 제대로 하느냐, 바로 그것이다. 제대로 된 보수 성향의 종편 방송이라면 나부터 그것을 보고 싶다”고 썼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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