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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에 ‘유통3법’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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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에 ‘유통3법’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입력
2017.11.13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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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ㆍ본부 등 갑을 문제 심각

소송남용 부작용 적다고 판단

“폐지 바람직하다” 의견 모아

하도급법 등은 폐지 결론 못내

악의적ㆍ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징벌적손배 배상액 10배로 강화

‘솜방망이 처벌’ 공정위 과징금

지금보다 2배로 높이는 방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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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참여연대는 편의점 가맹본부 BGF리테일(CU)과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가맹점주들에게 ‘월 수익 500만원’의 허위ㆍ과장 매출 정보를 제공해 현혹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무려 1,099일의 ‘장기 심의’ 끝에 2015년 10월에야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와 가맹점주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 때문에 검찰의 문을 두드릴 수도 없었다. 그 사이 편의점주 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을이 갑에게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공정위를 거치지 않은 채 곧 바로 검찰에 고발을 하거나 법원에 중지 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공정위만 행사할 수 있었던 가맹ㆍ유통ㆍ대리점법(유통3법) 위반 행위에 대한 검찰 고발(전속고발권)을 누구나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는 것은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7년 만이다.

김상조(왼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등에 대한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김상조(왼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등에 대한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공정위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 법 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8월 출범한 TF는 그 동안 현행 공정거래 분야의 법 집행 시스템 개선안을 논의해 왔다. 먼저 TF는 가맹사업법ㆍ대규모유통업법ㆍ대리점법 등 유통 3법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가맹점과 가맹본부, 백화점과 납품업자 등 ‘갑을’ 문제가 심각하고, 상대적으로 형사처벌 조항이 많지 않아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남소’의 부작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불공정행위가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까지 별도로 분석해야 하는 공정거래법과 달리 유통3법의 경우 위법 행위에 대한 판단이 어렵지 않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통 3법 관련 불공정 행위는 공정위를 거치지 않아도 곧장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TF는 또 공정거래법에 ‘사인(私人)의 금지 청구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이 거래 상대방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중지 명령’을 요구하는 것을 일컫는다. 지금은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시정 명령을 공정위만 내릴 수 있다.

그러나 TF는 나머지 법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 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도급법의 경우 원사업자가 중소기업이 아닌 하도급 거래에 한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부분 폐지’ 방안과 ‘현행 전속고발권 유지’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표시광고법도 전단지 배포 행위마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전락, ‘음해성 고발’이 난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하도급법 위반의 상당수가 중소기업”이라며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중소기업간 문제가 모두 ‘형사화’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핵심인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판단이 ‘보류’됐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의 대다수 조항은 ‘경쟁제한 효과’ 분석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법을 위반했다고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 행위가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등의 ‘폐해’가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 공약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TF는 ‘솜방망이 처벌’ 비판을 받았던 과징금을 현행보다 2배로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기업이 법 위반 행위를 통해 거둔 ‘관련 매출액’ 대비 과징금 부과율 상한을 담합은 현행 10%에서 20%로, 불공정거래 행위는 2%에서 4%로 각각 올리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담합사건 부당이득 대비 과징금 비율이 우리나라는 9%로, 미국(57%)이나 유럽연합(26%)에 비해 현저히 낮다.

TF는 또 현행 하도급ㆍ가맹ㆍ대리점법에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현행 ‘3배 이내’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배상액을 악의적ㆍ반사회적 행위에 한해 ‘10배’까지 높이자는 방안을 내, 눈길을 끌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의 악의로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에게 실제 끼친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TF 보고서를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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