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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급구! 구조조정 정책 전문가

입력
2018.03.04 14: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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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군산공장 근로자의 아내와 딸이 지난 27일 전북 군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위한 군산시민 결의대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며 '폐쇄 철회를 위해 노력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뉴스1
한국지엠 군산공장 근로자의 아내와 딸이 지난 27일 전북 군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위한 군산시민 결의대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며 '폐쇄 철회를 위해 노력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뉴스1

‘GM 사태’ ‘금호타이어 사태’ 등 기업 이름 뒤에 ‘사태’라는 단어를 붙이는 보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다룬 기사에는 긴 댓글이 이어진다. 그 댓글들을 읽다 보면 ‘평균 8,700만원 연봉을 받는 귀족 노동자’나 ‘정부에 손을 벌리며 경영실패를 덮으려는 뻔뻔한 경영진’ ‘이런 경영진이나 노동자를 감싸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대부분이고, 구조조정과 그에 따를 대규모 실업의 충격에 대한 우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 구조조정의 충격은 그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연관된 수많은 협력업체와 종업원, 이들에게 각종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 정부가 군산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은 구조조정을 특정 기업이 아니라 지역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려는 것이어서 올바른 결정이다. 앞으로 이 지역 관련 업체 종사자들과 소상공인들은 길게 3년까지 각종 정부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과 지역산업 구조를 재편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줄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달려있다. 그 비용을 부담할 납세자 상당수가 ‘퍼주기 식 대기업과 노조 지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정부는 우선 관련 기업 경영진에게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하며, 대기업 노동자들도 고통 분담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 다음 조만간 발표될 ‘군산 지역경제 지원대책’에 어떻게 지역경제를 지속 가능한 산업생태계로 변신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 혈세 투입이 언제 다시 곪을지 모를 상처를 봉합하는 대증요법에 머문다면, 상처가 덧나는 순간 지금보다 훨씬 큰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라리 지금 사업장을 폐쇄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국민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수지나 맞출 정도로 최소한의 경쟁력을 회복한 자동차ㆍ타이어 회사나 조선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미래 산업이 그 자리에서 성장할 수 있는 토양도 마련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드먼드 펠프스가 ‘대번영의 조건’에서 주장했듯이 지속가능한 번영은 단순히 공동체와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개인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모험을 감수하려는 기업가 정신을 고무 장려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조정 정책 전문가가 정부에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찾기 힘들다면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로 변신한 선진국 구조조정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행한 ‘지역경제보고서’에 실린 ‘스웨덴 칼마르 지역의 일자리정책에 대한 OECD의 권고’도 좋은 검토자료가 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82년부터 ‘지역경제ㆍ고용 촉진 프로그램’(LEED)을 운영하고 있는데,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한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LEED가 조선소 폐쇄로 어려움을 겪는 스웨덴 남동부 칼마르 지역 재생을 위해 권고한 정책을 소개하는 게 보고서 요지인데, 그 권고안의 정교함이 인상적이다. LEED는 우선 이 지역 노동자 숙련도와 노동정책 유연성 및 정책통합 정도 등을 평가하고, 지역 근로자와 고용주의 재교육 참여 가능성과 고용주ㆍ정부의 지원 정도를 측정한 후, 지역 기업의 금융 접근성ㆍ국제화 정도를 분석해 그에 알맞은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내 장기실업자나 장애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도 고려한 포용적 성장 정책도 제시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돼 온 우리나라 산업 구조조정 정책은 문제 기업을 쪼갰다가 붙이고, 새 주인을 찾아주는 수준에 머물러 좀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부실기업)을 양산해 왔다. 이제 다른 패러다임의 구조조정 정책이 절실하다.

어디 없나요, 새로운 구조조정 정책 전문가.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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