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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임금의 반성(反省)

입력
2015.0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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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日省錄)은 조선 후기 현군(賢君) 정조와 신하들이 작성한 일종의 국정 일기이다. 정조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서, “증자(曾子)가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했다는 교훈은 학자의 실천하는 공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지금 일성록을 편찬하는 것이 그런 뜻이다. 밤이면 하루에 한 일을 점검하고, 한 달이 끝나면 한 달 동안 한 일을 점검하고, 한 해가 끝나면 한 해 동안 한 일을 점검한다”라고 말했다. 논어 ‘학이(學而)’편에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나는 하루에 세 번, ‘남을 위해 일을 하는데 충성스럽지 않았던가? 벗과 사귀는데 신의가 없었던가? 배운 것을 복습하지 않았던가’라고 반성한다”는 말이 있다. 선비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인데, 정조는 이를 따라 자신의 정사를 반성하고, 후대에 참고 자료로 삼게 하기 위해 일성록을 간행했다는 것이다.

일성록은 정조가 세손(世孫) 시절 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를 비롯해 승정원일기 등을 참조해 편찬했는데, 실록은 편찬 후 사고(史庫)에 들어가면 국왕도 열람할 수 없지만 일성록은 국왕의 열람이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일성록에는 실록에 없는 내용들도 있어서 정조 시대의 실체에 다가가는 기본적인 사료가 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635곳에 이르는 부분이 칼로 오려져 있다는 점이다. 도삭(刀削)된 부분은 사도세자의 이복동생 은언군(恩彦君)과 그 아들 상계군(常溪君)에 관한 내용이 많다. 노론과 정순왕후 김씨는 정조 때 은언군과 상계군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공격했는데, 정조의 보호로 은언군은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정조 사후 집권한 노론은 은언군과 부인 송(宋)씨와 며느리 신(申)씨까지 천주교도로 몰아 죽였다. 그 후 노론은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을 국왕으로 추대하고는 할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 대목을 오려냈다. 철종은 재위 11년(1860) 7월 우연히 일성록을 열람하다가 정조가 재위 20년(1796) 정백형(鄭百亨ㆍ1590~1637)의 자손을 사직단의 제사인 단향(壇享)에 참석시키라고 하교한 내용이 누락된 사실을 발견하고 승정원에 그 이유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정백형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부친 정효성과 함께 자결한 지사였다. 철종은 경조(京兆ㆍ한성부)에서 기록을 누락한 것으로 여겼지 노론의 조직적인 당파 차원의 음모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일성록을 칼로 오려낸 것은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력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말해준다.

정조는 재위 23년 한 밤중에 천둥 번개가 치자 “내가 날이 밝기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그대들을 인견한 것은 첫째 나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는 말을 듣기 위함이고, 둘째 백성과 나라에 유익한 말을 듣고자 함이다”(홍재전서 36권)라고 말했다. 정조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구도자의 자세로 국사에 전념했지만 자신이 정치를 잘 한다고 여기기는커녕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가 없는 것을 문제로 여겼다. 그래서 “오늘날 위징(魏徵)과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이 어찌 과인의 잘못이 아니겠는가”(홍재전서 제42권)라고 한탄했다. 당(唐) 태종에게 쓴 소리를 일삼아 태종을 성공한 군주로 만들었던 위징처럼 간쟁(諫爭)하는 신하가 없는 것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정조는 이런 반성의 자세로 국왕 노릇을 수행했기에 성공한 국왕이 될 수 있었다.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관이다. 그는 연 평균 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대 경제 강국 진입을 뜻하는 747공약을 앞세워 당선됐다. 그러나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그의 5년간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2.90%로 노무현 정부의 4.34%보다 크게 낮았다. 퇴임해인 2012년의 국민소득은 2만2,590달러(2012년)로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2007년)의 2만1,590달러보다 5년간 1,000달러 늘어났으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감소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13위(2007년)에서 15위(2012년)로 떨어졌으니 747은커녕 2215인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체제를 맞았지만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라는 공과가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부패했지만 북방정책이라는 공과가 있는데 이명박 정권은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잘 한 것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캐나다 정부가 단돈 1달러에 판 유전개발업체 하베스트의 자회사 날(NARL)을 1조3,000억원에 사서 910억원에 되판 것이 빙산의 일각인 자원외교는 정권판 범죄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신자살하거나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분노범죄’가 폭증하는 현상이 석고대죄해야 할 책임자들이 버젓이 나다닐 수 있는 이런 세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은 “임금은 배고, 백성(庶人)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라고 경고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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