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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하는 세상, 포스트잇 붙이고 촛불 든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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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하는 세상, 포스트잇 붙이고 촛불 든 출판

입력
2016.12.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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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문화계 결산<6> 출판

2016년 출판계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라, 뜨거운 현실을 함께 겪는 지침서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출판계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라, 뜨거운 현실을 함께 겪는 지침서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역주행의 1년’이었다. 그 때문에 2016년 출판계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분노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 덕택인지 의외로 ‘최순실 게이트’가 출판 시장에 끼친 영향이 의외로 적었다는 평도 나온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연초부터 과학 관련 소식이 쏟아져서다. 우선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예견한 ‘중력파’가 지난 2월 처음으로 검출됐다. 이론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 검출이 가능한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나온 결과라서 전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오정근 지음, 동아시아 펴냄)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3월에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대 1 승리를 기록했다. ‘김대식의 인간vs기계’(김대식 지음, 동아시아 펴냄) 등 AI와 인류의 미래를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지난 3월 구글의 AI 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뒤 생각에 잠긴 이세돌. 이 대국 이후 AI에 대한 책이 잇달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지난 3월 구글의 AI 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뒤 생각에 잠긴 이세돌. 이 대국 이후 AI에 대한 책이 잇달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이는 과학서적 붐으로도 이어졌다. 전문지식이 아닌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강조하는 책들이쏟아졌고 호평을 받았다. 과학과 인문학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과학이 곧 인문학이라는 ‘김상욱의 과학공부’(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펴냄),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본성이 답이다’(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등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전통의 강호들 사이에서 우리 저자들의 활약이 돋보인 점도 이채롭다. 그러나 이 시장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과학책이 각광받는 분야로 떠오른 건 맞지만, 여전히 시장 자체가 작은 분야”라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불타오른 분야는 페미니즘이었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진 뒤 이 분야에서는 무려 150여종의 책들이 쏟아지며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지음, 은행나무 펴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 지음, 창비 펴냄), ‘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지음, 사이행성 펴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응고 지음, 창비 펴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이민경 지음, 봄알람 펴냄) 등이 순식간에 화제도서로 떠올랐다. 그간 페미니즘이 중산층 여성들의 추상적인 개념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보통의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바로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끌어안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페미니즘 분야 판매권수 증가율이 -2.5%(2014년, -7.3%(2015년)으로 매년 역성장추세에 있었으나 올해에는 무려 132.6%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지난 24일 대전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시국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의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지난 24일 대전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시국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의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는 ‘최순실 게이트’ 등 복잡한 정치현실 때문에 출판시장이 어려움을 겪었으리라는 전망과는 다소 다른 결과를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현실 정치에 대한 분노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여기에는 강사 설민석이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불러모았던 영향도 있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탓도 컸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가 다시 인기를 끈 이유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역사ㆍ인문분야는 올해 판매권수에서 15.8%, 판매액수에서 21.7%나 증가했다. 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열풍에 올라탄 소설 분야 18.4%, 18.8%와 맞먹는 수준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펴냄)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평소 정치 사회 이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20대 여성 독자들의 유입이 컸다. 이들은 한국사 관련 책들 뿐 아니라, 주진우 기자, 함세웅 신부가 함께 쓴 ‘악마기자 정의사제’(시사in북 펴냄), 노회찬ㆍ유시민ㆍ진중권이 쓴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쉼 펴냄) 등과 같은 정치 시사적인 책들까지도 왕성하게 소화해냈다. 예스24 관계자는 “초대형 정치 이슈 때문에 출판시장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통념 때문인지 하반기 들어 책 출간 종수는 줄어들었지만 되레 책 판매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종수가 줄어도 판매가 비슷했다는 얘기는 결국 판매가 늘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특히 역사, 정치 분야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10월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고, 그 가운데 20대 여성 독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2~3배씩 늘면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도서정가제 정착에 따른 독립출판물의 다양화, 동네책방 열풍. 이에 발맞춘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의 변신 등이 눈에 띄는 화제였다. ‘취향의 공동체’에 기반을 둔, 이런 움직임들이 내년, 내후년엔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도 관심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2016 문화계 결산

5) 문화재 : 경주 지진의 충격 등으로 몸살

4) 학술 : 현실정치와 대치하다

3) 클래식ㆍ국악ㆍ무용 : 시국에 휘청인 공연계

2) 문학 : 맨부커상, 성폭력 일파만파

1) 미술 : 위작ㆍ대작 논란 꼬리를 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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