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록 : 2017.07.29 04:40
수정 : 2017.07.29 04:40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억압받은 이들과 함께한 오웰, ‘빅브라더’ 사회를 예견하다

<21> 트럼프시대에 다시 뜬 조지 오웰의 '1984'

등록 : 2017.07.29 04:40
수정 : 2017.07.29 04:40

#1

“트럼프 취임때 청중 사상 최다”

미국 정부 기록 왜곡해 시민들 분노

SF소설 ‘1984’ 구매 버튼 눌러

#2

상류층 오웰 런던 빈민가서 생활

투옥 경험하려 일부러 체포 당해

스페인 내전 참전 후 책 집필

#3

파시즘ㆍ전체주의 개념 널리 알려

그가 걱정한 대량 감시사회는

IT발전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

1984년 첫 날 전세계에 위성 생중계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영상 이미지들(위 사진). 1984년은 건재하다는 백남준의 메시지와 달리 시민을 감시하려는 국가권력의 욕망과 저항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야당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벌이고 있는 모습. 백남준아트센터 제공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올해 1월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즈음, 조지 오웰의 SF 소설 ‘1984’의 아마존 판매량은 무려 9,500% 올랐다고 한다.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취임식에 참가한 청중이 미 역사상 가장 많았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실은 오바마 취임식 청중이 그보다 세 배 많았다. 비판이 이어지자 백악관 선임고문 콘웨이는 이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고 말했다. 황망해진 시민들은 다시 ‘1984’의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 수치는 지난 2013년,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정부의 사생활 감시가 ‘1984’보다 심하다고 폭로했을 때 치솟은 판매량보다 더 높은 수치다. 당시 스노든은 미 정부가 통신사와 IT 기업에 접속해 자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사찰한 정황을 폭로했다.

트럼프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작품

트럼프 정부의 기록 왜곡 시도는 ‘1984’에 등장하는 슬로건,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의 어설픈 복사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윈스턴의 직업은 현재에 맞춰 과거의 기록을 바꾸는 것이다. 당이 목표 생산량을 맞추지 못하면 옛 기록을 수정해 목표 자체를 바꾸고, 당이 배급을 줄이지 않겠다는 말을 어기면 줄이지 않겠다는 말을 지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사람들은 기록에 기억을 맞추는 훈련이 되어 있다.

콘웨이가 말한 ‘대안적 사실’ 또한 ‘1984’의 ‘이중사고’를 연상시킨다. 이 소설에서 국가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진 두 개념을 이어 대중의 생각을 뒤섞어 버린다. ‘해고’ 대신 ‘인력재배치’, ‘경기 후퇴’ 대신 ‘마이너스 성장’, ‘실업’ 대신 ‘미고용’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이중사고의 전형적인 예다. 미 영어교사협회(NCTE)는 매년 이중사고 상을 수여하는데(1974년 ‘폭격’을 ‘공중지원’이라 말한 미 공보담당관이 최초 수상자다), 2016년에는 만장일치로 트럼프 대통령이 수상했다.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만은 1972년, ‘1984’의 예측을 137개로 분류했고, 이중 80가지가 현실화되었다고 했다. 1978년에는 100개가 넘었고, 지금은 대부분 실현됐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소설에 등장한 권력자의 이름인 ‘빅 브라더’는 지금 정보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상경찰, 생각범죄, 언퍼슨(Unperson・정치적으로 존재가 지워진 사람), 기억구멍(memory hole・불편한 기록을 삭제하는 것) 모두 오웰에게서 유래한 단어다.

하지만 ‘1984’는 예언서도 상상의 산물도 아니다. 일생을 가장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한 작가가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고 통찰한 산물이었다.

가장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한 작가

오웰은 상류층 자제였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차별받으며,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사립명문 이튼을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미얀마로 갔고, 미얀마 경찰로 근무했지만 제국주의 압제자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런던 빈민가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다. 이 생활은 평생 그를 괴롭힌 폐병을 선사했다. 그는 순전히 ‘투옥 경험’을 위해 일부러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오웰도 그 시절의 다른 영국 아이들처럼 당대 최고의 문호이자 사상가였던 H.G. 웰스를 탐독했지만, 오웰이 보기에 웰스는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세계평화, 세계정부, 말은 좋지만, 지배자들은 결코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오웰이 ‘1984’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스페인내전에 참전하면서였다. 헤밍웨이도 참전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낳은 전쟁이었다. 인민전선과 파시즘파인 프랑코 사이의 내전으로, 당시 인민전선은 사회주의자를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 여단이, 프랑코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같은 양상을 띠었다. 파시즘에 저항하고자 참전한 오웰에게 이 체험은 후에 그의 목을 꿰뚫은 총알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남겼다.

파시즘 반군에 맞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조지 오웰(가운데 가장 우뚝 솟은 이). 오웰은 탄광과 감옥을 체험하고 빈민가에서 살며 밑바닥의 삶을 공감하고 작품에 담으려 평생 애썼다.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운영되던 군대는 하루아침에 해체되고 장교가 모든 부를 가져가는 군대가 ‘군사적인 필요’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대체했고, 그 현상유지를 위해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반파시즘 내에서 파시즘이 시작되고, 오웰은 공산주의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좌파’라 배척되었다. 언론은 소련의 참전을 홍보했지만 오웰은 소련군을 본 적이 없다(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기록될 것이었다). 영국은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파시즘’, ‘전체주의’는 그리 널리 알려진 개념이 아니었고, 지배자들 눈에는 꽤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최소한 공산주의보다는 덜 위험해 보였다. 결국 전쟁은 프랑코파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힘을 실어주어 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

목에 부상을 입고 돌아온 오웰은 전쟁의 체험을 살려 ‘동물농장’을 집필했고, 연이어 ‘1984’를 집필했다. ‘동물농장’이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생각되어, 당시 소련과 동맹국이었던 영국 정부가 출간을 저지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참전의 상처는 깊었고, 어머니와 아내, 누나가 연이어 죽은 뒤 폐결핵이 도져 건강도 악화되었다. 오웰은 ‘1984’가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을 예감했다. 책을 탈고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원고를 폐기해 달라는 말도 남겼다. 병상에서 무리하게 집필을 계속한 오웰은 마지막 탈고를 끝낸 다음날 쓰러졌고, 이듬해에 숨을 거두었다.

조지 오웰이 제시한 ‘빅 브라더’는 이제 현실이 된 전체주의 감시사회의 대명사이자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표지가 되었다. 사진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4년, 세계는 오웰을 생각했다

‘1984’는 전체주의의 개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이 책은 ‘동물농장’과 함께 전쟁 직후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이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웰은 일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고, 단지 전체주의가 사상과 국가와 집단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발현할 수 있음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세계인은 소설일 뿐인 ‘1984’가 예언서라도 되는 듯, 그 해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렸다. 1984년, 세계인의 마음에는 오웰이 있었다. 그 해 첫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전 세계에 송출했다. 대중매체가 빅 브라더 역할을 좀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세계는 나름 괜찮다고 오웰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이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이기도 했다. 1월 22일,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84’를 모티브로 한 광고를 슈퍼볼 경기장에 내보냈다. 빅 브라더가 연설 중인 스크린을 한 여전사가 부수는 영상으로, 막 매킨토시를 출시한 애플의 광고였다. 이 광고는 애플이 IBM의 독주를 타파할 것을 강렬한 인상으로 알려 애플 약진의 계기가 되었다. 서베를린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웰을 생각하며 ‘시녀 이야기’를 썼고,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은 동명의 영화를 발표했다. 7월, 체코 천문학자 안토닌 마르코스는 직경 14㎞의 소행성을 발견해 오웰의 이름을 선물했다.

미얀마 경찰 시절의 조지 오웰.

감시자를 감시하는 오웰

1984년에서 33년이 지난 현재, 오웰이 걱정한 대량 감시사회는 IT 발전과 함께 세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2013년 스노든이 미 정부의 대규모 개인사찰 정황을 공표한 이래, 감시는 훨씬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2015년 루마니아에서는 국가안보기관이 국민의 개인정보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6개월간 고객 데이터를 보관하고 안보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48시간 내에 제공하라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6년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의 법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 영국도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사용자의 기록을 1년간 저장하게 하고, 이 정보에 영장 없이 경찰을 비롯한 법률 기관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웰은 이미 그 위험을 세계인의 마음에 각인시켰다. 법안이 발의되자마자 미디어와 시민단체는 즉시 이를 ‘빅 브라더 법’으로 부르며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같은 해, 한국에서도 테러방지법이라는 이름 아래, 국정원이 테러 용의자로 지목하면 절차 없이 통신이용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발의되어 통과되었다. 야당은 이에 저항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고, 더불어민주당의 최민희 의원과 정의당의 김제남 의원은 토론 중 ‘1984’의 구절을 낭독했다. 이들 모두의 저항 문구는 한결같이, “우리는 빅 브라더 사회를 원치 않는다”였다.

조지 오웰

1907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인도 출생의 영국인으로 일생 전체주의에 저항하고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했다. 가장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억압받는 삶을 체험하며 11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를 남겼고, 평생 ‘정치적 글쓰기를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다 ‘동물농장’과 ‘1984’라는 걸작을 남겼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는 1945년 이후 위대한 영국작가 50선 중 2위에 오웰을 올렸고, 오웰리언, 오웰주의, 오웰식 사회, 오웰식 논리, 오웰식 사상 등의 신조어를 낳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대중문화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김보영・SF 작가

<소개된 책>

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발행

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민음사 발행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사 발행

<관련 동영상>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https://www.youtube.com/watch?v=UKmANnn8zlk

리들리 스콧의 1984년 ‘애플 맥킨토시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PsjMmAqmb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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