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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한일 역사문제의 총괄

입력
2017.09.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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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역사문제를 다루는 한국과 일본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정부에 역사문제와 경제ㆍ외교ㆍ안보 등의 교류협력을 분리하여 다루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투 트랙’ 방식이다. 역대 한국정부는 일본과 역사문제가 불거지면 지자체나 청소년 교류를 중단하고 외교장관 회담 등을 거부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한일관계가 3년여 동안이나 경색되는 빌미를 만들었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중국의 국력 신장과 세력 팽창 등과 맞물려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미국은 이 점을 우려하여 한국과 일본에 관계개선을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2015년 말 ‘위안부 합의’로 이에 화답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투 트랙 방식을 제안한 것은 국내외의 산적한 과제를 풀어가는 데 일본의 협력을 끌어내겠다는 현실적ㆍ실용적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베 정부는 거꾸로 역사문제와 기타 현안을 연계시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대 일본정부는 역사문제와 기타 현안을 분리시켜 대응하는 투 트랙 방식, 곧 정경분리 원칙을 견지해왔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한국의 민간단체가 부산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자 대사와 총영사를 소환하고, 통화 스와프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협상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투 트랙 방식의 전제로서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아베 정부의 지지 기반인 우파세력은 일본이 ‘위안부 합의’에서 오히려 너무 양보했다고 불만이다. 일반 국민도 한국의 되풀이되는 역사문제 제기에 짜증을 내며 ‘염한(厭韓)’이나 ‘혐한(嫌韓)’으로 돌아섰다. 아베 정부는 이런 국민여론을 배경으로 역사문제와 기타 현안을 결부시켜 한국을 압박한다. 원래 역사수정주의의 색채가 짙은 아베 정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ㆍ실용적 대응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역사문제를 다루는 방법에서 피장파장의 처지가 되었다. ‘위안부 문제’에서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를 검증한 데 대해, 문재인 정부가 ‘합의’를 검토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양국이 이렇게 상대방의 수법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깨달았다면 역사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국 정상 간의 전화통화나 언론보도 등을 보면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사문제의 이해나 관점에서 양국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국과 일본이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문제를 총괄해보는 게 어떨까? 역사문제의 총괄이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양국이 역사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왔고, 어떤 성과를 거두었으며,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역사문제는 징용·징병, ‘위안부’, 사할린 잔류 한인, 원폭 피해자, 역사인식(역사교과서 기술,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을 포괄한다. 필요하면 독도문제를 넣을 수도 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정부와 민간은 역사문제와 씨름하는 가운데 첨예하게 대립한 적도 있지만 상당히 접근한 경우도 많다. 양국이 합의하여 일정한 수준에서 피해보상을 이룩한 사례도 여럿이다. 그렇지만 양국 국민은 역사문제의 이러한 내력을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의하여 역사문제를 함께 총괄하여 그 공과(功過)를 국내외에 널리 알린다면 ‘식민지문제의 처리’에서 세계 최초의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양국 국민 사이에 퍼져 있는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제에서 서로 진의를 의심하기 때문에 양국 지도자의 확고한 결단이 없으면 역사문제를 함께 총괄하기는 어렵다.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오히려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만이라도 역사문제의 총괄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 결과를 잘 활용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문제를 정쟁의 도구나 외교의 현안으로 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의 핵위협이 절박한 현실로 닥친 이상 한일이 역사문제를 총괄하고 공생협력(共生協力)의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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