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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융단길 따라가니 보석 같은 바다가 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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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융단길 따라가니 보석 같은 바다가 반기네

입력
2014.11.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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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 한려해상 못지 않은 장쾌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천연 전망대가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큰 섬이 석모도, 읍내리 마을과 들판, 남산포구도 아득하다.
화개산 정상에 서면 다도해, 한려해상 못지 않은 장쾌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천연 전망대가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큰 섬이 석모도, 읍내리 마을과 들판, 남산포구도 아득하다.

인천 강화도 서북쪽에 교동도가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예부터 유배지로 이름 날렸을 만큼 조류가 급해 닿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던 섬. 올 여름,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다리(교동대교)가 개통됐다. 섬 아닌 섬에 들어, 가을의 뒤안길을 즐겼다. 낙엽 소복하게 쌓인 오솔길 따라 화개산에 올랐더니 보석처럼 반짝이는 푸른 바다와 점점이 박힌 섬들이 ‘짠~’하고 나타났다. 옛 ‘시장통’ 모습 오롯이 남은 대룡시장 구경하고, 기러기들 자리 꿰차고 앉은 고구저수지도 걸었다. 볕 받아 반짝이는 갯벌과 포구까지 더하니 가을 떠난 자리가 그리 헛헛하지 않았다. 이러니 계절 교차하는, 예쁜 풍경 보고 싶다면 교동도에 훌쩍 다녀온다.

화개산 북쪽으로 고구저수지가 보인다. 그 너머가 서해다. 바다 뒤로 펼쳐지는 육지가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이다.
화개산 북쪽으로 고구저수지가 보인다. 그 너머가 서해다. 바다 뒤로 펼쳐지는 육지가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이다.

● 교동도의 과거와 현재 오롯한 화개산

읍내리 교동읍성을 돌아보고 화개산(259.6m)에 오른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며 돌로 쌓은 성이다. 세 개의 문 가운데 현재 남문(유량루)의 홍예문만 남았다. 곡선의 폐허 위로 맑은 하늘이 그림처럼 걸렸다.

뒤로 보이는 산이 화개산이다. 섬에서 가장 높다. 읍내리 비석군, 교동향교 지나면 화개사다. 이 앞으로 난 임도 따라가면 능선에 오를 수 있고, 이 능선 따라 봉수대 지나면 정상이다. 본격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정상 찍고 내려오는데 딱 적합한 코스다. 화개사에서 정상까지 1.5km, 편도 30분 거리다. 곳곳에 흩어져있던 이곳 출신 목민관들의 비석을 모아놓은 것이 읍내리 비석군, 교동향교는 고려 때 안향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을 가져와 모셨다고 전하는 곳이다.

화개산 정상에 본 교동향교.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중이다.
화개산 정상에 본 교동향교.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중이다.

화개사는 단출한 절집이다. 부잣집 사랑채를 옮겨왔다는 법당이 정갈하고, 이 앞에 우뚝한 소나무도 멋지니 오가다 들러 잠깐 숨 고른다. ‘동국여지승람’은 고려 말 목은 이색이 화개사에서 공부했다고 적고 있다(원래 절은 구읍리에 있었고 현재의 절은 나중에 세워졌다). 마당 거닐고, 주차장 앞 잔디밭에 있는 부도탑도 찾아본다. 탑신이 간결하고, 끝부분이 연잎 두른 듯 참 곱다.

화개사에서 화개산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에 낙엽이 소복하게 쌓였다. 떠나는 가을이 남긴 아름다운 선물이다.
화개사에서 화개산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에 낙엽이 소복하게 쌓였다. 떠나는 가을이 남긴 아름다운 선물이다.

임도는 낙엽천지다. 바닥이 융단처럼 폭신하니 걸음이 가볍다. 매몰차게 떠난 줄 알았는데, 가을은 이렇게 고운 선물 하나 남겨뒀다. ‘바스락’하는 맑은 소리에 귀가 즐겁고 마음은 다시 가을인양 설렌다.

구불구불 ‘낙엽 융단길’ 끝이 화개산 능선이다. 올라타면 바다와 들판(교동도는 강화군 내에서 경작지 면적이 가장 넓다)이 아득하고 산기슭 마을은 장난감처럼 앙증맞다. 봉수대는 석단만 남았다. 강화도 남쪽 덕산(덕정산)봉수대에서 연락을 받아 다시 강화도 북쪽 봉천산봉수대로 전했단다. 봉수대 자리인 만큼 시야 탁 트이니 기억해 둔다.

정상은 봉수대에서 5분 거리다. 높지 않아도 섬에 솟은 산이라 풍광은 으뜸이다. 한려해상이나 다도해 못지않은 장쾌함과 아름다움에 몸이 짜릿하다. 남쪽으로 그 유명한 석모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 옆으로 기장섬, 주문도, 미법도, 아차도, 서검도, 불음도, 납섬, 함박도, 말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박혀있다. 강화도 마니산도 보이고 한갓진 남산포구도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 수영이 생긴 후 수군의 훈련장으로 쓰이던 곳이 남산포구다.

돌아서면 발 아래가 고구저수지다. 그 너머로 서해, 다시 그 너머가 북한 땅(황해남도 연안군)이다. 직선거리로 불과 약 2km의 거리. 바다 폭이 좁으니 북한 주민이 종종 헤엄쳐 교동도로 귀순하는 일이 생긴다. 올 여름에도 북한 주민 2명이 그랬다. 분단의 아픔, 필사의 여정이 눈앞에 선한데 사위는 고요하고 또 평온하니 심장에 각인되는 풍경의 무게가 두 배는 더 묵직하다.

정상에서 사진 출사지로 이름난 대룡시장 방향으로 내려 갈 수 있다. 삼국시대 홀아버지 모시고 살던 ‘신씨’의 이야기가 깃든 효자묘도 보고 조선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하는 한증막도 구경한다. 이렇게 교동면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오면 대룡시장 인근이다. 중간에 연산군유배지(추정)도 있으니 들러본다.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다. 고려 희종을 필두로 조선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까지 모두 이곳으로 유배와 생을 마감했다. 화개산에 오르면 교동도의 과거와 현재가 다 보인다.

시간이 멈춘 대룡시장. 한 때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교동이발관도 50년이 넘었다.
시간이 멈춘 대룡시장. 한 때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교동이발관도 50년이 넘었다.

● 시간이 멈춘 마법의 골목

대룡리 대룡시장은 천천히 돌아본다. 500m도 채 안 되는 골목에 60~70년대 시장 풍경이 고스란히 남았다는 이유로 6~7년 전부터 ‘빈티지’ 출사지로 이름 날리는 곳이다. 걸어보면 무슨 소린지 알게 된다. ‘민욱이네 담배 잡화’ ‘돼지네 식품’ ‘임득남 미용실’같은 촌스러운 이름의 간판이 절로 미소 짓게 만들고,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의류며 하얀 고무신이 늦가을 한기 녹여줄 따뜻한 정서를 끄집어낸다. 50년 된 황해도 출신의 교동이발관 지광식(76) 할아버지, 이 골목 최초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었다는 동산약방 토박이 나의환(83) 할아버지는 이미 이곳에선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 스타다. 문 열고 들어가 인사 건네면 마다하지 않고 지난날 이야기들 들려준다. 건물마다 곰삭은 시간의 향기가 진하다. 시간은 쏜 살 같이 흘렀는데 풍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50여년 전 산에서 해 온 나무로 말뚝 박아 만든 집터 자리에 딱 그 크기대로 슬레이트 건물 들어섰으니 골목은 넓어진 것도, 길어진 것도 아니다.

대룡시장 교동이발관 지광식 할아버지.
대룡시장 교동이발관 지광식 할아버지.

대룡시장 일대는 한국전쟁 직후 북한에서 건너 온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전쟁 끝나면 얼른 고향에 들어가려고 가장 가까운 여기다 진을 쳤다. 실향민이나 이곳 주민들이나 경기도 보다 황해도가 거리상, 정서상 더 친근했다. 이러니 대룡시장은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했다.

한번 닫힌 북녘 땅의 문은 60여년 지난 지금도 열리지 않고 있다. 고향 그리던 사람들 대부분은 생을 마감하거나 생계를 위해 자리를 떴다. 낡은 풍경 속에 연애편지만큼 애틋한 그리움이 흘러 다닌다.

다리 놓이고 시장을 찾는 사람이 조금 늘었다. 교동이발관에서 이발하는 외지인도 생기고 동산약방에 들러 피로회복제 사먹는 사람도 있다. 외지인 출입 늘면서 문 걸어 잠글 일도 생기고, 가게 들락날락 하는 관광객들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반갑다는 것이 지광식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아플 때 수월하게 뭍으로 나갈 수 있으니 걱정도 덜었단다. 섬을 찾는 사람이나, 이들을 맞는 사람들이 얼굴 붉히지 않는, 훈훈하게 인사 건넬 수 있는 따뜻한 섬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대룡시장 동산약방 나의환 할아버지.
대룡시장 동산약방 나의환 할아버지.

서두르면 10분 만에 끝낼 여정을 마치 먼 여행인 듯 느릿하게 걷는다.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쫓아다녔던 그 옛날 시장통이 되살아나고, 잊고 살던 어릴 적 동경이 다시 꿈틀대니 이 낡은 골목은 신비한 마법의 공간이다. 마법에 이끌려 카메라 들고 멀리서 애써 찾아온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하며 퍽퍽한 도시생활의 생채기를 치유하고 간다.

교동도에서 돌아 나올 때는 고구리 마을에 있는 고구저수지에 들른다. 바람 쌀쌀해지자 기러기들 참 많이 날아왔다. 볕 받아 반짝이는 수면에서 한가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이 섬처럼 평온하다. 가끔 날개짓도 하는데 이거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싱싱해진다. 저수지 제방 아래로 펼쳐진 들판도 기러기들 차지다. 저수지는 교동대교 가는 길에 위치해 섬을 들고날 때 자연스레 거치게 되니 기억한다.

다리 놓였어도 교동도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다. 가을 떠났는데도 그 자리가 참 곱다.

고구저수지에 날아든 기러기떼.
고구저수지에 날아든 기러기떼.

● 여행메모

강화에서 교동대교 건너 교동도로 들어가려면 해병검문소의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간단한 신상을 작성해 제출하면 그 자리에서 출입증을 받을 수 있고 나올 때 출입증을 반납하면 된다. 다리 통행은 일출 직후에서 일몰 직전까지로 제한된다.

화개산은 읍내리 화개사, 대룡시장 인근 교동면사무소 등에서 오를 수 있다. 화개사에서는 약 1.5km, 교동면사무소에서는 약 3km(각 편도) 거리다. 화개산 등산로는 강화나들길에 포함된다. 대룡시장에 육개장, 소머리국밥을 파는 해성식당을 비롯해 음식점이 몇 곳 있다. 강화군 관광개발사업소 (032)930-4331, 교동면사무소 (032)932-5001

강화 교동도(인천)=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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