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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일에 임하는 쿨한 지혜, ‘경(敬)’

입력
2018.04.23 17: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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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인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일반 시민이야 흥미진진한 이벤트 정도로 지켜보겠지만 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마쳤다고 공언하는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보통 일인가?

지난 1년 동안 문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좋은 이미지였을 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자기 몸에 흙탕물을 튀겨가며 복잡하게 얽힌 난제(難題)를 풀어내는 해결사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보이려고 툭툭 던진 최저임금, 비정규직 해법 등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경력 중에서 오랫동안 공적 일을 한 기간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와 야당 지도자 시절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과연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 잘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지지자들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분명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될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우리 사회의 열기는 일부 여권 성향 언론매체를 빼고는 뜨겁지 않다.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는 드루킹-김경수 의혹이나 대한항공 오너 집안의 엽기적 행태가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를 압도한다. 물론 ‘비정상’이다. 아무리 드루킹 사건이 여당 ‘실세’ 의원 관련 스캔들이고 대한항공 사건이 한 재벌 가족의 몰상식 갑질이라 해도 그에 대한 관심이 우리 운명을 좌우할 남북정상회담보다 뜨겁다는 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해결능력이 미심쩍어서 이런 무덤덤함이 널리 퍼진 것은 아닐 게다.오히려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성격상 남북정상보다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나는 회담이 훨씬 ‘영양가’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가 북한에서 얻어낼 게 제한돼 있다는 것은 고등학생만 돼도 다 아는 바이니 별로 흥분할 일은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사흘 뒤면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만나 대화를 해야 하며 어느 정도 손에 잡히는 결실을 얻어내야 한다. 적어도 1948년 나라의 형체를 마련한 이래 만 70년이 돼 가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서, 같은 시간만큼 싸우고 갈등해온 ‘저쪽’의 지도자와 만나 뭔가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 뭔가는 무엇보다 7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가 수긍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특정 정파의 이념에 기울어진 뭔가를 가져올 경우 오히려 반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이 점은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회담 종료와 함께 서류함에 처박힐 공동선언문이 아니라 반 걸음을 내딛더라도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회담 성공을 기원하며 공자의 지혜를 전하고 싶다. ‘논어’ 학이편에서 공자는 말한다. ‘삼가며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일반 국민들의 믿음을 얻고자 한다면 경사(敬事), 즉 삼가며 일하라’는 말이다. ‘삼가라’는 것이 그냥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다. 경(敬)을 풀면 주도면밀(周到綿密)이다. 시작하기 전에 빈틈없이 준비하고, 진행되는 동안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말며, 일이 다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것, 이 많은 뜻이 한 글자에 다 들어 있다. 두어 달 전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두고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경계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경(敬)이다. 부디 이번 회담만이라도 이미지나 인기 따위와는 무관하게, 이런 마음으로 돌아가 시작과 중간과 끝 모두에서 경(敬), 한 글자로 일관하길 바란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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