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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길이 단풍길로…운탄고도 자락에 찬란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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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길이 단풍길로…운탄고도 자락에 찬란한 가을

입력
2017.10.31 17:5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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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의 광부 조형물 뒤로 함백한 자락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이하 모든 사진은 10월 27일 풍경이다. 정선=최흥수기자
정선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의 광부 조형물 뒤로 함백한 자락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이하 모든 사진은 10월 27일 풍경이다. 정선=최흥수기자
삼척 하장면에서 정선 사북읍으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본 가을 풍경.
삼척 하장면에서 정선 사북읍으로 연결되는 도로에서 본 가을 풍경.

정선 신동에서 고한에 이르는 고지대는 대한민국 석탄산업과 영욕을 함께한 지역이다. 수도권에서 태백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자, 강원랜드로 가는 38번 국도를 타고 신동읍 마차령을 넘으면 화려하게 가을 색으로 치장한 산과 계곡이 도로 양편으로 펼쳐진다. 딱히 어디라 할 것 없이 시선 가는 곳마다 눈이 호강이다.

숲의 아름다움은 어울림에 있다. 다양한 수종이 자연적으로 형성한 산림과 인공조림이 뒤섞여 세상의 모든 색을 조화롭게 버무렸다. 늘 푸른 소나무, 노랗게 사그라지는 낙엽송(잎깔나무)과 자작나무, 만산홍엽의 대명사 단풍나무 종류, 올해 유난히 색이 고운 참나무까지 황홀경을 연출한다. 한국의 산하가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절로 감탄하게 된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만으로도 눈부시지만, 샛길로 한 발짝 들어서면 여행이 한층 풍성해진다.

정선 남면 발구덕마을에서 민둥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본 억새 풍경.
정선 남면 발구덕마을에서 민둥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본 억새 풍경.
민둥산은 7부 능선부터 억새평원이 하얗게 펼쳐진다.
민둥산은 7부 능선부터 억새평원이 하얗게 펼쳐진다.
민둥산 억새 평원 너머 우람한 산줄기에도 가을이 화려하다.
민둥산 억새 평원 너머 우람한 산줄기에도 가을이 화려하다.
민둥산 건너편 산줄기에는 석탄을 운반하던 옛길 ‘운탄고도’가 숨겨져 있다.
민둥산 건너편 산줄기에는 석탄을 운반하던 옛길 ‘운탄고도’가 숨겨져 있다.

우선 남면 무릉리 민둥산은 대표적인 억새 산행지다. 민둥산(1,118m)은 이름처럼 7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나무가 거의 없고, 완만한 구릉에 억새가 뒤덮여 있다. 산나물이 많이 자라라고 매년 한번씩 불을 질러 왔기 때문이란다. 10월 중순부터 억새 천국으로 변하는 20여 만평의 평원에선 해마다 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는 지난 주말 끝났지만 억새는 11월 초순까지 볼 수 있다. 속살까지 파고든 가을볕에 온몸을 하얗게 태우는 억새 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등산로는 증산초등학교나 능전마을에서 출발하는데,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아 1시간30분 이상 잡아야 한다. 정상 전망은 어느 방향으로나 그 수고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힘들게 올라온 무릉리 마을이 한발 내디디면 바로 닿을 듯하고, 단풍으로 물든 주변의 우람한 산세와 하얀 억새평원이 대조를 이룬다.

민둥산에서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1,000m급 능선에는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산중도로가 숨어 있다. 이름하여 운탄고도(運炭古道)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40km의 옛길로, 운치가 워낙 뛰어나 최근에는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지는 옛길(雲坦古道)’라는 그럴듯한 해석도 덧붙여졌다.

운탄고도의 ‘도롱이 연못’에 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비친 모습.
운탄고도의 ‘도롱이 연못’에 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비친 모습.
도롱이 연못은 해발 1,100m 고지에 옹달샘처럼 숨어 있다.
도롱이 연못은 해발 1,100m 고지에 옹달샘처럼 숨어 있다.
운탄고도의 1177갱 입구. 숫자는 해발고도를 표시한다.
운탄고도의 1177갱 입구. 숫자는 해발고도를 표시한다.
1177갱 앞에는 석탄 운반 차와 벤치가 놓여 있다.
1177갱 앞에는 석탄 운반 차와 벤치가 놓여 있다.
1177갱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영월 중동면의 가을 풍경.
1177갱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영월 중동면의 가을 풍경.
1177갱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지만, 대형 공사차량과 만나면 피하기가 쉽지 않다. 길이 험해 차체가 낮은 승용차는 무리다.
1177갱까지는 차로 오를 수 있지만, 대형 공사차량과 만나면 피하기가 쉽지 않다. 길이 험해 차체가 낮은 승용차는 무리다.
강원랜드 주변도 불타는 가을이다.
강원랜드 주변도 불타는 가을이다.

입구는 강원랜드 호텔 못 미쳐 ‘화절령길’로 들어서면 되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길 찾기 앱에서 ‘사북리 산155-80’으로 검색하면 포장도로가 끝나는 화절령삼거리까지 안내한다. 화절령은 꽃을 꺾으면서 올라가는 고개라는 의미로 그만큼 야생화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삼거리에서 백운산 정상 방향으로 약 2km를 오르면 능선 부근에 자그만 연못이 숨어 있다. 낙엽송이 주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도롱이 연못’이다. 1970년대 갱도 지반침하로 생긴 연못으로, 광부의 아내들이 이곳에 서식하는 도롱뇽을 확인하며 남편의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탄광사고가 잦았던 시절, 안전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무엇 하나 예사로 넘길 수 없었던 것이 광산촌 주민들의 삶이기도 했다.

도롱이 연못에서 만항재 방면으로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1177갱 입구’가 나온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갱도로 해발고도가 곧바로 갱도 이름이다. 도시락을 든 광부 동상이 세워진 길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울긋불긋한 영월 중동면의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다녔던 만큼 도로 폭은 충분하지만, 노면이 고르지 못해 차체가 낮은 승용차로 오르기는 무리다. 이따금씩 드나드는 대형 공사차량과 마주칠 경우 후진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사북석탄유물종합전시관은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건물이다.
사북석탄유물종합전시관은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건물이다.
내부도 당시 모습을 그대로다.
내부도 당시 모습을 그대로다.
석탄 때가 그대로 남아있는 샤워장을 전시실로 꾸몄다.
석탄 때가 그대로 남아있는 샤워장을 전시실로 꾸몄다.
광부와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한 샤워장.
광부와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한 샤워장.
전시관 뒤편 폐석 더미 위는 강원랜드 주차장이다.
전시관 뒤편 폐석 더미 위는 강원랜드 주차장이다.

운탄고도로 들어서는 화절령길 초입의 ‘사북 석탄유물종합전시관’은 탄광도시 사북ㆍ고한의 진면목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04년 문을 닫은 동양 최대 규모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건물에 광부들이 사용했던 안전용구와 집기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타일 사이 석탄 때가 지워지지 않은 샤워장엔 광부의 모습과 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광부를 실어 나르던 ‘인차’를 타고 650갱에 들어가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관람과 체험이 모두 무료지만 전시나 운영이 체계적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인차 탑승체험도 관람객이 적은 날은 운영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항재 방면으로 약 10km 떨어진 삼탄아트마인은 똑같은 공간을 문화예술단지로 꾸몄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시설에 150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전시하고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외형을 그대로 유지한 4층 건물 내부를 카페와 전시실로 꾸몄고, 야외에는 레스토랑과 기억의 정원 등을 조성했다. 광부를 실어 나르던 수직갱도 타워를 외부 전시장으로 나가는 통로로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됐다. 입장료는 성인 1만3,000원.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 폐광시설을 복합문화시설로 꾸몄다. 수직 갱도 시설에 설치한 조형물.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 폐광시설을 복합문화시설로 꾸몄다. 수직 갱도 시설에 설치한 조형물.
수직갱도 운반 시설과 광부 조형물 뒤는 함백산이다.
수직갱도 운반 시설과 광부 조형물 뒤는 함백산이다.
삼탄아트마인 카페에서 본 가을 풍경.
삼탄아트마인 카페에서 본 가을 풍경.

삼탄아트마인 인근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 정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좁은 터에 작은 절이지만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유한 사찰이다. 수마노탑에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절로도 유명하다. 수마노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모전탑으로, 석영의 일종인 수마노(水瑪瑙)석을 정교하게 잘라서 쌓아 올렸다. 적별보궁 뒤편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암사를 들르는 이들은 꼭 찾는 곳이다.

정암사 수마노탑.
정암사 수마노탑.
산상의 화원 만항재. 지금은 낙엽송만 붉게 물들고 있다.
산상의 화원 만항재. 지금은 낙엽송만 붉게 물들고 있다.
만항재 낙엽송 산책로.
만항재 낙엽송 산책로.
만항재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을 통과는 도로다.
만항재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을 통과는 도로다.

정암사에서 함백산 자락으로 난 도로를 10여분 거슬러 오르면 국내에서 차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1,330m) 정상이다. 한여름 뒤늦은 야생화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나면, 가장 먼저 가을을 맞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활엽수는 대부분 잎을 떨궜고, 낙엽송 군락만이 노랑에서 주황으로 짙어지고 있다. 흙 길이 폭신폭신한 그 숲의 짧은 산책로를 걸어도 좋고,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펼쳐놓고 소풍을 즐기기도 그만이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함백산(1,572m) 정상은 가을의 화려함 모두 털어내고 벌써 겨울로 접어들었다.

정선=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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