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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도 인체조직기증 활성화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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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도 인체조직기증 활성화 정책 필요”

입력
2016.1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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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인체조직기증캠페인] <하> 기증활성화 어떻게 해야 하나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주도 기증활성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한 시민이 병원 로비에서 기증홍보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주도 기증활성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한 시민이 병원 로비에서 기증홍보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체조직기증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사망하기 전 ‘내가 죽으면 기증을 꼭 하라’고 당부하던 얼굴이 떠올라 후회하지 않으려고 기증에 동의했어요. 하늘나라에 간 남편도 기뻐할 거예요.”

최근 인체조직기증에 동의한 유가족의 말이다. 인체조직기증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증 서약자는 물론 가족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생전에 기증서약을 해도 가족에게 서약사실을 알리지 않아 뇌사 또는 사망 후 유가족이 기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뇌사자나 사망자의 조직을 기증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뇌사 또는 사망 전 조직 채취에 동의하고, 가족 또는 유족이 조직 등의 채취를 동의해야 가능하다.

민간홍보 불구 서약율 0.6%… “국가주도 사업 필요”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체조직기증 동의율은 26.9%에 불과했다. 고민 끝에 인체조직기증 서약을 한 10명 중 3명도 안 되는 이들만 기증한 것이다. 인체조직기증 서약이 기증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약자와 함께 서약자 가족에 대한 지속적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관계자는 “기증서약 시 서약자에게 서약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기증 활성화를 도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인력ㆍ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민간비영리기관에 의존해서는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도모할 수 없다. 서종환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이사장은 “지난 26년 간 기증지원본부를 포함해 20여 개 민간 비영리기관에서 기증캠페인을 전개했지만 전체 인구 대비 조직기증 희망 서약률은 0.6%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민간단체나 현금을 보상하는 정책으로는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는 요원하기 때문에 정부가 기증활성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인체조직기증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체조직기증=인체훼손’이라는 편견도 불식시켜야 한다. 물론 인체조직을 채취하기 때문에 상흔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시신을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끝까지 난도질하지 않는다. 인체조직기증본부 관계자는 “조직은행에 이송된 시신에서 개개인 상태에 따라 부위별 인체조직기증이 이뤄진 후 전문장례지도사가 시신을 복원한다”며 “정돈된 시신은 유가족 요청에 따라 유족에게 인도되는데 모든 절차는 15시간 내 완료되기 때문에 안심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이 인체조직기증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2009년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한 후 기증 서약자수가 증가했지만 증가세가 이어지지 못했다. 사회지도층이 물질ㆍ재능기부보다 어려운 자신의 몸을 기증하는 ‘윤리적 의무’를 먼저 실천하면 인체조직기증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을 개선하지 않으면 장기 밀매와 불법 의료관광 등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도 사회지도층이 윤리적 의무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전태준 한국인체조직기증원 상임이사는 “인체조직기증 시 금전적 보상이 제공되는 나라는 한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인데 이들 나라 모두 기증률이 저조하다”며 “경제적 이유로 빈곤층만 기증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사회지도층의 기증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사회지도층 기증참여와 함께 ‘선택적 거부’제도 도입 등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인체기증지원본부 제공
사회지도층 기증참여와 함께 ‘선택적 거부’제도 도입 등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인체기증지원본부 제공

의료진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의대에서 인체조직기증과 관련된 교육이 전무하다. 이렇다 보니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를 제외한 다른 진료과 전문의들은 인체조직기증의 인식이나 정보가 부족하다.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관계자는 “스페인처럼 의료진이 기증 및 이식과 관련된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환자와 직접 접족하는 의료진이 인체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기증업무에 적극 동참하면 인체조직기증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적 거부제’ 도입 필요”

법제도 개선도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생전에 반대의사를 표시한 이를 제외하고 국민 모두를 잠재적 기증자로 간주토록 한 ‘선택적 거부(OPT-OUT)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까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인체조직기증이 저조했던 스페인은 선택적 거부 제도를 도입해 기증활성화를 이뤘다.

선택적 거부제도가 아니라도 인체기증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장기와 인체조직기증이 저조했던 영국은 2005년 ‘티슈서비스(Tissue Services)’라는 인체조직기증 관련 국가기관을 설립해 기증활성화에 성공했다. 이곳에서는 지역 경찰관, 소방서, 병원, 장례사업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조직기증에 대한 홍보를 하고 관련 업무를 연계해 잠재기증자 증가를 도모하고 있다. 기증자 추천에서 이식재 공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통제했다. 환자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적극 차단해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불신을 잠재웠다.

국내 전문가들은 선택적 거부제도 도입과 함께 최초 주민등록주민증 발급 시 장기ㆍ인체조직 기증 서약여부를 묻는 문항을 삽입하는 것도 기증활성화에 도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 이사장은 “최초 주민등록증 발급 시 기증서약 여부를 묻는 문항을 삽입하면 서약여부를 떠나 기증에 대한 생각은 물론 생명 나눔에 대한 사회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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