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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끼리 다 해먹어라" 대학 파고든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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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끼리 다 해먹어라" 대학 파고든 여성혐오

입력
2016.05.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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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경쟁 시달린 남학생 일부

여학생 겨냥해 분노, 불안 표출

서울대선 여성인재 사업 비판하다

“김치녀 이젠 GOD치” 언어폭력

경희대는 소모임 홍보물 훼손도

“대학이 취업양성소 변질된 탓

일상 속 문제의 가져야 해소”

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캡처.
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캡처.

“실력 미달인 여대생이 수두룩하지만 취업 시장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는다.”

교육부가 8개 대학을 선정해 3년간 150억원을 지원하는 여성공학인재양성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24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가 여성 지원 정책 성토장이 됐다. 스누라이프에선 심지어 “여자들끼리 다 해먹어라”, “김치(여성을 비하하는 표현)가 갓치(god+치ㆍ여성만 최고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가 됐다”는 격한 반응도 나왔다.

앞서 23일 경희대에서는‘마이 리틀 여혐-여혐러에게 고하는 사이다토크쇼’ 행사 소개 입간판이 빨간 립스틱과 구두 발자국 등으로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성혐오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계획된 자리였지만, 누군가 행사 반대 뜻을 과격하게 표출한 것이다.

17일 발생한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경향에 대한 비판과 자성 여론이 일고 있지만 대학 캠퍼스는 외려 시류와 동떨어진 모습이다. 취업과 생존 경쟁에 시달리는 일부 남학생들은 자신들의 불만 분노 표출 대상으로 동료 여학생을 겨냥하고 있다. ‘메이트(mateㆍ동료)’가 ‘헤이트(hateㆍ혐오)’의 대상이 된 셈이다.

취업시장과 사회로 나서기 직전 단계인 대학은 이성이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거라는 잠재적 두려움을 표출하는 공간이 됐다. 특히 여성의 경제참여활동이 늘어나면서 청년실업이나 N포세대 현상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도 퍼지고 있다. 서강대 대학원생 임모(29)씨는 25일 “일류 대학 출신도 취업이 안 되는 시대다. 다른 원인이 있겠지만 당장 여성 때문에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기 때문에 남학생들 사이에 여혐(여성혐오)이 만연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학의 일상 속 여혐의 뿌리는 깊다. 생리공결제(여학생이 생리통으로 결석할 경우 한 달에 한 번 공적인 결석으로 처리하는 제도), 여학생 전용 휴게실 등 여성이 캠퍼스에서 보장 받은 권리에 남학생들은 분노하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총신대 대나무숲’에는 이 달 초 “생리공결제 악용을 막기 위해 생리주기를 제출해야 한다”는 취지의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게시자는 “수업에 늦어서, 그날 하루 놀고 싶어서, 학교 행사에 빠지고 싶어서 (여학생들이) 생리공결제를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에서는 최근 남학생 전용 휴게실 설치 방침을 두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실제로 남학생들은 자신들도 캠퍼스에서 역차별을 당한다고 느끼고 있다. 2013년 배재대가 대전 지역 5개 대학 500여명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남학생의 58.8%가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물론 대학 내 자성 분위기도 있다. 포항공대에선 지난달부터 포스텍 페미니즘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포스텍 페미니즘’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성평등에 대해 토론하는 일종의 온라인 페니미즘 스터디인 셈이다. 해시태그 운동에 참가한 한 남학생은 “이 운동을 통해 이제까지 여학생들에게 실수했던 것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면서 “조금만 언성을 낮추고, 상대방이 하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잘 들어보고, 어떻게 고쳐나갈지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자정 운동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월 강의실에서 발생하는 여성혐오 현상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던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의 이소민(23) 편집위원은 “학내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겠지만 일상에서 꾸준히 문제 의식을 가지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학이 취업양성소가 되고 오직 ‘이기는 교육’만 강조하면서 성갈등이 더욱 심화됐다”면서 “대학이 남녀가 소통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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