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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인간 손에 쥐어진 ‘유전자 가위’ 축복이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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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인간 손에 쥐어진 ‘유전자 가위’ 축복이기만 할까

입력
2017.11.1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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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등장한 이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논쟁들이 뜨거워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12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등장한 이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논쟁들이 뜨거워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유전자도 편집하는 시대 도래

생명 윤리와 충돌 피할 수 없어

특정 유전 형질을 질병 규정 땐

결국 우생학으로 이어져 ‘위험’

생명과학에서 윤리성 문제를 논의할 때는 강원래의 손을 맞잡으며 ‘내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 같은 휴머니즘적 호소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최초’ ‘국가간 특허 경쟁’ 같은 선전선동형 구호는 물론, ‘한민족의 젓가락 문화 때문에 우수한 연구원의 손재주’ 따위의 얘기를 주고받는 민족주의적 열정 또한 금지시켜야 한다.

휴머니즘과 민족주의 열풍은 윤리적 문제 제기 자체를 ‘우아한 헛소리’로 깎아 내리거나 심지어 ‘반휴머니즘적인, 반민족적인 주장’으로 매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한번 겪었다. 황우석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었던 무기가 바로 ‘휴머니즘’과 ‘민족주의’였다. 다만, 황우석은 ‘논문 사기’로 스스로 무너져 내렸기에 이 논쟁의 ‘끝’을 보여주지 못했다.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예전 모습이 반복될 기미가 보인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얘기다. 지난 8월 한국 연구팀이 미국 연구팀과 함께 인간배아에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제껏 ‘4차 산업혁명’은 IT라 목소리 높이더니 슬쩍 “4차 산업혁명은 AI(인공지능)가 아니라 바이오”라고 말을 갈아탄다. 이 중차대한 기술을 중국이 실험 중이니 어서 빨리 규제를 풀자는 레퍼토리도 빠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문제를 다룬 2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하나는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의 ‘DNA 혁명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다른 한 권은 김홍표 아주대 교수의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이다.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

김홍표 지음

동아시아 발행ㆍ336쪽ㆍ2만원

DNA혁명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전방욱 지음

이상북스 발행ㆍ332쪽ㆍ1만8,000원

크리스퍼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되어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이냐를 두고 찬찬히 훑어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차이점은 김 교수가 크리스퍼에 대한 차분한 설명에 집중한다면, 전 교수는 윤리문제를 더 자세히 끄집어낸다. 김 교수가 비윤리적이란 얘기가 아니다. 맨 마지막 6장 ‘크리스퍼는 야누스인가’를 윤리문제에 할애했다. 하지만 6장 마지막 문장은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약진은 가히 놀랍다”라 해뒀다. 반면 전 교수는 처음부터 윤리문제를 함께 제기할 뿐 아니라 한국 연구팀에 대한 직설적 비판도 피하지 않는다.

일단 크리스퍼(CRISPR)부터. 크리스퍼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약자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분포하는 회문의 반복들’ 정도다. 회문(回文)이란 김 교수가 예를 든 것처럼 ‘소주 만 병만 주소’ ‘다시 올 이월이 윤 이월이올시다’ 같이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같은 문장을 말한다. 이젠 다 잊고 ‘크리스퍼’만 기억하자.

유전자는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이라는 4가지 물질이 일정하게 배열된 형태다. 이 배열을 뜯어보니 회문 구조가 드문드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이러스의 DNA를 조회해서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새로운 바이러스일 경우 상대의 DNA를 잘라와 그에 맞는 면역반응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경찰관이 전과자의 지문을 등록해두었다가 유사 범죄가 일어났을 때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대조해 범인을 검거”하는 방식이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란, 이제 이 회문 구조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식물, 동물은 물론 인간에 대한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자세한 설명은 두 저자, 특히 김 교수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책을 직접 보면 된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전 교수의 본격적인 문제 제기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얘기가 나오자 벌써 ‘유전병 없는 만수무강 세상이 온다’는 식의, 몹시 위험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는 데 대한 반박이다. 굵직한 것 3가지만 뽑자면 이렇다.

먼저 ‘Genome Editing’의 번역 문제다. 유전자가위를 연구하는 국내 연구진은 이를 ‘유전자 교정’이라 해달라 요청했다. GMO가 유전자‘변형’이 아니라 유전자’조작’식품으로 번역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았듯, ‘유전자 편집’이라 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실제 최근 이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교정’이란 표현이 제법 눈에 띈다. 전 교수는 다양한 유전자 조작 기법을 생각해보면 ‘편집’이 더 포괄적이고 적합한 표현이라 반박하면서 “’편집’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교정’이라는 용어도 연구자의 기대와 가치가 많이 반영된, 지나치게 긍정적인 의미”라 비판했다. 편집이냐 교정이냐, 이미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전 교수는 또 한국 연구팀의 연구 행태도 ‘편법’이라 비판했다. 황우석 사태 이후 한국에서 인간 배아를 이용한 연구는 불가능하다. 미국은 윤리 논란을 의식해 초기 단계까지의 연구는 허용하되 관련 연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 이 때문에 한국 연구팀은 미국에서 미국 연구팀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전 교수는 “국가간 일관된 규제가 어렵다는 맹점을 이용해 민감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눠 시행한 것은 ‘책임 있는 자기 규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실정법 위반은 아닐 지 몰라도 연구윤리 차원에서 보자면 문제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특정 유전적 형질을 질병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결국 우생학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가령 유전자진단으로 왜소증을 미리 솎아낼 수 있기에 그렇게 한다면, 왜소증인 사람들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노화나 치매에 대응하기 위한 유전자 처방은 허용된다면 늙는다는 자체가 죄악이 되는가. 전 교수는 이런 여러 난점을 두고 “우리는 도덕적 완충지대에 진입하게 된다”는 표현을 썼다. 사실 우리 경우엔 더 걱정되는 바도 있다. 생로병사에 의연하지 못한데다 ‘내 새끼’, 그리고 어떤 ‘정상성’에 대한 집착은 세계 최정상급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의 이런 발 빠른 대응은 그나마 황우석이 남긴, 의도치 않은 유산일 게다. 그것 하나는 위안을 삼을 만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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