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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한국과 미국의 상반된 ‘공공 분노’분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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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한국과 미국의 상반된 ‘공공 분노’분출 방식

입력
2017.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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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쯤으로 기억한다. 늦은 오전 워싱턴 사무실로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텍사스 주 한 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터져 주변 500여 채 집이 폐허가 되고 15명이 숨진 사고에 관한 뉴스라는 설명이 나왔다. ‘큰일 났다’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더니, 진행자는 “2013년 터진 사고 원인이 3년간 이뤄진 수사 끝에 나왔으며, 누군가의 고의 범행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를 듣는 순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한국일보를 포함해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사고 이후 약 1개월가량을 이 사건에만 매달렸다. 모든 신문 지면이 삼풍으로 메워졌고, 방송 뉴스도 삼풍으로 시작해 삼풍으로 끝났다. 다른 분야 모든 이슈는 잊혔고, 이 사건을 맡은 사회부 사건 기자들은 한 달 넘게 현장을 지켰다.

취재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돌이켜보면 황당한 일도 많았다. 매몰된 뒤 구조된 생존자들로부터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사인과 함께 받아 내려고 병실에 잠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고 현장 어디쯤 추가 생존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무속인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1개월 넘게 지킨 기자도 이 사건이 어떻게 수습됐고, 책임자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텍사스 폭발과 삼풍 사고를 비교하면 국가적 재난이나 대형 사건ㆍ사고를 수습하는 방식에서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다른 걸 알 수 있다. 일반 시민의 분노나 슬픔, 언론 관심의 총량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차이가 없지만 이를 분출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뭔가 터지면 온 나라가 매달려 단시간에 감정과 역량을 집중 분출한다. 감정이 폭발하는 기간에는 사회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고, 동참하지 않는 구성원은 지탄을 받는다.

반면 미국은 오랜 기간 꾸준히 일정 수준의 관심과 분노를 유지한다. 사고 직후 한국 관점에서 보면 미국 언론이나 일반 시민이 무관심한 것 같다.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고, 흥겨운 행사도 대부분 예정대로 진행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꽤 흘러도 처음과 같은 수준의 관심이 유지된다. 오래된 사건ㆍ사고에 대해서도 공공의 관심이 사라지지 않고 결국 범법자는 죗값을 치른다. 일부 주는 여전히 흉악범을 형장의 이슬로 만들어 버린다.

국가적 슬픔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그 나라 혹은 국민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과 한국을 놓고 보면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한지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 분출이 아니었다면, ‘외환위기 금 모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한 건 한국의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가 예상치 못한 쓴 소리를 들은 것과 관계가 깊다. 최근 정국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 분은 “신문이나 TV를 아예 안 본다. 사실보다는 의혹만 부풀린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탄핵 정국의 중계자가 아니라 한쪽 당사자인 듯하다”, “얼빠진 대통령이 무당에게 속아 국정을 망쳤다더니, 이제는 세월호와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를 핵심으로 삼는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동료 기자들이 어련히 시시비비를 가렸을 텐데, 트럼프를 챙기기도 바쁜 워싱턴 특파원에게 따질 일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촛불과 ‘반 촛불’ 태극기 시위가 얽히고, 태블릿PC가 조작됐다거나 특검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이 계속되는 걸 보면서 이번 사태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언론 신뢰가 땅에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정의도, 언론도 제대로 서려면 이번만큼은 모든 의혹과 이슈를 굵고 길게 끝까지 챙겨야 한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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