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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엔론과 대우조선 경영자들

입력
2016.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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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그룹 엔론(Enron)의 회계부정은 미국 기업사에서도 최악의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꼽힌다. 우선 분식회계와 그에 따른 사회적 피해 규모부터 막대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1985년 창업된 이래 불과 15년 만에 포춘 500대 기업순위 7위에 오를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어 갔던 엔론의 치부가 2001년 말 드러났을 때, 분식회계 규모는 15억달러(1조7,000억원)였다. 분식회계를 통해 투자금을 더 많이 유치하고 사업을 확장한 탓에 투자자 피해 등은 분식회계액의 52배에 달하는 780억달러(88조원)에 달했다.

▦ 엔론 회계사기에는 아서 앤더슨 같은 당시 최고 회계법인의 부실감사나 부시 대통령 일가 등 공화당 권력과의 검은 유착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엔론 사건이 미국 기업사의 수치로 꼽히는 이유는 기업윤리의 타락 때문이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만연했던 사내 불륜과 고위 임원들의 이혼 유행 등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며 엔론 내 직장윤리 붕괴를 개탄했다. 망하기 직전까지 허위 재무제표를 토대로 벌인 엔론 임직원들의 천문학적 보너스 잔치도 두고두고 욕 먹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으로 꼽힌다.

▦ 그런 풍경들보다 엔론의 기업윤리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건 엔론 회계부정 과정을 점철한 경영자들의 좀도둑이나 양아치 같은 행태다. 심장마비로 급사한 회장이나 징역 24년 형을 받은 최고경영자(CEO), 권총자살한 부회장 등, 엔론 최상층부 중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3류 피라미드 업체처럼 회계사기로 눈먼 돈을 끌어들여 초호화 저택에서 제트기 타고 출퇴근하며 막연히 방탕한 생활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 사기꾼들에 불과했다.

▦ 대우조선 사태 초기부터 엔론과 닮은 꼴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일개 차장이 무려 180억 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해 수퍼카와 내연녀에 흥청망청 써 버린 사건이 불거졌어도, 그래도 경영진만큼은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기업 회생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의 초호화 여행을 지원한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이 그 자신도 전세 제트기에 수억 원의 경비를 들여 세계 명승지를 돌았다는 얘기(김해영 더민주 의원)에는 마침내 치미는 욕지거리를 참기 어렵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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