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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전형 간소화에 역주행… "선발 잣대 뭔지" 아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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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전형 간소화에 역주행… "선발 잣대 뭔지" 아리송

입력
2014.10.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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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 숫자만 부지기수 달하고 내신 등급 간 점수 차 축소 꼼수

"논술 비중 낮춰라" 권고 무색, 학생부 성적 반영도 제각각

정부가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시 논술전형을 축소하라고 대학들에 권고했지만 일부 대학은 오히려 해당 전형의 비중을 늘렸다. 지난해 한 사립대의 수시 논술전형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논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가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시 논술전형을 축소하라고 대학들에 권고했지만 일부 대학은 오히려 해당 전형의 비중을 늘렸다. 지난해 한 사립대의 수시 논술전형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논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대입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대학들은 귀를 닫고 있다. 정부는 내신 성적과 교내 활동을 반영하는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의 전형 확산을 유도해 공교육만으로도 입시 준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내신 성적을 주로 평가하는 학생부교과전형보다 학교 활동을 서류로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옛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고 있다. 비슷한 전형으로 보이지만 전자는 일반고 학생이, 후자는 경시대회ㆍ동아리ㆍ진로체험 등 교내활동이 다양한 특목고ㆍ자사고 학생들이 유리한 전형이어서 결국 특목고ㆍ자사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편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간소화한다던 2015학년도 입시전형 수는 전년도보다 105개 늘었고, 수시 논술전형에서는 내신 등급간 점수 차이를 좁혀 학생부 성적을 무력화하고 있다. 사교육 의존은 물론, 특목고 입학을 위한 고입 경쟁마저 부추기는 셈이다. 좋은교사운동 임종화 대표는 “특목고 학생 우대정책과 불확실한 입시제도 운용으로 대학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신 반영 수시 논술전형도 특목고 유리

서울 강서구 A일반고 3학년 이모(19)군은 설레는 마음으로 수시모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학생부종합전형과 논술전형으로 각각 2곳씩 서울 소재 대학 4곳에 원서를 냈다. 이군은 “초교 때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적도 있고, 어릴 적부터 글을 곧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다. 내신 성적도 1등급이어서 논술전형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군의 반 친구들도 논술전형에 기대가 크다. 학급 35명 중 성적이 중상위권인 10명이 모두 논술전형으로 수시에 지원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내활동이 다양한 특목고, 자사고가 유리하겠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는 논술전형은 일반고 학생도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학교 교사는 “일반고 학생들 다수가 수시 모집때 논술전형을 택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연세대 등 수시 논술전형이 있는 수도권 22개 대학의 2015학년도 평균 경쟁률은 34.29대1. 학생부종합ㆍ교과 등 다른 전형을 합한 수시 평균 경쟁률(18.30대1)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일반고 학생들의 지원이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학들의 전형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주요 대학은 수시 논술전형에서 내신 등급별 점수 차이를 좁혀 사실상 내신 무력화에 나섰다. 고려대 수시 논술일반전형은 논술 45%, 학생부성적 55%(교과 45%ㆍ비교과 10%)를 반영한다. 모집인원은 1,210명. 학생부 성적이 당락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학생부 교과 점수(만점 450점)에서 1등급과 5등급의 점수차가 1.2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도 비슷해 수시 논술전형 내신 성적의 1~5등급 차이는 연세대 0.8점, 서강대 1.6점, 중앙대 3.2점, 건국대 5.6점, 아주대 6점, 한국외대 7.5점, 숭실대 8점 등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학생부 성적이 낮아도 논술로 만회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술은 사교육 유발이 큰 분야로 꼽혀 결국 논술전형 확대는 공교육 정상화와는 거꾸로 가는 셈이다.

주요 대학들은 논술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위 교수는 “특목고 학생들을 보다 많이 뽑기 위한 꼼수”라고 말했다. 특히 2013학년도 수도권 15개 대학 자연계 논술 전형 문제 182개 중 68개(37.4%)가 대학 교과에서 출제돼 심화학습을 받는 특목고 학생이 유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지원받으면서 입시 개선은 뒷전

정부는 올해 6월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하나로 고른기회전형 등을 운영하는 전국 65개 대학을 선정했다. 학교당 2억~30억원씩 총 599억원을 지원하면서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완화 ▦특기자 전형 축소 ▦학생부 활용 강화 ▦논술시험 지양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을 받으면서도 대학이 내놓은 2016학년도 신입생 모집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연세대는 특목고 출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특기자 전형으로 2016학년도 수시 모집 신입생의 36.4%를 선발할 계획이다. 대학들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는 비율 또한 평균 42.8%로 여전히 높았고, 그 중 고려대는 78.4%로 2014학년도(78.2%)와 변화가 없었다. 국내 상위 15개 대학의 201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논술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8.8%였다. 2014학년도 34.9%보다 낮아졌으나 여전히 5명중 1명 이상은 논술 전형으로 입학한다. 성균관대는 44.4%에서 48.2%로 논술전형 비중을 오히려 늘렸다. 고교 정상화를 위한 정부 권고안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고려대와 연세대는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했다며 올해 정부로부터 각각 8억8,000만원, 6억8,0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입학전형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 보조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 입시전문기관 이투스청솔의 분석에 따르면 2015학년도 전국 대학의 수시ㆍ정시 전형 수는 2,988개(정시 2,000개ㆍ수시 988개)로 전년도 2,883개보다 105개 늘었다.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고교 정상화, 대입 전형 간소화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복잡한 교과 성적 산출식에 혼란도

대학별 학생부 교과 성적 산출방법이 달라 수시모집을 앞둔 고교에서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건국대와 연세대는 1학년 20%, 2학년 40%, 3학년 40%, 인하대는 1학년 20%, 2학년 30%, 3학년 50% 등으로 대학마다 학년별 반영 비율과 반영 교과가 다르고, 별도의 산출식이 따로 있어 계산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내신의 평균 등급이 같더라도 대학별 산출방식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복잡한 산출식으로 학생 개개인의 내신 성적을 계산하고, 유불리를 따져줄 여력이 없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과거에 과목별 등급의 단순 평균이 2.4인 학생이 A학과에 붙었다면 이번에도 성적이 비슷한 학생의 합격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산출식 또한 내신 무력화의 또 다른 방편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비상에듀 이치우 입시전략연구실장은 “각 대학은 1~5등급간 내신 성적 점수 차이를 적게 두는 쪽으로 산출식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종화 대표는 “입시 전형을 간소화하려면 학생부 성적을 산출하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 외국처럼 자기소개서 등 입시서류를 대학 구분 없이 통일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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