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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버리고 도망간 선조, 위정자의 반면교사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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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버리고 도망간 선조, 위정자의 반면교사가 되리

입력
2015.05.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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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의 신밀월 관계가 동북아 안보질서에 격랑을 일으키면서 우리의 외교 전략에 대한 우려가 비등하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균형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한반도의 명운이 위태롭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서는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가운데 우리는 또 지정학적 운명만 탓하고 있을 것인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구한말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국제정세에 눈을 감고 있다가 나라를 빼앗긴 역사의 뼈아픈 교훈은 400년 전 임진왜란 때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에는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가 단지 당파적 증오를 이유로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는 바람에 전란의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후세에 던지는 역사의 교훈이 더욱 크다 하겠다. 때론 분열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교훈 말이다.

마침 TV드라마를 통해 방영되고 있기도 하지만 임진왜란의 생생한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징비록’만 한 것이 없다. 서애 유성룡이 남인 온건파의 태두라는 점에서 주관을 완전히 배제한 기록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서애는 대체로 냉정한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징비록’은 왜란의 경위나 전황에 대한 충실한 전달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에 펼쳐졌던 외교전을 포함한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평가, 전란을 당한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특히 서애가 머리말 ‘자서(自序)’를 통해 기록을 남긴 이유를 밝힌 대목에서는 저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내 지나간 일을 징계(懲戒)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노라’는 시경의 문구를 거론하며 “내가 징비록을 쓴 연유”라고 밝히고 있다. 책 제목이 글을 쓴 이유인 셈이다. 서애는 또 “나 같은 못난 몸이 당시의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감히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움을 바로잡지도 못했고 기울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했다”고 괴로워하는데, 지식인 내지 지도자의 길과 관련해 던지는 화두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징비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은 여럿이지만 전쟁의 한 가운데서 백성은 언제나 내팽개쳐지고, 특히 아녀자와 아이들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임진왜란을 도발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활약했던 일본 전국시대 때도 최대 피해자가 아녀자와 어린이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징비록에서 그려지는 선조를 통해서는 위정자의 반면교사를 배운다.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한양을 빠져나갈 때 한 백성이 “나랏님이 우리를 버리고 가시면 우리들은 누구를 믿고 삽니까”라고 통곡했다고 묘사된 장면은 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서울을 빠져나갔던 이승만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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