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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막말 논란, 미국의 ‘정체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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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막말 논란, 미국의 ‘정체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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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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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반 이민ㆍ반 무슬림’정서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2016년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연합뉴스
미국인들의 ‘반 이민ㆍ반 무슬림’정서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2016년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전면 입국 금지’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문제로 번질 태세다. 극히 이례적으로 백악관이 차기 대통령 후보 퇴출을 요구하고 국제사회마저 비판에 가세하고 있지만, 상당수 보수 성향의 미국인은 여전히 트럼프 편에 서는 모습이다. 자유 이민과 아메리칸 드림을 자부해온 미국이 이민을 거부하고 외부와 담을 쌓았던 1920년대 초반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8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반 무슬림’ 발언 이후 트럼프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를 정면 조준해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공화당의 다른 대선 주자들이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트럼프의 말에 함께 끌려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의문”이라며 “다른 주자들은 트럼프가 후보로 지명되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을 당장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미 언론들은 백악관이 상대 진영의 특정 대선 후보를 겨냥해 이렇게 강도 높은 비난을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공화당 지도부도 우려를 나타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비공개 의원모임에서 “종교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와 미 태생 또는 귀화여부에 관계없이 시민권의 적법한 절차를 보장하는 제14조를 위반한다”라고 비판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역시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을 통해 “모든 형태의 외국인 혐오와 이민자 및 인종ㆍ종교 그룹을 적대시하는 발언들에 대해 여러 차례 비난해왔으며, (트럼프 발언은) 분명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분열적이고 완전히 틀렸다”고 지적했다. 이슬람권 언론들도 “트럼프는 미국판 히틀러이다”(일간 알하야트) 라고 밝히는 등 일제히 트럼프를 향해 비난의 포화를 쏟아냈다.

‘사면초가’식으로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트럼프는 이날 “내가 하는 일은 FDR(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직후 11만명 이상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 조치했던 것들 상기 시킨 것이다. 그러나 FDR의 조치에 대해 미국 정부는 1988년 공식 사과한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거친 언사가 대선 정국을 더욱 유동적으로 만든 것은 물론이며, 미국의 정체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후보라면 정치생명이 끝나고도 남을 막말에도 불구, 공화당 선두를 유지하는 건 트럼프 말과 생각이 미국인들의 속마음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지금 미국은 더 이상 오바마를 당선시킨 나라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신문은 트럼프가 미국 역사에서 몇 차례 반복된 ‘반 이민ㆍ반 외국인’ 정서를 깨우고 있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두려움과 맞물려 1920년대 1차 대전 직후 유럽 난민 유입을 극히 억제했던 상황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전역의 비판에도 불구, 트럼프는 이날 발표된 노스캐롤라이나 여론조사에서 2, 3위 후보와 큰 격차를 내며 1위를 질주했다. 의회 전문지 더힐은 “무슬림 전면 입국 금지 발언이 나오기 전에 이뤄진 조사지만, 트럼프의 반 무슬림 정책에 공감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주요 언론의 인터넷 기사에는 ‘진실을 말하고,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건 트럼프 밖에 없다’는 반박성 댓글이 잇따라 붙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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