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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캘리아와 긴즈버그, 이념보다 강했던 ‘30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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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캘리아와 긴즈버그, 이념보다 강했던 ‘30년 우정’

입력
2016.02.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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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뛰어 넘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온 앤터닌 스캘리아(왼쪽) 대법관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게티이미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뛰어 넘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온 앤터닌 스캘리아(왼쪽) 대법관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게티이미지

1996년 미국 대법원은 남녀 동등권리와 관련, 역사적 판결을 내린다. ‘미국 정부 대 버지니아’사건이다. 여학생 입학을 원천 봉쇄하는 학칙을 고수하는 ‘버지니아 군사학교’(VMI)에 여성을 받아들이라는 판결(7대1)이었다. 7명 대법관을 대신해 여성 입학을 옹호한 판결문을 쓴 사람은 현재 최고령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ㆍ여)였고, 이에 맞서 유일하게 입학 반대를 고수한 건 13일 심근경색으로 타계한 고 앤터닌 스캘리아(79) 대법관이다.

긴즈버그와 스캘리아 대법관의 판결 대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 해석과 법원의 역할, 동성애자 권리 등 모든 이슈에서 강한 보수와 강한 진보로 한치 양보를 하지 않았다. 긴즈버그가 동성 결혼을 주재한 첫 대법관이라면, 스캘리아는 대법원이 동성애자 권리를 조금씩 인정해 나가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곤 했다. 이쯤 되면 스캘리아 대법관과 긴즈버그 대법관은 서로 원수처럼 여겼을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두 대법관이 9명의 대법관들 가운데 가장 친했으며, 평생의 법조계 동지로 여겼다고 보도했다.

전직 대법원 서기인 데오도르 올슨은 “긴즈버그와 스캘리아는 1980년대부터 대법원에서 함께 일했다”며 “대법관이 단체 여행을 떠나면 긴즈버그가 가장 선호하는 쇼핑 친구는 스캘리아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또 ‘스캘리아가 잡고, 마티(긴즈버그 남편)가 요리했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칠면조를 나눠 먹으며 가족 동반 송년행사를 자주 가졌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2010년 마티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는 눈물까지 닦았다.

미국 언론들은 이념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는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분석은 취미와 성장배경 및 경력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대법관은 오페라를 매우 좋아한다. 어린 시절 뉴욕 외곽지대에서 자랐고, 대법관이 되기 전에는 모두 법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또 대법관 임명 직전에는 한국의 고등법원과 비슷한 연방항소법원의 워싱턴D.C. 지역 담당 판사로 일했다. 객관적 공통점이 이념 간극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한 책(악명 높은 긴즈버그)을 쓴 아이린 카몬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각자 스스로와 상대방의 이념성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모든 토론을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손녀 폴 스페라는 “두 분이 사석에서 정치 혹은 이데올로기와 관계된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카몬 기자는 “둘은 전문 법조인으로서 상대방 실력과 시각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법리 논쟁을 벌였다”며 “미 대법관의 이념성향이 갈수록 양극화된다는 비판에도 불구, 제 기능을 잃지 않는 건 이런 전통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스캘리아 대법관 급사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 대법관 지명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 민주당 내부에서 고령인 긴즈버그 대법관을 민주당 대통령 재임 중 젊은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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