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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리한 법 적용이 부른 정윤회 문건 유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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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리한 법 적용이 부른 정윤회 문건 유출 ‘무죄’

입력
2015.10.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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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을 부른 ‘정윤회 문건’을 외부로 유출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문건을 작성하고 박지만 EG 회장에게 건네준 박관천 경정에게는 유출 문건 17건 중 1건에 대해서만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인정하고,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는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재판 결과는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수사 착수 전 이 사건을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에 부응하려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 업보다. 성과라면 별건 수사로 박 경정의 뇌물수수 혐의를 밝혀내 징역 7년 형을 받게 한 정도다.

법원은 조 전 비서관 등이 유출한 문건들은 결재 완료된 문서를 출력ㆍ복사한 것으로, 이런 문서들까지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대통령 보좌기관이 생산하고 결재가 된 전자문서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ㆍ보존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력ㆍ복사본까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ㆍ관리하는 것은 현실적ㆍ합리적이지 않고, 이러한 복사본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맞지 않다고 보았다. 검찰이 정윤회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처벌하려고 무리하게 대통령기록물법을 확대해석ㆍ적용했다는 의미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무리한 수사와 ‘코에 걸면 코걸이’식 기소로 망신을 자초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사건으로는 지난 2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안 파기 혐의로 기소된 참여정부 인사들이 무죄를 선고 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통령 결재가 이뤄지지 않은 초안까지 대통령기록물로 판단해 이들을 기소한 검찰은 같은 내용의 대화록을 공개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무혐의 처리했고,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게는 양형이 가벼운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살아 있는 권력이냐 죽은 권력이냐에 따라 기소와 불기소, 적용 법규가 달라졌던 셈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에서도 정윤회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박 경정이 풍문을 짜깁기 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대통령기록물법을 적용, 박 대통령이 제시한 ‘찌라시’‘국기문란’구도에 사건을 꿰어 맞추려다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번 재판 결과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주 무리를 범하는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공정한 수사는커녕 정치 권력에 휘둘려 기소독점권을 남발했다간 조직에 부메랑이 되고 국민신뢰 회복도 어렵다는 것을 검찰은 이제라도 제발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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