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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쏘세지와 정글과 나

입력
2015.10.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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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소국 리투아니아에서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 온 건장한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어렵사리 이민국 심사를 받은 후 육지에 도착했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떨다 경찰에게 손짓 발짓으로 의사표현을 하여 도움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미국 땅에서 처음 당한 사기였다.

미국이 ‘기회의 땅’ ‘약속의 땅’은커녕 약육강식의 ‘정글’임을 실감한 농부는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돈을 벌려 했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뉴욕에서 공업도시로 급격히 팽창하고 있던 시카고로 간 농부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온갖 공장을 전전하다 도살장, 비료공장 등을 거치게 된 것인데, 3D 업종에서 시작하여 더 열악한 3D 업종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 적절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시지나 햄 등 가공육을 담배나 석면처럼 1군 발암물질로 규정, 분류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시지, 햄 등 가공육이 진열되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시지나 햄 등 가공육을 담배나 석면처럼 1군 발암물질로 규정, 분류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시지, 햄 등 가공육이 진열되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3D 업종에서도 가장 막장 급이라 누구나 기피하는 소시지 공장에 취업한 농부는 살인적 강도의 노동에 시달린다. 육체적 고통만큼 그를 괴롭히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소시지 제조 과정이었다. 다 썩어가는 저질 고기에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온갖 지저분한 첨가물이 들어가는 소시지 제조 과정의 생생한 묘사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어느 날 소시지를 만드는 거대한 분쇄기에 노동자가 빠졌지만 기계를 멈추면 손해가 컸기에 공장장은 그냥 기계를 돌린다. 얼마 뒤 노동자의 피와 살이 반죽된 소시지가 예쁜 포장에 담겨 나왔다.

여러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에 의해 피해를 보다 절망에 빠졌던 리투아니아 출신 농부 아니 이제 노동자는 어느 날 거리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구호를 들었다. 사회주의자들의 집회에 참석한 그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을 인간으로 대우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노동자의 권리 나아가 인간의 권리에 눈을 뜬다.

미국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의 대표작 ‘정글’의 대체적 내용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정글’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끼쳤다.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싱클레어를 백악관에 초청해 오찬을 같이 할 정도였다. 싱클레어는 ‘정글’에서 자본가만이 잘 살고 노동자는 핍박 받는 사회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것인데, 결과는 그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었다.

사회개혁을 의도한 ‘정글’은 ‘식품위생법’ 개정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비위생적인 소시지 제조 과정은 특히 학부모들에게 충격을 주어 위생적 과정을 거친 소시지가 미국 가정의 식탁과 학교 급식에 오르게 되었다. 싱클레어는 훗날 “나는 사람들의 심장을 겨눴는데 결국 밥통을 때렸어…”라고 시니컬하게 회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 소시지가 위생 상태와 성분 표시도 엉망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채식 제품에 버젓이 고기가 들어 있는가 하면 일부 소시지에선 사람 DNA까지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보니 이런 사정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사람 DNA는 사람 몸뚱이가 소시지의 재료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나 비듬 같은 게 들어간 것이리라.

그나저나 언제부터 소시지라 발음했는지 모르겠다. 문법상 아무리 자장면이 맞다 해도 짜장면이라 발음해야 하듯이 소시지는 소세지도 아닌 ‘쏘세지’라고 해야 느낌이 온다. 어릴 적 먹던 핫도그에는 손톱만한 크기의 쏘세지가 들어 있었다. 그 시절 핫도그는 정확히 말하면 막대에 둘둘 말린 밀가루 튀김이었다. 밀가루를 다 뜯어먹고 손톱만한 빨간 쏘세지가 꿰어져 있는 소독저를 들고 다니며 자랑스레 빨아대는 동네 꼬마들의 모습이 드물지 않았다. 쏘세지가 들어 있는 도시락 반찬을 가져오는 경우도 중학교에 가서야 볼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쏘세지는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자꾸 ‘정글’의 장면이 떠오른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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