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대전 대표빵집 성심당은 자본주의경제 대안인가

알림

대전 대표빵집 성심당은 자본주의경제 대안인가

입력
2016.10.21 11:11
0 0
연말 빵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둘러 싸인 성심당 전경. 남해의봄날 제공
연말 빵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둘러 싸인 성심당 전경. 남해의봄날 제공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김태훈 지음

남해의봄날 발행ㆍ308쪽ㆍ1만6,000원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골목으로 들어오면서 ‘서민경제 다 죽인다’는 울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실제로 많은 개인 빵집이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보장된 맛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지금껏 성장해왔다. ‘반드시 그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었던 지방의 몇몇 유명 빵집도 ‘시그니처’ 메뉴를 내세워 전국에 지점을 내며 빵들의 전쟁에 가세했다.

단팥빵과 소보로, 도넛을 합체한 ‘튀김소보로’로 잘 알려진 대전의 ‘성심당’은 그러나 미련하리만치 대전을 지켰다. SNS에서 종종 보이는 성심당 앞 길게 늘어선 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대전에 다녀오는 길에 사왔다”며 내미는 ‘튀김소보로’ 가 어색하지 않은 건 성심당이 “대전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빵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역 내부 성심당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남해의봄날 제공
대전역 내부 성심당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남해의봄날 제공

공유경제와 시민경제학의 권위자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룸사대 교수는 지난 5월 한국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이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 기업관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성심당은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이자 시민경제의 새로운 모델이다.”

성심당 창업자 임길순, 한순덕씨의 모습. 남해의봄날 제공
성심당 창업자 임길순, 한순덕씨의 모습. 남해의봄날 제공

신간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은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성심당이 어떻게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으로까지 제시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6년 전부터 성심당을 지역문화와 동반 성장하는 로컬 기업 사례로 주목해온 저자 김태훈이 지난 1년간 집중 취재한 결과물이다. 경제경영서적으로 분류돼 있지만 60돌을 맞은 성심당의 과거를 찬찬히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평전이나 회고록에 가깝다.

한국전쟁 중 함경남도에서 내려와 대전에 정착한 임길순ㆍ한순덕 부부가 밀가루 두 포대를 밑천 삼아 대전역 인근에서 시작했던 찐빵 장사가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아들 임영진이 대를 이어 ‘튀김소보로’를 개발했고 이후 ‘폭풍’ 성장했다. 위기도 있었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등장과 대전 원도심 쇠락에 이어 2005년에는 성심당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물론 지금은 400여 명의 직원을 둔 대전의 대표 기업이다.

파란만장한 60년 역사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생명력이 책의 발행 배경은 아니다. 출판사 대표는 우연히 대전에서 탄 택시에서 기사가 대뜸 “성심당에 가보셨어요?”라며 “대전의 자랑이에요, 자랑!”이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데 호기심을 느꼈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대전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자랑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2대째 성심당을 운영하고 있는 임영진, 김미진 부부. 남해의봄날 제공
2대째 성심당을 운영하고 있는 임영진, 김미진 부부. 남해의봄날 제공

빵을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성심당을 찾아온다. 서울로 진출하라는 러브콜도 상당했다. 대전 밖으로 나설 만큼 매출이 된단 얘기다. 그러나 성심당은 신념이 있었다. “한 도시 안에서 기업이 해야 하는 사회적인 역할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만든 찐빵 300개 중 100개를 이웃과 나눴던 창업자 부부의 정신은 아들 임영진ㆍ김미진 부부가 고스란히 물려받아 “대전 없이 성심당은 존재할 수 없고 대전 시민 없는 성심당도 상상할 수 없다”는 지역경제에의 책임감으로 발전했다.

화재로 전소돼 ‘이제 끝이구나!’ 싶었던 성심당은 임직원이 제 일처럼 나서 복구해 6일 만에 정상화됐다. 대전 시민은 성심당을 ‘로컬 히어로’라며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엄지를 치켜 세운다. 대기업 중심의 자본 독점, 상생이 사라진 기업 문화에서 성심당의 ‘모두를 위한 경제’는 경종을 울린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성심당의 사훈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