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상진
논설실장

등록 : 2018.03.22 19:00
수정 : 2018.03.22 19:04

[논ㆍ담] 이희범 “평창서 평화, 문화, IT올림픽 실현… 국격 한 단계 업그레이드”

등록 : 2018.03.22 19:00
수정 : 2018.03.22 19:04

2만여명의 자원봉사자 ‘완주’

올림픽 사상 유례없는 기록

그들의 헌신, 땀방울 덕 성공

처우 논란엔 다시 한번 죄송

북한 참가과정 상세히 못밝혀도

바흐 IOC위원장이 막후 노력

서울올림픽 계기 도약 이뤘듯

향후 정치 경제적 큰 효과 기대

이희범(왼쪽) 평창올림픽ㆍ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으며, 성공 개최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동계올림픽 종목은 이제 열대국가도 즐기는 보편적 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때까지 강원도의 경기장들은 각국의 시차적응과 실전 전지훈련장 등으로 유용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고영권기자

세계인에게 흥분과 감동을 안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막을 내렸다. 평창올림픽은 동계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안목을 높였다.모두 컬링 전문가가 됐고, 스켈레톤의 속도 경쟁에 매료됐으며, 바이에슬론의 극한 체력 싸움에 눈을 떴다. 한반도에도 경험하지 못한 평화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되는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모두 평화올림픽을 주창한 평창올림픽이 계기였다.

평창올림픽 38일의 열전, 아니 2011년 10월 평창 동계올림픽ㆍ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출범 후 6년 6개월의 준비와 대회개최를 되짚어 보기 위해 21일 이희범(69)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전날에야 서울 자택으로 돌아온 그의 눈가에 수시로 맺히는 눈물에서 남 모를 피곤함이 엿보였다. 휴일 없이 하루 네댓 시간 잠잘 때를 빼곤 늘 평창의 ‘칼바람’을 맞고 다닌 후유증이다. 하지만 표정은 여유롭고 편안했다.

-38일 동안 국민들은 원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평창에 죽 머물면서 행복하셨나.

“올림픽 개막 후 ‘한국의 밤’ 행사장에서 만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개막식 등을 극찬하며 ‘Everyday is special(모든 날이 특별하다)’고 하길래 ‘For me, everyday is torture(내겐 모든 날이 고문이다)’고 농반진반의 말을 했는데···.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평창올림픽은 운영, 흥행, 기록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공적 개최의 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개막 전만 해도 흥행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80% 이상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감사 드린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꼽고 싶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자원봉사자 5만명을 모집했는데, 소집 첫날 25%, 대회 마지막 날 45%가 나타나지 않았다. 완전 실패였다. 우리는 9만2,000명이 신청해 2만 명을 선발했는데, 끝까지 완주하지 못한 분들이 0.98%, 200명이 채 안됐다. 올림픽 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송승환 총감독이 두 달 간 평창에 머물면서 맑고, 쾌청하고, 기온도 올라간 날은 개막식, 폐막식 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던 덕분도 컸다. 천운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았다는 지적과 불만이 있었다. 흑자올림픽을 의식해생업과 학업마저 팽개치고 오신 분들에 대한 처우 비용까지 줄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막 직전 자원봉사자들을 강원도 11개 시군 지역 숙소로 분산 수용했다. 오전 8시 경기 시작에

맞추려면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6시까지 경기장에 와야 하고, 그러려면 버스 배차시간을 정확하게 경기일정에 맞춰야 했는데 수송부와 경기부 손발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영하 25도 강추위까지 겹쳤으니···. 신속히 버스 80여대를 추가 투입하고 식사 질도 높여 초기에 문제를 해소했는데, 다시 한번 죄송하고 고맙다.”

-다소 무거운 주제로 들어가 보자.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선전의 장(場)이 되기 쉽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의 돌파구로, 정부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평창올림픽을 적극 활용했다. 이후 긍정적 결과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한편으론 스포츠가 정치문제와 자주 엮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장에서 어떻게 보셨나.

“IOC도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 스포츠와 정치 사이에는 ‘키싱 포인트(Kissing Point)’라는, 일종의 접점이 있기 마련이다. 1971년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다. 남아공은 인종차별 때문에 70년 IOC에서 축출됐고, 72년 뮌헨올림픽은 투옥 동료 석방을 요구하는 아랍 게릴라 ‘검은9월단’의 테러로 공포 올림픽이 됐다. 80년 모스크바, 84년 LA올림픽은 각각 서방ㆍ공산 진영의 불참으로 반쪽 올림픽이 됐으나 이후 88년 서울올림픽에 양 진영 국가 모두 참석했고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비욘드(beyond) 평창’, 즉 평창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의 평화를 희망하는 올림픽으로 만들자고 한 것이고, 그것이 평창올림픽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결과를 만들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흥행에 도움이 됐지만 응원단ㆍ예술단에 대한 국민 반응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 과거에 비해 시들했던 것 같다.

“국민 시선이 쿨해 졌다고 해야 할까, 호기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 미사일 도발로 안보 위기감을 고조시킨 데 대한 반발도 작용한 것 같다. 개막식 때 한반도기을 앞세운 공동입장에 반발해 ‘왜 태극기가 아니냐’며 입장권 환불을 요구한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극소수였다. 경기장 주변에서 인공기 소각 같은 극단적 행위도 없었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북한 특사단과 미국 부통령 등 고위 인사들이 장시간 함께 앉아 있는 등 긴장된 장면도 많았다.

“나야 올림픽 운영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으니 그 내밀한 분위기까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북한 특사단과 우리 측 인사들이 식사 때 거의 모든 건배사로 ‘통일’을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과정이 궁금하다. 지난해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또 안보 위기 속에 안전한 올림픽 개최가 가능하겠냐는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북한 참가를 이끌어냈는데···.

“현 단계에서 북한의 참가 과정을 상세히 다 밝힐 순 없다. 다만 바흐 위원장이 방북 의사까지 밝히는 등 적극 지원했다.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취임 직후 스위스 로잔 IOC를 방문해 바흐 위원장에게 북한 참가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미사일 11발을 발사했다. 그러자 동계스포츠 강자인 유럽 국가들이 불안해 했다. 미국도 불참 이야기를 흘렸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 9월 페루 리마 IOC 총회가 열렸다. 바흐 위원장에게 평창올림픽의 안전한 개최를 위한 IOC 차원의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바흐 위원장은 급히 연설문을 수정해 “각국 정상들은 한반도 정세를 의심하지 않고 있다. 지금 (올림픽 개최지 변경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현 가능하지 않다. 플랜B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기대한다”고 못을 박아줬다. 10월24일 개최국만 참석하는 그리스 성화 채화식에 일본(2020년) 중국(2022년) 프랑스(2024년) 미국(2028년) NOC위원장들을 모두 불러 이들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북한의 자력 참가를 지원하되, 그게 어렵다면 각 경기연맹과 협의해 북한 참여를 돕겠다는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발표해 북한의 평창행을 도왔다. 북한의 평창행은 그런 일련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을 더 개방화, 다원화, 글로벌화한 사회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됐다. 국민들도 우물에서 나와 세계를 바라보고 지구촌의 일원으로서의 의식과 안목을 높이게 됐다. 평창올림픽은 그로부터 30년, 20세기를 넘어 21세기 한국에서 치러진 대형 행사다. 평창올림픽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 후 3년만인 67년 G2로 올라섰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후 몇 년 뒤에 G2가 됐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은 과거 적대시하던 공산 진영 국가들과 수교를 하며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 덕에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급변해 가던 세계질서에 대응할 수 있었고 97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이처럼 올림픽은 올림픽 자체만으로 정치적 영향이 크고, 경제적 전후방 효과도 엄청나다. 평창올림픽을 개최하며 기대한 것은 평화올림픽이다. 그리고 문화올림픽, IT올림픽을 지향했다. 북한의 참가를 계기로 한반도 위기 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평창올림픽 기간 중 경기장 안팎을 흥겹게 해준 K팝과 전통문화 공연 등 한류 문화의 세계 확산, 세계 최초 5G 통신 구현 같은 한국 IT기술의 세계시장 진출 등 다양한 기회가 창출됐다. 이미 평창올림픽은 그 자체로 한국과 한국민, 즉 국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강원도의 발전 가능성이다. 총 12조원이 인프라 건설에 투입됐는데, 고속철도 신설 등을 통해 동서 지역균형 발전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본다. 강원도는 도약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강원도에 인프라 12조 투입돼

동서 지역균형 발전 가속화

2022년 베이징올림픽 대비

평창이 훈련기지로 유용할 것

이희범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 고영권기자

-강원도의 발전 가능성을 말씀하셨다. 사실 올림픽을 뺀, 강원도의 현 관광자원이나 상품 서비스 등을 감안할 때 12조원이나 들인 고속철도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있다. 특정 동계스포츠용으로 건립된 경기장도 애물단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적지 않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동계올림픽은 유럽의 경기였다. 평창 이전 22번의 동계올림픽을 미국과 유럽 10개 국가 등 11개국이 개최했다. 나머지 2차례 동계올림픽 개최는 일본(나가노, 삿포로)이 유일하다. 평창올림픽은 유럽의 전유물인 동계올림픽이 아시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잡은 기회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아시아 지역에 동계스포츠가 확실히 뿌리내리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동계스포츠 하면 피겨만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에 컬링, 스켈레톤, 바이에슬론, 루지 등 다양한 종목을 마주하며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높였다. 이번에 동계올림픽 첫 참가 6개국은 에콰도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에리트레아, 나이지리아 등 적도 지역 국가들이다. 동계올림픽은 더 이상 눈과 얼음이 있는 나라의 전유물이 아닌, 열대국가들도 즐기는 보편적 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베이징이 계기다. 강원도 경기장은 최소 2022년까지는 유용하다. 전 세계, 그리고 열대국가 선수들이 시차적응을 하며 전지훈련을 하기엔 평창만한 곳이 없다. 강원도의 계획은 잘 모르나 강원도와 수도권의 거리를 1시간대로 좁힌 고속철은 분명 국가균형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노로바이러스 출현은 안전 올림픽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보였다. 다른 올림픽에서도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회피하기엔 문제가 심각했다. 폐막 후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패럴림픽 때 6명의 감염 환자가 또 발생했다. 노로바이러스 감염을 왜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나.

“감염병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했는데, 구멍이 뚫렸다. 사실 조직위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걱정했다. 그래서 평창 주변 가금류를 살처분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했는데, 노로바이러스는 예상치 못했다. 허를 찔린 셈이다. 유입 인구가 많아져 이동식 화장실을 썼는데, 지하수가 오염되면서 발생했다. 조직위의 대응 잘못이지만 사후 신속한 조치로 선수 감염자가 4명에 그친 것은 다행이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니까, 당초 약속들이 흔들리고 있다. 가리왕산 복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당초 복원을 전제로 알파인 스키 코스를 개발했는데, 강원도는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개최를 위해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고, 산림청은 계획대로 복원하자고 한다. 이렇게 입장이 그때그때 달라지면 개발이 필요한 대형 스포츠 행사 개최 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경기장을 지을 때 한 그루 나무를 베면 반드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가리왕산 문제는 베이징동계올림픽 때까지의 수요, 그리고 복원과 유지의 비용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앙 정부와 강원도, 시민ㆍ환경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바람직한 방향이 나올 거라 믿는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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