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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을 몰아내듯

입력
2014.11.3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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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이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최대 공적(公敵)이 된 건 오래 전부터다. ‘죄악세’ 중 세수가 가장 많은 품목이 담배다. 2012년 기준으로 담뱃세는 6조9,000억원에 이른다. 여야가 28일 담뱃값 2,000원 인상에 합의함에 따라 정부 연간 세수는 최대 5조원까지 늘 전망이다. 이렇게 수월한 증세가 가능한 건 위생의 통치도구적 속성에 대한 일반의 무신경 덕도 크다. 위생은 감시를 위한 수단이고 질서는 자유 희생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흡연이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최대 공적(公敵)이 된 건 오래 전부터다. ‘죄악세’ 중 세수가 가장 많은 품목이 담배다. 2012년 기준으로 담뱃세는 6조9,000억원에 이른다. 여야가 28일 담뱃값 2,000원 인상에 합의함에 따라 정부 연간 세수는 최대 5조원까지 늘 전망이다. 이렇게 수월한 증세가 가능한 건 위생의 통치도구적 속성에 대한 일반의 무신경 덕도 크다. 위생은 감시를 위한 수단이고 질서는 자유 희생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위생은 통치술이다. 어둡고 지저분한 곳에서 저항은 싹트고 자란다. 더러 야만은 낙인이다. 혐연 조장 목적 중 증세도 있다. 흡연자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가 적잖은 국가의 배신이다.

“한국에는 어딜 가나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지나치게 많은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금연’이다. 최근 5~6년 사이에 금연 표지판은 버려진 담배꽁초보다 더 많이 생긴 것처럼 보이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금연 광고는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한때 흡연자들이 방만하게 누렸던 자유 때문일까. 이제 그들은 다수 비흡연자들의 찌푸린 얼굴과 고성을 받고도 할 말이 없이 쫓겨 다니는 소수자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국가적 사업이 된 금연이 내세우는 기치는 크게 두 가지다. 청결과 건강. 흡연 뒤에 남는 꽁초, 재, 침 등은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고, 흡연자들이 내뿜는 연기는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독소다. (…) 가끔씩 등장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처벌과 마찬가지로, 흡연자들에 대한 단속 역시 어쩌면 가장 쉽고, 눈에 잘 띄며,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용이한 방식으로 보인다. 청결과 건강에 이의제기 할 사람은 없고, 일상에 널린 흡연자들에게 청결과 건강을 해치는 이들의 이미지를 덧씌우기란 너무나 쉽다. 청결과 건강에 대한 강조는 얼핏 매우 상식적인 진리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통치술이다. 깨끗한 도시경관의 창조는 대개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리는 도시 재개발로 귀결되는데, 이를 통해 ‘지저분한’ 서민들의 집은 허물어지고 ‘깨끗한’ 부자들의 고층아파트로 변모하기 일쑤다. 건강한 신체는 모두의 소망이지만, 이 역시 강조되는 순간 ‘중요한 것은 건강밖에 없는’ 일차원적인 인간들의 양산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도시가 부자들의 공간으로 바뀌고, 대중이 건강에만 집중하는 사회--흥미롭게도 이런 세계는 오늘날의 자본이 좋아하는 그런 세계상이기도 하다. 모두가 자신의 건강과 계발에 열중하면서 부자가 되길 꿈꿀 때, 자본은 완벽한 노동자상을 얻는다. 요구하고 농성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그 혼란과 무질서가 사라진 세계. 청결과 건강은 바로 그 혼란, 무질서, 더러움의 반대항이다. (…) 흡연자는, 말하자면, 우리가 싫어하는 이 제3세계의 이미지다. 그것은 동남아 노동자의 이미지고, 장애인과 환자의 이미지며, 실패자와 폐인의 이미지다. 권력은 이들을 받아안지 못한 실패의 대가를 이들에 대한 차별로 전환시키면서 다수에게 성공과 청결과 건강의 이미지를 욕망케 만든다. 이렇게 구조의 문제는 문화의 문제로 가려진다.”

-금연은 누구에게 이로운가(한겨레 ‘크리틱’ㆍ문강형준 문화평론가) ☞ 전문 보기

“이제 담배는 공적(公敵)이요, 흡연자는 죄인이다. (…) 담배는 그 어떤 사회적 흉기보다 더한 흉기이며, 흡연은 그 어떤 병리현상보다도 더 끔찍한 증상이 된 것이다. (…) 흡연자는 늘 가해자고 비흡연자는 피해자다. 담배보다 술이 몇십 배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킨다는 항변은 조롱거리다. 살인과 폭행, 강간과 강도범의 절반은 취중 범죄다. 담배에 취해 강간하거나 살인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술과 간암의 관계와는 달리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인정한 법정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도 파묻힌다. 그래서 담배보다 백 배는 해롭다는 자동차 배기가스에도 붙지 않는 건강증진부담금이 담배에는 붙는다. 만병의 원인이어서 낸다는 이 특별부과금은 돈을 낸 흡연자를 위해서 써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 심지어 흡연자는 지방교육세까지 낸다. 흡연자는 나라가 만만히 여기는 봉이 된 것이다. (…) 그것만으로 성에 안 차는지 보건복지부는 오래전부터 담뱃갑 디자인을 흉측한 폐암이나 문드러진 구강 사진으로 하자고 나섰다. 그걸 보고 담배를 끊을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 그런데도 복지부는 효과 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편다. 요즘은 한술 더 뜬다. 텔레비전에 느닷없이 뇌졸중 환자가 등장한 것이다. (…) 담배를 끊지 못해 뇌졸중에 걸렸다는 이 작위적인 장면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자동차 배기가스가 폐암을 유발하고 술이 간암의 원인이 되는 데엔 침묵하는가? 한때 담배는 세수의 절반 가까이를 감당했다. 국가기관인 전매청이 담배를 팔았다. 군대에서도 담배를 줬다. 그때 배운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는 나를 국가가 봉으로 만들고 죄인으로 만들다가 이제는 불치병 환자로 만든다. 그러면서 그들은 담뱃값을 올릴 것이다. 속으로는 금연엔 별반 관심도 없는 정부가 세수의 명분을 만든다고 하면 지나친 말인가? (…) 어쨌든 이 나라 성인 남성의 30%가 흡연자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서민이거나 정신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정말 죄악이 아니라면 흡연자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

-흡연자는 흉측한 광고를 안 볼 권리도 없나(8월 22일자 중앙일보 ‘시론’ㆍ전원책 변호사 겸 시인)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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