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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기승전결 뚜렷한 사건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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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기승전결 뚜렷한 사건이 있을까요”

입력
2018.07.03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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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펴낸 김금희 소설가

아웃사이더들의 연애 통해

단단해져 가는 과정 담아

첫 장편 출간에 초판 2만권 거의 소진

서울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낸 그는 작가의 말에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고 짧게 썼다. 오대근 기자
서울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낸 그는 작가의 말에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고 짧게 썼다. 오대근 기자

이름난 작가의 소설이 겨우 수천 권 팔려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시대여서, 출판사가 국내 장편소설 초판을 2만권이나 믿고 찍었다는 건 ‘사건’이다. 출간 2주 만에 그 초판을 거의 다 소진했다는 건 정말로 사건이다. 사건이 된 소설가 이름은 김금희(39), 책 이름은 ‘경애의 마음’(창비)이다.

김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이후 9년을 책 쓰고, 책 내고, 책으로 상 타며 보냈다. 소설집 두 권을 냈고,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받았다. 서울 서교동에서 얼마 전 만난 그는 “연차로 보면 과장급 작가가 됐다”고 했다. 긴 머리를 히피 펌으로 뽀글뽀글 볶은 자신만만한 젊은 과장.

‘경애의 마음’은 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것을 고쳐 썼다. 기획부터 책 출간까지, 2년 만에 해냈다. “요즘 작가들이 단편은 어떻게든 써내는데, 장편은 도통….” 김 작가에 관한 한, 문단 원로들은 그런 걱정을 덜 해도 될 것 같다. 소설이 쉽게 써진 건 물론 아니었다. “장편은 작가에게 고난이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몇 편씩 쓴 건가(웃음). 장편 연재를 중도 포기한 선배들을 자주 떠올렸다. 나 역시 못하는 건 당연한데 그만둘까 여러 번 생각했다. 그래도 단편처럼 분량에 쫓기지 않은 건 좋았다.”

김금희 작가. 오대근 기자
김금희 작가. 오대근 기자

“연애 이야기 자꾸 쓰는 건

사람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죠”

소설은 주인공 박경애와 공상수가 ‘경애(敬愛)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다. 배경은 그저 그런 미싱 회사. 미싱만큼이나 경애, 상수도 사회에서 퇴박맞는 지질한 아웃사이더들이다. 독특한 게 문제라면 문제일 뿐, 내면의 튼튼한 질서를 붙잡고 사는 덕분에 둘은 비틀거리지만 의연하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경애)

김 작가 소설 속 인물은 언제나 그랬다. “누구에게나 경애, 상수 같은 면이 있다. 개성적 질서를 보류하고 사느라 드러나지 않는 거다. 인물을 깊이 들여다 보고 해명해 보여 주는 게 소설가의 일이다. 그 일에 재능을 쓰는 게 즐겁다.” 소설은 김 작가의 문장들로 반짝거린다. “한번 써 본 마음은 남죠. 안 써 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같은. “포기하지 않고 문장을 만든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쓴 뒤엔 퇴고하고 또 퇴고한다.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단정한 문장들이 죽죽 이어지는 걸로는 안 된다. 리듬이 있어야 한다. 리듬을 찾을 때까지 긴장하며 계속 읽어 본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은 소설의 커다란 모티프다. 중∙고생인 손님들이 계산 안 하고 도망 갈까 봐 사장이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56명이 사망한 참사, ‘피해자들이 노는 애들이었다’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비극. 김 작가는 부산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인하대를 나와 지금도 인천에 산다. “서울로 치면 명동 같은 동네에서 불이 났다. 10대 시절 나도 거기서 놀았다. 미팅도 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저런 폭력적 세계에 타협하는 것인가, 그런 처참함으로 사건을 지켜봤다. 여전히 마음이 무너진다.”

인천 사건과 노동 문제 등이 겹겹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연애소설이다. “그러는 경애씨는 괜찮습니까?” “뭐가요?” “뭐든 말이에요.” 사랑은 그렇게 싹튼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긴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상수) 그렇게 단단해지는 과정이 간질간질하다.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2016)도 그렇고, ‘연애’를 자꾸 쓰는 건 왜일까. “두 사람이 마음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과정이며, 인간과 인간으로서 모든 걸 주고 받는,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이 연애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연애 이야기를 쓴다.” ‘연애의 정의’를 물었다. “자기 극복이다(웃음). 추억이든, 발전이든, 상처든, 극복의 열매는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 열매를 챙겨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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