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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안하면 못받는 전기료 할인… 전형적 공급자 편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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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안하면 못받는 전기료 할인… 전형적 공급자 편의 '맹점'

입력
2015.01.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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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로 서울의 한 무허가건물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모(71)씨에겐 정부가 매달 보내주는 현금급여(생계비) 49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그는 올해 들어 생계비가 매달 1만원 조금 넘게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는 매달 8,000원 가량 전기요금이 할인되는 혜택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잘 모른다”고 했다. 관할 동사무소 직원은 “전기요금 할인 같이 본인이 꼭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복지수당이 많다”며 “대상자들은 방법을 몰라 직원들이 일일이 챙겨야 하지만 평소 많은 수혜자들을 돌보는 직원들의 업무여건상 실수로 누락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공급자 중심의 에너지 복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발표한 에너지 복지 추진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 등 정부 주도의 국내 에너지 복지 규모는 2013년 처음 4,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규모도 2013년에 비해 200억원 가량 늘어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에너지 복지가 공급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현행 정부 주도의 에너지 복지는 ▦요금할인 ▦에너지 지원 ▦효율개선 ▦안전성 제고 등 크게 4가지 형태로 지원된다. 2013년 에너지 복지재원 총액(4,658억원)을 기준으로 할 때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통한 전기ㆍ가스ㆍ열 요금지원은 75%(3,504억원)에 달했다. 단열시공 등 효율개선(775억원), 연탄ㆍ등유 등 에너지 지원(222억원), 노후 가스배관 교체 등 안전성 제고(157억원) 항목을 더한 금액보다 3배 가량 많다.

그러나 에너지 복지에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요금할인의 경우 수혜대상자가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수혜당사자가 제도운영 등을 모를 경우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박완주(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시행하고 있는 전기요금 복지 할인의 경우 지난해 8월말 기준 전체 수혜대상 364만4,000가구 가운데 219만2,000가구(60.1%)만이 혜택을 받았다. 수혜대상인 기초생활수급자(81만가구) 중에서도 이씨처럼 몰라서 혜택을 못 받은 가구는 28만가구(34.6%)나 됐다. 에너지시민연대 홍혜란 사무총장은 “전기료할인은 신청하면 해주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전형적인 공급자 위주의 방식으로 수혜대상자가 사각지대에 방치될 확률이 높아진다”며 “요금할인의 경우 사회복지 업무와의 연계 등을 통해 별도 신청 없이도 자동 할인되는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온이 하루 종일 영하에 머물던 28일 기초수급자로 서울의 한 무허가건물에 세들어 홀로 살고 있는 이모씨가 5㎡ 되는 쪽방에 온기를 넣기 위해 연탄을 갈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기온이 하루 종일 영하에 머물던 28일 기초수급자로 서울의 한 무허가건물에 세들어 홀로 살고 있는 이모씨가 5㎡ 되는 쪽방에 온기를 넣기 위해 연탄을 갈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에너지 빈곤 원인별 처방 필요

전문가들은 에너지 빈곤층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부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은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에너지 빈곤층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 및 기본권을 보장하는 ‘에너지복지법’ 등을 제정하는 것이 그 기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각 부처와 지자체, 기관들이 산발적으로 내놓던 에너지 복지 정책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에너지 복지 수혜대상자가 일반 복지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수급가구 등에만 몰리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정된 재원에 중복수혜가 발생하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확률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서울연구원의 박은철 연구위원은 에너지 복지 정책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기준이 없으니 에너지 복지만의 대책을 낼 수 없고, 일반 복지와 같이 기초생활수급 가구 등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에너지 빈곤 원인엔 낮은 가구소득과 낮은 품질의 주택, 높은 에너지가격, 비효율적인 광열설비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며 “원인 별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특성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혜 대상자 별로 에너지 빈곤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5~10년이 걸리는 저소득층 주택에너지 실태조사를 통합 종합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영록 한국주거복지협회 사무처장은 “노후주택 단열공사 등의 효율개선보다 요금할인의 복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부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에너지 복지가 요금할인 등 일회성이 아닌 주택에너지 효율개선과 단열지원사업 등으로 점차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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