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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甲의 추락… '땅콩회항' 조현아의 16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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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甲의 추락… '땅콩회항' 조현아의 169일

입력
2015.05.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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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 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 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영원한 '슈퍼갑(甲)'은 없었다. '땅콩 회항' 사건의 조현아(41)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재판부는 항로변경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는 유죄를 선고했다. 온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이번 사건의 발생부터 전개, 결정적 사건까지 169일 간의 기록을 '기승전결'로 정리했다.

기: 슈퍼갑, 민낯을 드러내다

지난해 12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JFK국제공항. 0시50분 뉴욕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편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중 갑자기 탑승 게이트로 방향을 돌렸다. 비행기를 돌려 세운 사람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이자 대한항공의 기내서비스·호텔사업부문을 총괄하던 조현아 당시 부사장.

8일 언론보도로 알려진 '땅콩 회항'의 전말은 이렇다. 일등석에 타고 있던 조 부사장은 승무원의 '땅콩 과자 서비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고함을 지르고, 규정을 설명하려고 온 수석 승무원(사무장)에게도 소리를 치며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조 부사장의 난동에 가까운 소동에 비행기는 1시14분이 되어서야 이륙을 할 수 있었고, 247명의 승객은 영문도 모른 채 사무장 없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사건의 파장은 컸다. 8일 국토교통부가 법률 위반 여부를 가리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국회에서도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9일, 참여연대가 '항공법·항공보안법 위반,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혐의' 등으로 조 전 부사장을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하면서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기사보기)

승: 을의 반격에 '악어의 눈물' 논란 확산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조 전 부사장의 만행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검찰 조사 결과 조 전 부사장은 사건 당시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고성을 지른 것은 물론 "그X" "그XX"라고 부르면서 손등과 가슴을 가격하는 등 욕설과 폭행까지 했다.

조 전 부사장은 보직에서 퇴진하고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직접 사과하러 찾아가는 것은 물론 검찰조사에 앞서 눈물을 보이며 사과했지만 이는 '악어의 눈물'이었다. 물밑에선 사무장과 승무원을 회유하거나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너 감싸기에 총력을 기울인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을 위한 해명을 내기에 급급해 모든 책임을 사무장과 승무원의 탓으로 돌렸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힘쓰는 등 스스로 사태를 키웠다. (▶기사보기)

사건 초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무장 박창진씨가 목소리를 내면서 사건은 반전됐다. 박씨는 항공기에서 쫓겨나 한국에 돌아온 직후 대한항공 임원 A씨 일행에 이끌려 장시간 회유를 받았다. 때문에 국토부 조사에서는 조 전 부사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마음을 바꿔 사실대로 진술했다. 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 모욕감과 치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고 억울함을 말했다. (▶기사보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램프리턴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서울 공항동 김포공항 인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하던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램프리턴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서울 공항동 김포공항 인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하던 모습.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전: 구속되자 반성문까지… 전전긍긍 조현아

지난해 12월 30일, ‘땅콩 회항’ 사태로 물의를 빚은 조 전 부사장이 구속됐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김병찬 영장전담 판사는 "사안이 중하고 사건 초기부터 혐의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볼 때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구속 영장을 발부한 이유를 밝혔다.

재벌가 딸들 중 사상 처음으로 구속수사를 받게 된 조 전 부사장은 조급해졌다. 계속된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느라 바빴고, 3차 공판에선 항공기 회항의 책임을 기장과 승무원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성문에서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일이 제 탓이고 제가 정제도 없이 화를 표출해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적었다.

결국 1심에서 조 전 부사장에게는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오성우)는 조 전 부사장에 대한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인정하고 “이 사건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는데, 국내에서 항로변경죄가 인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에 조 전 부사장은 즉각 항소했다. (▶기사보기)

결: 143일 만에 석방… 씁쓸한 뒷맛

5월 22일, 조 전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구속된 지 143일만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김상환)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판 최대 쟁점이었던 ‘이륙 전 항공기 이동로 변경 행위’를 항로변경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폭행을 한 혐의(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등)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번 사건은 슈퍼갑으로 살아온 일부 재벌가의 인격적인 미숙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것 같다"고 사과했지만, 조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같은 시기에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문자를 언니에게 보내는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능력 검증 없이 혈연 관계로 기업을 상속 받는 재벌가의 세습 경영 문화에도 경종을 울렸다. 재벌가의 일원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재벌 3세 경영인이 일반 부하 직원에게 저지른 상식 이하의 막말과 폭행은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능력 없는 지도자의 잘못된 권력 행사에 대한 사회적 질타는 당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칼럼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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