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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우리는 위안부 얘기를 아직 충분히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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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우리는 위안부 얘기를 아직 충분히 듣지 못했다

입력
2018.03.3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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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일이나 할 줄 알았던 박옥련 할머니가 끌려갔던 '라바울 위안소'. 라바울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일제 최남단 기지여서 긴장감이 가장 높았던 지역이다. 푸른역사 제공
간호일이나 할 줄 알았던 박옥련 할머니가 끌려갔던 '라바울 위안소'. 라바울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일제 최남단 기지여서 긴장감이 가장 높았던 지역이다. 푸른역사 제공

필리핀 몽고… 日제국 곳곳 끌려가

차마 집에 못 가고 타국에 남기도

돌아온 사람들 삶도 녹록지 않아

‘당신 잘못 아니다’ 인정받는 듯해

생활지원 통지서를 벽에 걸기도

지난해 7월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은 1944년 9월 중국에서 촬영된 위안부 동영상을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위안부 관련 문서 자료, 사진 자료는 많았지만 동영상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시가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성과 중 하나였다. 두 권으로 정리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는 그 사업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16명의 이야기에다, 버마와 중부태평양 섬, 그리고 기업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까지,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4가지를 곁들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국’이라는 감각. ‘일본 제국주의’라 하면 우리는 대개 한중일 3개국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껍데기뿐이었다 해도 일본제국은 동남아와 태평양 일대까지 장악했다. 미국 일본간 전쟁이 태평양 전쟁이라 불리는 이유다. 집필진은 위안부 할머니들 사연을 소개하면서 맨 앞에다 지도를 배치했는데, 생각 외로 광범위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단한 여정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동시에 일본 ‘제국’의 영역도 함께 확인해볼 수 있다. 집필진도 소개할 위안부 할머니를 정할 때 필리핀, 내몽고 장가구, 버마, 오키나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지역별 안배를 고려했다. “한국인 피해 여성들이 그 모든 지역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가능한 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복동 할머니의 이동경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에는 할머니들의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이런 지도를 함께 그려뒀다. 일제는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 위안부를 데려갔다. 푸른역사 제공
김복동 할머니의 이동경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에는 할머니들의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이런 지도를 함께 그려뒀다. 일제는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 위안부를 데려갔다. 푸른역사 제공

위안부 할머니들 사연을 소개하면서 잔혹함을 많이 들어낸 것도 좋다. 범죄적 행위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키기 위해 피해 사실을 지나치게 자세히 밝혀둘 단계도 지났거니와, 그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 그 자체에 집중한 서술 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시간 순으로 지어진 책 제목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이 책의 미덕은 ‘버려지다’에 강조점이 찍힌다. ‘끌려가다’, ‘우리 앞에 서다’가 민족적인 감정이나 울분을 떠올리게 한다면 ‘버려지다’는 위안부 할머니 개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어서다. 위안부 생활할 때, 그 때만이 아니라 그 이전,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한다.

생각해보면 우리조차 못 먹고 못 살았던 시절 있었던 부끄러운 일이라는 이유로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증언이 나올 때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별 일 아니라는 척,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해방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해방이 아니었다.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그 버려진 시간 동안 그들은 어떻게 살아갔는가, 그 이야기들은 문장마다 눈물짓게 만든다.

가령 이런 서술들이다. 만주국을 거쳐 내몽골 장가구로 끌려갔었던 김순악 할머니. 할머니는 2000년 11월 위안부 피해자 생활 지원대상자로 선정됐다. 김순악 할머니는 이 ‘대상자 결정 통지서’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그저 보고 또 봤다. 지원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위안부의 삶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의 삶도 고단해 평생을 우울증과 화병에 시달려왔는데, 그 결정 통지서는 이 모든 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바보라서 당하고 산 줄 알았는데, 저 사람들이 나빴고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줘서다.

태국으로 끌려갔던 노수복 할머니는 전쟁 뒤 그냥 태국에 남았다. 이런 몸으로 고향에 갈 수 없다 생각해서다. 거지꼴로 허드렛일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장사하면서 가족을 이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기에 남편에게는 ‘작은 집’을 들이라 했고, 거기서 얻은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키웠다. 단 한번도 가족 안에서 안온해 본 적 없으니, 가족만큼은 절대 놓을 수 없는 단어였다. 버림받았으나 굴하지 않았고, 강인하게 살아냈다.

일본인 시로다 스즈코는 남양군도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 때 함께 지냈던 조선인 위안부들을 꿈에서 자주 봤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며 시로다가 그린 그림. 푸른역사 제공.
일본인 시로다 스즈코는 남양군도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 때 함께 지냈던 조선인 위안부들을 꿈에서 자주 봤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며 시로다가 그린 그림. 푸른역사 제공.

일본군도 알고, 연합군도 알았던 이런 얘기들을 일본 정부라고 몰랐을 리 없다. 그저 덮을 뿐이다. 이런 얘기도 들어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자 자민당과 우익의 대부로 꼽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나카소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중위로 복무한 경험을 1978년 ‘끝나지 않은 해군’이란 제목의 책으로 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말하면서 나카소네는 ‘3,000명 이상 대부대를 지휘하면서 그들을 위해 위안소를 지어줬다’는 얘기를 업적인 마냥 써놨다. 2007년 이 대목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오락시설이나 휴게소는 만들어줬지만, 위안소는 설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2009년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여성이 면담을 요청하자 거부했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각권 304쪽,312쪽ㆍ각권 1만5,000원

책엔 ‘도라쿠도’라는 곳에 끌려갔다는 증언 하나만 가지고 추적해나간 이야기, 미처 충분한 증언을 다 들어보기도 전에 할머니가 사망한 이야기, 할머니가 용기 있게 고백하고 나서야 자식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일제는 위안부 동원을 위해 가장 약한 고리, 가난하고 못 배운 어린 여자들을 노렸다. 발언권이 너무나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아직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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