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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기업 고위급 자리, 채권은행 낙하산이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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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기업 고위급 자리, 채권은행 낙하산이 꿰찼다

입력
2015.05.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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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ㆍ조선사 18곳 중 15곳에 전직 간부를 임원으로 내려보내

우리은행이 9명으로 가장 많아 / 퇴직자 일자리-로비 창구 '빅딜'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받는 기업 대부분이 채권은행 출신 전직 은행간부를 이사나 감사 등 임원으로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갑’의 지위를 활용해 퇴직자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5일 한국일보가 2008년 이후 워크아웃 또는 자율협약을 진행한 주요 건설사와 조선사 중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임원의 이름과 경력을 확인할 수 있는 18곳의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15곳이 채권은행 출신을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중 건설사 워크아웃을 가장 많이 주관하는 우리은행이 주로 건설사에 전직 임직원을 이사 또는 감사로 내려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전 부행장이 삼호 사외이사와 풍림산업 감사로 일했고, 전 본부장들은 진흥기업 벽산건설 남광토건 금호산업 등의 감사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출신도 워크아웃 건설사나 자율협약 조선사로 상당수 진출했다. 부행장이 STX조선 감사로, 이사와 실장이 금호산업 남광토건 벽산건설 현대시멘트 등의 임원으로 진출했다. 또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주로 지분을 보유한 자율협약 대상 조선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직 은행간부들의 워크아웃 기업행은 ‘헤드헌팅’이라기보다는 ‘낙하산’의 성격이 강하다. 은행 간부들의 퇴직 후 일자리로 활용되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워크아웃 기업에 퇴직자를 내보내며 은행 내부 구조조정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고, 동시에 퇴직자를 통해 워크아웃 기업을 쉽게 통제할 수도 있어 일석이조다. 대신 가뜩이나 자금상황이 어려운 워크아웃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천만원에서 억대 연봉을 주고 ‘군식구’를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시중은행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한 전직 간부 A씨는 “대부분 채권은행의 요구로 재취업을 한다”며 “워크아웃 기업 입장에서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고 말했다. 시중은행 간부를 지내다 퇴임 직후 워크아웃 대상 기업 임원으로 재직했던 B씨는 “(퇴직자를 위한) 마땅한 자리가 없으면 은행장이 나서 자리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렇게 워크아웃 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전직 은행 간부라 하더라도 친정(채권은행)과의 관계에서 ‘안 되는 걸 되게’ 만들 정도로 힘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워크아웃 추가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이 은행별로 수십억~수천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부장~본부장급 로비가 쉽게 통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A씨는 “전직 은행간부에게 그냥 자리 하나 챙겨주는 의미가 강하다”며 “현직 심사역에게 전직 본부장이나 부장이 부탁해 봐야 안 통하고 금융감독원 정도 이상은 돼야 말을 들어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은행권이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낙하산들이 적어도 ‘보험’ 이상의 역할은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워크아웃 기업의 특징상 금융당국이나 은행권에 민원을 요청하는 일이 많고 각종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금감원, 채권은행, 법원ㆍ검찰 출신으로 ‘사외이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는 것. 언제든 로비의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낙하산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민영은행은 아예 규제 자체가 없고, 국책은행 출신이라고 웬만하면 취업심사를 통해 걸러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민간 분야라 하더라도 도덕적 해이를 막고 워크아웃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 밝은 한 변호사는 “일정 직책 이상 은행간부의 경우 워크아웃 기업 등 특수한 곳에 재취업하지 않겠다는 금지 각서를 쓰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장애물이 있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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